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외래 사고’를 ‘정신질환 사고’로

흥국화재, 치매 앓고 있던 계약자의 안과사고에 ‘자해’ 가능성 열어둬 소송까지 끌고가

법원,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 앓았다는 이유로 자해라고 받아들이지 않아

수술로 인한 ‘추상장해’ 관련 보험금 지급에 현명한 판단이 될 사례

치매를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자해로 몰고간 흥국화재의 보험금 지급 거부 사연이 도마위에 올랐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흥국화재 해상보험이 치매를 앓고 있던 보험계약자의 사고를 ‘자해’로 몰아 보험금 지급을 축소·회피하려 했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은 흥국화재의 이 주장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정신질환자의 사고를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몰고가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려 했던 과거 보험사들의 행태에 또 다시 경종을 울릴 전망이다.

경상남도에 거주하고 있던 중년의 A씨는 지난 2008년경 흥국화재 해상보험의 한 실버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 보험상품은 80% 미만 일반후유장해시 가입금액 500만원에 지급률을 곱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며, 일반상해 의료비에 대해 300만원의 보험가입금을 보장하는 계약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일반상해로 50% 이상 후유장해 발생시 2000만원, 질병사망 시 5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장사항도 포함하고 있었다.

피보험자인 A씨는 사망 외 보험금은 자신이 지급을 받도록 했지만, 사망보험금의 경우 자녀들이 해당 보험금의 수익자가 될 수 있도록 설정됐다.

그렇게 7년여 간 해당 보험계약을 유지해 오던 A씨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게 됐고, 지난 2014년 요양병원에 입원해 이 질병을 꾸준히 치료를 해왔다.

그러나 그는 입원 중 ‘좌안 안구 열상’ 그리고 ‘파열 및 수정체 탈구’ 증상이 발견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곧바로 좌측 안구내용물 적출 수술을 받고 퇴원했지만, 다음해 4월경 유명을 달리했다.

A씨의 자녀들은 그의 안타까운 사망을 수습한 뒤, A씨의 과거 보험계약 내용을 살펴봤다. 이를 통해 자녀들은 지난 2008년 흥국화재 보험 등 A씨가 가입했던 보험사들에 A씨의 입원과 사망에 따른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의 자녀 B씨는 지난해 다른 형제들로부터 A씨의 상속 재산 중 보험금 청구권에 대한 채권을 양도받았다.

이에 B씨는 A씨가 가입했던 보험계약에 따라 각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유독 흥국화재만 강한 이의를 제기하며 보험금 지급 거부에 나섰다.

흥국화재 측은 A씨의 사망이 원래 앓고 있던 질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상해에 해당하지 않으며, 치매로 인해 A씨가 자해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이것이 자해로 인한 상해일 가능성 역시 높다는 입장이었다.

흥국화재의 구체적 주장에 따르면, A씨는 사망 이전부터 이미 좌측 눈에 시신경 위측 그리고 녹내장 등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에 왼쪽 눈의 시력이 0.04 이하로 판정돼 흥국화재로부터 질병고도장해 위로금으로 1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이 있었다.

특히 A씨의 이 안과 질병은 기존 질병에 인한 것이기 때문에,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인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해 신체에 입은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흥국화재는 A씨가 정신질환으로 인해 자해를 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흥국화재는 A씨가 평소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이 있었고, 이에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렀다면 이는 보험계약 보통약관에서 정한 보상하지 않는 손해 중 ‘피보험자의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의 사유를 원인으로 해 생긴 손해’로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흥국화재 측은 “A씨에 대한 질병사망 보험금 500만원 외에 다른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B씨 측에 질병사망 보험금만을 지급했다.

반면 B씨는 흥국화재 측의 이런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다. 우선 B씨 측은 A씨가 병사를 원인으로 사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질병사망 보험금 500만원은 당연히 지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그는 A씨의 사고는 질병이 아닌 상해가 그 주요 원인이었고, 특히 그의 사망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해가 절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B씨 측에 따르면, A씨가 요양병원 입원 중 발생한 ‘좌안 안구 열상’과 ‘파열 및 수정체 탈구’ 증상은 상해로서, 이어 대학병원에서 좌측 안구내용물 적출 수술을 받고 실명상태가 된 것도 상해로 인해 얻게 된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A씨의 당시 사고가 흥국화재 보험계약의 장해분류표 상 ‘한 눈이 멀었을 때’의 후유장해지급률 50%와 ‘외모에 뚜렷한 추상(추한 모습)을 남긴 때’의 후유장해지급률 15%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B씨 측 주장대로라면 흥국화재는 A씨에 대한 일반상해 후유장해 보험금으로 보험가입금 500만원에 65%(50%+15%)를 곱한 325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다.

또 B씨는 A씨가 위와 같은 상해 치료를 위해 치료비 중 130여만원을 본인부담금으로 지출했으므로 흥국화재는 이 또한 일반상해 의료비로 지급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B씨 측은 A씨가 상해의 직접 결과로 왼쪽 눈이 실명돼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지급률 50% 이상에 속하는 후유장해가 남게 됐으므로, 일반상해로 50% 이상 후유장해 발생 시에 해당하는 2000만원의 보험가입금액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흥국화재와 B씨 양측은 의견을 접히지 못했고, 결국 소송 전에 돌입하게 됐다.

A씨, 외래 사고로 인한 추상장해 인정받아

요약해 보자면 흥국화재와 B씨 측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벌였던 쟁점은 질병사망보험금과 일반상해 후유장해 보험금, 일반상해 의료비, 일반상해 소득보상자금, 흥국화재의 면책 항변 등 총 다섯 가지였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 중순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우선 A씨의 질병사망보험금 지급에 대해서는 흥국화재와 B씨 양측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흥국화재가 B씨 측에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지 일반상해 후유장해 보험금 지급에 대해서는 분쟁이 상당했던 만큼, A씨의 과거 의사 소견서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신중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A씨의 사고가 흥국화재 보험계약의 장해분류표 상 ‘한 눈이 멀었을 때’의 후유장해지급률 50%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B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사고가 B씨의 실명에 이르게 했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요양병원 입원하기 수개월 전, 한 병원으로부터 발급받은 진단서에 왼쪽 눈의 시신경유두창백 증상이 보여 사실상 실명상태를 뜻하는 ‘좌안 광각무’라는 의사소견이 적시돼 있던 사실 그리고 치매 관련 뇌기질성 병변으로 인한 시신경 손상이 의심돼 향후 시력 호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소견을 받은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이후 A씨는 왼쪽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의 상태로 시력 측정표에 의한 시력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시각장애 6급을 받는 등 B씨 측이 주장하는 요양병원 입원에서의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사실 상 실명에 이르렀고, 또 해당 사고로 실명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사고로 인해 A씨의 왼쪽 눈이 실명됐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A씨의 눈이 영구 실명되는 상해로 보험약관의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50% 이상의 후유장해’ 즉, 일반상해 소득보상자금 지급 부분에 대해서도 B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후유장해지급률 15%에 해당하는 ‘외모에 뚜렷한 추상(추한 모습)을 남긴 때’ 즉 추상장해를 입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B씨 측 주장을 받아드렸다.

사실 A씨는 요양병원에서 좌안 파열 및 수정체 탈구 등 상태로 발견돼 대학병원에서 안구내용물 적출 수술을 받은 후, 좌안 안구 검체에 대한 병리판독 결과 왼쪽 눈알이 찌그러져 작고 부드럽게 변한 상태였다. 때문에 작은 외상이나 충격에 의해서도 눈알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런 A씨의 상태가 추상장해에 해당할 여지는 충분했다.

특히 A씨가 좌안 파열 및 수정체 탈구 등 상태로 발견될 당시 요양병원 간호사가 A씨의 좌측 눈에서 다량의 피가 흐르는 것을 목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재판부는 아무런 외력이 작용하지 않았음에도 안구내용물이 적출되는 결과까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단지 A씨가 추상적 질병 등과 같은 내부적 원인이 아닌, 외부로부터 작용한 원인에 의한 ‘외래사고’에 의해 ‘외모에 뚜렷한 추상을 남겼을 때’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안구내용물 적출술 시행 당시 의안(인공눈알)을 삽입하지 못해 보험약관 상 눈동자가 적출돼 의안마저 삽입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 추상장해 중 뚜렷한 추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치매 앓았으니 자해다(?)

앞서 언급한대로 재판부는 A씨의 사고에 대해 외부로부터 작용한 원인에 의한 ‘외래사고’로 규정했다.

때문에 재판부는 A씨의 수술과 치료비 중 본인부담으로 납부한 130여만원에 대해 흥국화재가 B씨 측에 일반상해 의료비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흥국화재 측은 A씨의 왼쪽 눈에 안내 축농, 눈꺼풀 부종 등과 같은 기왕증이 존재했기 때문에 해당 치료비 중 일부가 해당 부분에서 지출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왼쪽 눈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시키는 안구내용물 적출 수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증산에 대한 치료가 같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흥국화재의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흥국화재와 B씨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있는 흥국화재의 면책 항변, 즉 ‘A씨의 자해’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흥국화재 측 주장을 단호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흥국화재는 A씨가 치매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스스로 눈을 찔러 사고를 일으켰고, 이는 보험약관 상 ‘피보험자의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의 사유를 원인으로 해 생긴 손해’로서 자신들의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A씨가 자해를 했다는 인과관계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흥국화재 측은 이런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항상 증거에 입각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은 이런 설득력 떨어지는 주장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재판부는 “A씨가 당시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사실은 알 수 있으나, A씨가 치매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이 사건 사고를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이 사건 사고가 A씨의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에 기인한 것임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흥국화재의 이 부분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밝혔다.

특히 B씨 측은 A씨가 해당 보험계약을 할 당시 약관 중 관련 면책사유에 대해 설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흥국화재는 해당 면책약관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설명의무 대상이 되지 않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흥국화재는 B씨 측에 추상으로 인한 일반상해 후유장애보험금과 일반상해 의료비 그리고 질병사망보험금 등 700여만원, 이중 200여만원에 대해서는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해야 했다.

이번 사례는 보험사가 치매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보험계약자에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자해’로 몰고 가 보험금 지급을 축소·회피하려는 행태를 바로잡는 좋은 판결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도 보험계약자들이 수술을 통한 추상장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제대로 파악한 뒤 보험금을 정당하게 지급받을 수 있는 지침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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