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이다” VS “근거 없다”

공정위 “퀄컴이 특허 이용해 경쟁 방해”

퀄컴 “공정위 결정, 국제법 원칙 벗어나”

전문가들 “원천기술 연구 강화해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과징금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 퀄컴 인코포레이티드(퀄컴)가 공정위 시정명령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법원에 제출한 신청이 4일 기각됐다.

퀄컴이 공정위와 과징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공정위가 퀄컴에게 1조3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퀄컴이 자신의 특허권을 갖고 경쟁을 방해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보고 막대한 과징금을 물렸다. 퀄컴은 대법원에 항고할 방침이다.

퀄컴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퀄컴 왜 1조 과징금 맞았나?

칩셋 제조업체인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를 갖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선 정해진 표준을 꼭 따라야 한다.

표준필수특허는 해당 기술을 쓰지 않으면 제품 제조·판매나 서비스 제공을 할 수 없는 특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특허가 표준필수특허(SEP)로 인정되면 특허권자는 특허를 이용하려는 사업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프랜드)조건에 특허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표준화기구 프랜드 확약을 따라야 한다.

공정위는 모뎀칩셋을 만들고 있는 퀄컴이 인텔 같은 경쟁 모뎀칩셋 제작사가 SEP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거부하거나, 계약을 맺더라도 판매처를 제한하는 등의 조건을 붙여 이들이 특허권을 활용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퀄컴이 모뎀칩셋 공급을 볼모로 해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하는 것을 막았다. 또 관련 계약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토록 했고, 휴대폰 제조업체의 요청이 있으면 기존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재협상하게 했다.

모뎀칩셋은 휴대폰의 음성 및 데이터 정보를 이동통신 표준에 맞춰 가공해 신호로 전환하고, 다른 휴대폰에서 받은 신호를 음성이나 데이터로 바꾸는 모바일칩셋이다.

‘칩’은 반도체 집적회로를 말한다. 칩셋은 칩과 ‘세트(구성)’란 단어를 합친 것이다. 칩셋은 컴퓨터 메인보드의 핵심이다.

불리해진 퀄컴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윤성원)가 퀄컴의 공정위 시정명령 등 효력정지 신청 사건을 기각함에 따라 퀄컴은 불리해졌다.

퀄컴은 그동안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휴대폰 가격의 약 5%를 특허권 사용료로 받았었다.

퀄컴은 서울고법의 기각 판결에 대해 “퀄컴의 효력정지신청에 대한 이번 법원의 기각결정은 현재 퀄컴이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본안소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이는 추후 법원에서 판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퀄컴은 여전히 공정위의 해당 의결이 사실관계 및 법리적 모든 측면에서 근거가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적법절차에 관한 퀄컴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부정한 심의 및 조사의 결과라는 입장을 유지한다”며 “퀄컴은 공정위의 결정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법률 하에서 부여된 지식재산권에 대한 부적합한 규제를 추구함으로써 공정위의 권한 및 국제법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이러한 점을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퀄컴은 공정위의 결정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보장된 ‘적법절차에 관한 미국기업들의 권리’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 기업들에게 보장돼 있는 절차상의 보호조치들(증거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 심의기일에서의 반대신문에 대한 권리 등)을 적용하지 않은 결과라는 입장이다.

과징금 금액에 대해선 한국 시장의 규모에 비춰 근거도 없고 합리적 관련성도 없는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반발했다.

‘특허 갑질’ 안 당하려면

전문가들은 기술특허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원천기술 확보와 기술 표준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종원 상명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퀄컴은 이 프랜드 원칙을 교묘히 우회하면서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인다”라며 “특히 표준 기술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원천기술 확보는 기업이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옥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원천기술은 근원적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기초기술 등에 정부 지원금이 다른 데에 비해 책정이 덜 돼 있다”며 “기술 개발 못지않게 특허를 표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므로 표준화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곽호성 기자

사진 설명 : 퀄컴 샌디에이고 본사 (사진=퀄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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