“안타까운 사고를 의도적 자해라니”

생보사 M사, 우발적 사고-의도적 자해 둘러싸고 보험금 지급 거부

법원, 불안정한 심신 상태에 스스로 목 맨 행위에 “의도적 자해 아니다” 판결

불의의 사고-의도적 자해 둘러싼 소비자-보험사 간 분쟁 해결할 판례


한민철 기자

한 생명보험사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절망에 빠진 고객의 사고를 고의적 자살시도라고 주장해 두 번 울린 사연이 밝혀졌다. 고객 측의 보험금 청구에 대해 의도적 자해 그리고 소멸시효 완료 등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던 이 회사는 법적 소송 끝에 패소했다.

지난 2013년 8월경,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B씨는 자녀 A씨의 명의로 생보사 M사의 변액유니버셜 보험에 가입했다.

해당 보험계약상의 피보험자는 A씨였지만, 그는 당시 미성년자 신분이었다. 때문에 B씨는 A씨를 대신해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면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할 경우 수익자 역시 자신으로 설정해 뒀다.

다음 해인 2014년 초순 A씨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던 시기, 그는 학교 성적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동시에 주요 과목의 성적하락으로 인해 가족들과 갈등을 빚었다.

가족들로부터 성적하락에 대한 지적을 들은 A씨는 화장실에 들어갔고, 잠시 뒤 화장실 안쪽 문고리에 묶어둔 샤워용 타월에 목이 매여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A씨의 가족들은 이를 발견하고 즉시 119 구급대에 신고했고, 그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와 두뇌 회복을 위한 긴급 의학 시술과 처치를 받았다.

A씨는 이 대학병원으로부터 의도 미확인의 목맴과 교액(絞縊) 및 질식 그리고 상세불명의 심장정지 및 폐렴 진단을 받았다.

그는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인지장애와 상세불명의 사지마비 증상으로 병원을 옮겨 지난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회복의 기미가 없었다. 이후 같은 해 5월 병원으로부터 모든 수의적 운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노동능력을 100% 상실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B씨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안정시킨 뒤, A씨의 명의로 2013년 가입했던 M사의 변액유니버셜 보험상품의 계약 내용을 살펴봤고 이번 사고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사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A씨의 명의로 가입한 M사의 해당 상품의 주계약 및 특약 내용에 따르면,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A씨)가 보장 개시일 이후 질병 또는 재해로 인해 그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1일 이상 입원했을 때 (1회 입원에 지급일수 120일 한도) 질병재래입원급여금 명목으로 입원 일수 1일당 2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또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발생한 재해로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각 장해지급률에 해당하는 장해상태가 됐을 때 재해장해급여금으로 5000만원에 해당 장해지급률을 곱한 상당액을 보장받는 등 다양한 보험금 지급보장 내역이 명시돼 있었다.

여기서 보장 대상이 되는 재해란, 한국 표준질병사인 분류대상표상에 해당하는 ‘우발적 외래 사고’에만 해당했다.

만약 목맴과 질식 사고가 피보험자에 의한 고의적 자해로 밝혀진다면,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보장 대상인 재해에서 제외되며 보험금을 주지 않거나 보험료 납입을 면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B씨는 2015년 5월경 법정대리인이자 보험계약 수익자로서 A씨에 사고에 대한 보험금을 M사 측에 청구했다.

그런데 B씨의 A씨 사고에 대한 보험금 청구에 대해 M사는 A씨의 사건을 보험약관상 ‘피보험자의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즉 자살시도라고 판단,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M사 측은 A씨의 사례가 타인의 범죄행위로 이뤄진 것이 아닌, 화장실 문에 묶인 샤워타월을 이용해 A씨 스스로 목을 맴으로써 의도적으로 자해를 했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B씨는 A씨의 사고가 불안한 정신상태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고로, 이를 자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우발적 사고’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B씨와 ‘의도적 자살시도’에 해당해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M사 측은 원만한 합의를 볼 수 없었고, 소송에 이르게 됐다.

M사 측은 A씨가 가족들과 학교 성적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일시적으로 격분해 자해를 한 것이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그가 사고 당시 심신상실이나 이와 동일시 할 수 있는 현저한 정신장애를 겪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A씨가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는 피보험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 한해 보험자 면책의 예외 사유로 주장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쳤다면 보험자는 확정적 면책에 해당하며, 심신상실 상태에서 자해가 이뤄졌을지라도 보험자 면책의 예외사유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M사 측은 2년으로 설정된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로 인해 B씨 측의 보험금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A씨의 생명이 위중하고 무의식·무반응 등 장해상태에서 병원으로부터 호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회신결과가 나온 2014년 중순경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돼, 이후 2년이 지난 소송 시점에서 그 소멸시효가 완성돼 B씨 측 청구는 기각 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B씨 측은 자녀의 불상사와 A씨의 불의의 사고를 고의적 자해라는 M사의 주장에 두 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B씨는 여러 사유를 들어 A씨의 사고가 의도적으로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B씨 측에 따르면 A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수한 학업성적을 유지해 오면서 과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상을 받았고, 사고 발생 직전까지도 장래 희망을 구체적으로 정한 뒤 관련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원만한 학교생활을 해왔다.

물론 성적하락의 스트레스를 받고, 이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지적을 받아 극도의 흥분되고 불안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은 인정했다.

만약 A씨가 의도적으로 자살을 하려 했다면, 유서를 남기거나 주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자살을 암시하는 흔적이 남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A씨가 가족들로부터 성적하락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로 직후 일어났고, 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제한된 우발적·충동적 반응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이었다.

때문에 보험약관상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M사 측이 계약상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법원 “A씨,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식·인용 없었어”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법원은 A씨의 사고를 ‘우발적 사고’로 인정해 B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을 판결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측은 우선 해당 보험계약에 의해 담보되는 보험사고의 요건 중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인 ‘우발적 사고’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렸다.

재판부가 판단한 우발적 사고는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로서,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닌 ‘예견치 않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고’였다.

다시 말해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정신 또는 심리상태에서 이뤄진 행위로 상해나 사망 등의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는 우발적 사고라는 의미였다.

여기서 고의란 일정 행위에 대한 결과를 인식한 채 감히 그것을 행하는 심리상태로, 행위자가 결과의 발생을 인용하거나 적극적으로 바라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A씨가 가족들로부터 성적하락으로 인한 지적을 받고 곧바로 화장실에서 목을 맨 행위가 그의 이후 결과에 대한 ‘인식’과 ‘인용’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A씨의 정신 및 심리가 최소한의 인지와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한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고,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에서의 이뤄진 행위가 고의적이고 의도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A씨가 사고에 이르기까지의 정황상 A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거나 이전까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전혀 없었고, 일상생활 중 갑작스럽게 발생한 가족들과의 마찰로 인한 사고를 고의 또는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당시 상황에서 A씨가 화장실로 들어간 이유는 자해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들의 지적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던 A씨가 눈물을 닦고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게 됐고, 재판부는 이 짧은 순간에 A씨가 의도적으로 자살을 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A씨의 사고 직후 응급처치를 담당했던 대학병원 측이 그의 상태에 대해 ‘의도 미확인의 목맴과 교액 및 질식’으로 판단했다는 점 등도 재판부의 판결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A씨가 흥분이 지속되거나 그 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화장실에 들어가 문고리에 걸려있는 샤워용 타월이 눈에 보이자 우발적으로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라며 “A씨가 통상 목맴의 경우와 같이 높은 곳을 찾아 타월을 걸고 자신의 신체를 허공에 던지는 등 계획적이고 다단계적인 동작을 시도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당시 A씨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사망이나 상해 등 중대한 결과에 대한 의욕이나 인용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그 행위 자체의 객관적 의미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비정상적 정신 및 심리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A씨의 목맴은 고의에 의한 자해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M사 측의 B씨 측 청구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M사 측은 A씨의 생명이 위중하고 무의식·무반응 등의 장해상태에 빠진 2014년 중순 또는 그의 장해상태에 호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회신이 온 이후 2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B씨의 이 사건에 대한 보험금 청구권은 시효완성으로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 측은 병원으로부터 A씨의 모든 수의적 운동이 불가능하고 노동능력을 100% 상실했다는 영구장해 판정을 받은 2015년 5월부터가 B씨 측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쟁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B씨 측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가 바라봤던 소멸시효의 적용 시작 시점은 M사 측의 주장대로 A씨가 장해상태에 빠져 호전 가능성이 없다는 회신이 왔던 때가 아닌, 병원으로부터 A씨의 회복 불가능과 노동능력 100% 상실에 대한 진단을 받았던 2015년 5월부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B씨가 A씨 사고에 대한 보험금 청구를 한 시점은 소멸시효 완료 전으로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판단으로, 결국 M사 측은 법원으로부터 A씨 장해비율인 100%를 반영해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례와 법원의 판결이 그동안 다수의 소비자와 보험사 간 분쟁의 주제였던 우발적 사고와 ‘의도적 자해’ 또는 ‘자살시도’에 대한 분명한 해석을 해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법원의 판결과 구체적 사례에 대해 접하기 힘든 일반 소비자들이 우발적 사고 발생으로 정당하게 지급받을 수 있었던 보험금을 대형 보험사들로부터 의도적 자해나 자살시도로 몰려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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