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 폭행 논란에 이어 배임·횡령 혐의로 사면초가 권성문 회장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거쳐 검찰고발 여부 결정…주식매각 명령도 가능”

경영일선 후퇴 가능성 커져…혐의 확정되면 회사 악영향 불가피

벤처 투자의 귀재로 불렸던 KTB 투자증권 권성문 회장이 궁지에 몰린 처지가 됐다. ‘부하직원 폭행’ ‘맷값 합의’ 논란을 빚은 권 회장이 최근 금융당국의 검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권 회장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권 회장이 회삿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 여러 제보가 접수돼 지난 3월 불특정 금융투자사 3곳에 현장 검사를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권 회장에 대한 횡령·배임 의혹 등이 포착됐다. 일부 위반 사항에 대해 회사 쪽 소명을 받는 등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문제가 된 건 권 회장의 회사 출장비 사용 부분이다. 금감원은 권 회장이 회사 출장 시 가족을 동반하는 등 사례를 다수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기간과 금액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졌고 액수도 크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권 회장의 횡령·배임이 입증되면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려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권 회장의 대주주 자격 박탈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권 회장이 대주주 자격을 잃게 된다면 경영권도 내놔야 할 공산이 크다.

샐러리맨에서 전문 기업사냥꾼으로…투자업계 입지전적 인물

1961년 대구 출생인 권 회장은 심인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끝에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동기들은 그를 두고 ‘놀 때와 공부할 때를 구분하는 학생’이었다고 평가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삼성물산에 입사한 권 회장은 2년 뒤 회사를 나와 사업을 하다 1989년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주리대학교 컬림비아 캠퍼스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무관리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귀국 후에 한국종합금융에서 기업금융팀에서 기업인수합병을 담당하다 1995년 1월 ‘미래와사람’을 창업했다.

‘권성문’이라는 세 글자가 언론에 처음 오른 것은 1996년 7월29일의 일이다. 신축 중이던 목동백화점 인수 과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 건의 중개업무를 권 회장이 당시 설립한 미래와 사람 그룹의 전문 M&A 전문회회사인 한국M&A가 담당하면서다. 인수 자금은 22억 원에 불과했으나 한국M&A가 받기로 한 수수료는 31억 원에 이르러 화제를 모았다.

1996년 10월 초, 권 회장은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같은 해 3월 주식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던 영우통상 주식을 팔면서 6개월 만에 9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 M&A 알선 업체들은 단순 기업인수합병 주선에 그쳤지만 권 회장은 미국에서 일반화된 방식인 직접 인수 후 시세차익을 남기며 처분하는 방식을 선보이며 반향을 일으켰다.

M&A 전문가로서 정점을 찍은 KTB 인수

권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잭 웰치 전 GE 최고경영자(CEO)다. 웰치 전 회장은 GE캐피털을 매개로 M&A를 통해 GE를 세계 정상의 기업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웰치 전 회장처럼 권 회장은 국내 M&A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유력 기업인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1999년 권 회장이 당시 대표로 있던 미래와 사람이 정부의 한국종합기술금융(KTB) 지분매각 공개입찰에 참가, 정부 보유주식 186만주(10.2%)를 주당 5천 원씩 모두 98억 원에 인수해 일약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당시 미래와 사람 총 자산은 1천억 원대로 KTB의 7%에 불과했다. KTB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대 벤처금융회사로 당시 총자산은 2조1946억 원, 투융자 거래기업수가 1800여 개에 이르며 보유 벤처기업 주식만도 200여개 사 2300억 원 규모였다. 때문에 미래와 사람의 KTB인수를 다윗이 골리앗을 접수한 사건으로 비유됐다. 이후 KTB는 2008년 7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증권업 전환허가를 받아 사명을 ‘KTB투자증권’으로 변경하고 2009년 2월 금융투자업 인가도 받았다. 권 회장은 현재 KTB투자증권 1대 주주로 지분 20.22%를 보유하고 있다.

구설에 이어 배임·횡령 혐의로 사면초가에 빠진 권성문

KTB인수 이후 권 회장은 대중에게 각인될 만한 큰 도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KTB투자증권을 꾸준히 성장시키며 회사를 키워왔다.

하지만 최근 연이은 논란에 권 회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권 회장은 개인적으로 출자한 수상레저 리조트 직원에게 발길질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폭행은 업무보고가 늦었다는 이유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권 회장은 해당 직원이 회사를 그만 두고 폭행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 하자 회사 임원을 통해 수천만 원을 건네며 사건을 무마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회장 측은 폭행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회사 직원과 접촉하지 않으며 CCTV영상도 폐기하는 조건으로 확약서도 요구했다.

‘맷값 합의’ 논란이 채 잦아들기 전에 권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를 놓고 금융당국이 검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 회장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문제는 검찰 고발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본지와 통화한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가 종료되면 제재심의위원회에 제재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며 “입증 자료가 명확할 경우 검찰에 고발하고 수사가 필요할 경우 검찰에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 회장은 과거 검찰에 고발된 이력이 있다. 1996년 한국M&A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1999년에는 ‘미래와사람’ 대표 시절 냉각캔을 세계 최초의 초소형 냉장고라고 홍보해 회사 주가가 6배 이상 뛰었으나 결국 상용화되지 못하면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금지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바 있다.

대주주 자격 박탈에 대해서는 이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사후적 조치로 주식 매각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면서도 “개인의 재산권에 관련된 사안이라 주식 매각 명령을 내린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판단 받은 금융사 최대주주에게 주식 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경영일선 후퇴 가능성 커져…혐의 확정되면 회사 악영향 불가피

권 회장은 작년 3월, 경영부실을 씻기 위해 부동산 투자로 명성을 날리던 당시 다올인베스트먼트 사장 이병철 부회장을 영입했다. 영입 당시 KTB투자증권 지분 5.8%(409만9679주)을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현재 14.0%(988먼4000주)까지 지분율을 늘렸다. 20.22%의 지분을 갖고 있는 권 회장과는 6.22%p 차이다.

이 부회장은 KTB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3800억 원 규모의 항공기, 국외 신재생에너지 관련 거래 등을 따냈으며 KTB투자증권 주가도 이 부회장 취임 이후 17% 이상 뛰었다.

최근 경영권을 두고 권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 측은 “경영권을 보장받았다”는 입장인 반면, 권 회장 측은 “모든 결정은 회장 뜻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묘한 상황에서 권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가 불거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배임·횡령 혐의 확정 여부를 떠나 권 회장의 경영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불미스런 일에 연이어 연루되며 도덕성에 흠집이 났고 대주주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주주 자격은 유지하더라도 회사 운영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결격 사유로 금감원의 인·허가가 불허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이유로 삼성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 심사를 중지한 바 있다. 현재 KTB투자증권과 계열사들은 입찰을 통해 정책자금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도 권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KTB투자증권은 작년 이병철 부회장과 최석종 KTB투자증권 사장을 선임하면서 투자은행(IB) 특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2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수료수익은 43.6% 증가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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