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넘겨진 동양家 오너2세… 정부의 ‘재벌개혁’ 대상 되나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공소사실 인정하나 “횡령의도 없었다” 주장

문재인 정부, 공정위 필두로 재벌개혁 박차

잇단 구설에 오른 오리온家, ‘재벌개혁’ 文정부의 관심 촉구 목소리 높아져

한민철 기자

국내 제과업계 1위 오리온의 이화경 부회장이 업무상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의 시선이 잇단 구설에 오르는 오리온 오너가에도 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단독(부장판사 황기선) 심리로 열린 이화경(61) 오리온 부회장의 업무상횡령 혐의에 대한 첫 번째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증거 채택 부분에도 모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화경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 사건 혐의 중 횡령 대상에 해당하는 오리온 법인 소유 수억원 상당의 미술품 200여점에 대해 ‘관리 소홀로 인한 실수’로 인해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게 된 점을 인정했다.

이는 앞서 지난 3월 시민단체들이 해당 미술품을 횡령했다며 담철곤(62) 오리온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던 당시, 관리소홀이 빚어낸 실수라는 오리온 측의 해명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이어 이 부회장 측은 “미술품을 횡령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며 본의 아니게 회사 소장 미술품을 자택으로 들여오게 됐지만 횡령을 할 목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검찰 고발 단계에서 오리온 측 공식 입장과 동일했다.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라는 무적의 논리처럼, 회사 사무실에 두고 있던 미술품을 자택으로 가져와 소유하고 있었지만 횡령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이화경 부회장 측이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혐의에 대한 의도성을 무력화시킬 전략을 취한 만큼, 검찰 측도 이 부회장이 충분히 횡령할 의도를 가지고 미술품을 자택으로 들여왔다는 점을 입증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 입증은 험난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이 사건 재판 자체가 “본질을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시민단체들의 고발로 기소 및 재판으로까지 이어진 이번 사건의 피고발자는 이화경 부회장이 아닌, 담철곤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30일 약탈경제반대행동과 예술인소셜유니온 등 4개 시민단체는 미술품 위작 및 분식회계 등으로 인한 횡령 혐의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업무상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의 관심이 오리온에도 집중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
과거 담철곤 회장이 회사 자산으로 구입한 고가의 미술품인 루마니아 국적 마리아 페르게이(Maria Pergy)의 ‘트리플 티어 플랫 서페이스 테이블(Triple tier Flat-surfaced Table)’과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무제(Untitled)’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시민단체는 고발과 동시에 다양한 물증 및 정황상 증거자료를 확보한 상태였다.

당시 고발인들은 담철곤 회장이 고가의 미술품을 오리온 법인 자금으로 매입한 뒤 이를 위작으로 대체했고, 이는 곧 미술품을 횡령의 수단으로 사용한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구체적 범죄사실에 따르면, 담 회장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오리온 양평연수원에 전시하고 있던 그룹 소유의 ‘트리플 티어 플랫 서페이스 테이블’을 2014년 2월 13일 오리온 그룹 계열사인 쇼박스(과거 미디어플렉스)의 유 모 대표에게 지시해 임의로 반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작품은 시가 2억 50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스테인리스 스틸 가구다.

이후인 같은 해 10월 6일에는 서미갤러리 직원을 통해 이 작품 대신 모조품을 입고하는 방법으로 미술품을 빼돌렸다는 주장이다. 서미갤러리는 지난 2011년 담철곤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휩싸인 적이 있는 미술품 판매 업체다.

이어 담철곤 회장은 오리온이 쇼박스와 미술품 임차계약을 체결해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사무실에 전시ㆍ보관해 놨던 ‘무제’를 2015년 5월경(또는 6월) 담 회장의 성북동 자택으로 반출해 1억 7400만원 상당의 해당 작품을 횡령했다고 고발장에 적시돼 있었다.

특히 당시 오리온 전직 임원 다섯 명이 담철곤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담 회장에 대한 비리를 담은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또 KBS ‘추적 60분’이 담철곤 회장에 대한 고발건과 전직 임원들의 관련 폭로에 관해 상세히 보도 하면서 상황을 담 회장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고발장 접수 3개월 보름경이 흐른 지난 7월 담철곤 회장의 횡령·탈세 등 혐의에 관해 무혐의 처분을, 이화경 부회장의 미술품 횡령 부분에 대해서만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 측은 담 회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에 대해 그에 대한 고소ㆍ고발 내용 중 혐의점을 분명히 찾을 수 없었지만,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고발장에 첨부됐던 객관적 첨부자료 등과 과거 사실을 통해 비춰봤을 때 오히려 담 회장의 혐의에 대한 기소 의견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검찰 측의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상당수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담 회장에 대한 ‘과거 사실’이란, 그가 지난 2011년 검찰 조사에서 해외 유명 미술품 10여 점을 오리온 법인 자산 수백억 원을 들여 구입해 자택에 보관해온 것으로 밝혀져 구속된 적이 있다는 부분이다.

담철곤 회장은 이 과거 사실로 인해 지난해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최고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지난 7월 검찰에서 해당 고발건을 기소 의견으로 넘겼다면 담 회장은 집행유예는 취소돼 또 다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文정부 재벌개혁, ‘실적 우선주의’보다 ‘오너의 도덕성’에 주목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 개혁’, 특히 오너 2세들의 경영권 승계를 통한 회사 지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며 이런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재벌 저승사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 정책이다. 공정위는 지난 6월 김상조 위원장의 취임 이후 주요 기업의 편법 승계의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재벌 손보기에 들어갔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21일 공정위 내 ‘기업집단국’을 공식 출범시키며 재벌기업의 사익편취와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 행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는 목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사진=연합)
이 기업집단국은 과거 공정위 조사국의 역할을 하게 되며, 조사국은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대 그룹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며 부당 내부거래 적발에 큰 공헌을 한 바가 있다.

물론 이는 비단 재벌기업의 실적 측면에서의 부당함만을 바로잡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재벌이 또 재벌을 낳는 국내 대기업의 구조, 나아가 그 중 일부 재벌들의 엇나간 도덕성까지도 개혁하자는 목표다.

정부의 이런 기조에 기업들도 오너들과 오너 2세들의 회사 경영 참여에 있어, 바깥에 보여지는 도덕적 이미지 향상에도 집중하고 있다.

쉽게 말해 언론사 경제지면에서 다뤄지는 기업과 오너들에 대한 찬양 일색보다, 검찰 포토라인에 선 사진 그리고 물의를 일으켜 사회지면에 크게 다뤄지는 일을 없애는데 더 주력하자는 분위기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최근 유엔총회로 미국 뉴욕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외신들을 현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대해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인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국 재벌기업들의 경제성장 견인 역할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기업이) 한국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면서도 “재벌 체제로 인해 경제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측면이 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文정부, 담철곤 회장 고발한 시민단체의 외침 들어줄까

국내 제과업계 1위 오리온은 지난해 3262억원의 영업이익과 240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와 36%나 증가한 수치로 그룹 내 영업이익 중 사상 최고 기록이자, 주력했던 해외 시장 공략에도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올해도 비록 ‘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 내 실적 악화가 발목을 잡았지만, 이는 비단 오리온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전년도 동기 대비 실적이 감소했을 뿐 재빠른 대처로 실적 회복에 나서고 있다.

특히 다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오리온 제품의 비약적인 성장이 중국 시장에서의 위기감에 한숨을 돌리게 해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입맛을 사로잡은 제품의 인기와는 다르게 현재 오리온 오너들은 잇단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회사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길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오리온 측은 시민단체들의 고발과 전직임원들의 폭로가 전혀 사실무근인 음해라는 입장이지만, 이화경 부회장이 재판이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는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이화경 부회장에게 주어진 혐의는 타 업계와의 경쟁이나 회사의 실적 향상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빚어진 불법행위가 아닌, 회사 자금으로 구입한 ‘공공 물품’을 집으로 옮겨 ‘개인 사치품’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을 충분히 살만하며, 이는 지극히 오너 개인만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목소리다.

특히 앞서 언급한 대로 이 부회장 측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 미술품을 횡령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당시 그림을 제대로 보관할 곳을 찾았고 담 회장 자택에 그림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항온ㆍ항습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이곳으로 물품을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실무자가 미술품 반출 관련 서류를 누락시켰고, 이것이 미술품을 횡령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만약 미술품의 관리상 문제로 인해 반출하려는 목적이었다면, 굳이 갤러리를 통해 모조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미술품이란 잦은 반출과 이동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해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기 때문이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 (사진=연합)
또 회사 자산으로 구입한 억대 미술품에 대한 관리 및 취급에 있어 관련 서류를 누락했다면, 고발 당시까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 또한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법조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찰 측이 조금만 의지를 가진다면 충분히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부분은 재벌 개혁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는 다르게 이번 오리온 오너의 재판 및 구설수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경 담철곤 회장을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시민단체 관계자들 “기업은 자본가의 사유물이 아니며, 범죄 수단으로 기업이 동원되는 것은 중대 범죄”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재벌개혁이 성립되고 이들 시민단체들의 외침을 공감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에서 이번 오리온 오너가의 재판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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