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확인 가능했던 기록 있었음에도… 소비자 불신만 키워

메리츠화재 보험가입자 P씨, 대형병원 두 곳에서 대뇌 죽상경화증 진단

메리츠화재, 객관성 떨어지는 전문의 소견·철저한 검사 없었다며 보험금 지급 거부

의료 진료기록 쉽게 열람 가능했음에도… ‘끝까지’ 보험금 지급 거부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다 패소한 메리츠화재의 사례가 뒤늦게 공개됐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메리츠화재가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진단확정 등을 부정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다 최근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메리츠화재는 피보험자의 입원 기간 중 명백한 처방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관련된 부분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중년의 남성 P씨는 지난 2000년경 암과 당뇨 등의 질병을 보장으로 하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하 메리츠화재)의 한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현재는 판매가 중지된 해당 보험상품은 암 보장을 기본으로 하는 동시에 ‘2대질병 진단’ 그리고 당뇨 등 ‘성별특정질병 치료’에 대한 담보를 주요 특약으로 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메리츠화재의 보험약관 상 2대질병이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기본 분류에 있어 허혈성 심질환과 뇌혈관 질환(질병코드 I67)으로 분류되는 질병을 의미했다.

여기서 메리츠화재 측이 피보험자인 A씨에 보상하는 손해는 보험기간 중 P씨가 최초 뇌혈관 질환으로 ‘진단확정’을 받았을 때의 뇌혈관 질환 진단비로, 1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이 질병에 대한 ‘진단확정’은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기관의 전문의 자격을 가진 자에 의한 병리학적 소견, 세포학적 소견 그리고 X선이나 CT, 내시경, 심전도검사 등 이학적 소견, 임상학적 소견 및 수술 소견의 전부 또는 그 중 일부가 제시돼야 성립할 수 있었다.

또 성별특정질병의 경우 제3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질병코드 E10에서 E14까지 해당하는 당뇨 등의 질병을 의미했다.

메리츠화재는 P씨가 이와 같은 성별특정질병으로 ‘진단을 확정’받고 그 성별특정질병의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121일 이상 계속해 입원한 뒤 생존해 퇴원했을 때, 500만원의 요양비를 지급하게 돼 있었다.

물론 성별특정질병의 진단확정 역시 2대질병의 경우처럼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기관에 소속된 전문의의 여러 의학적 소견이 전부 또는 일부로 돼 있어야 성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년간 메리츠화재에 가입한 보험계약을 유지해 오던 P씨는 당뇨병과 이에 따른 합병증을 겪었고, 결국 지난 2013년 말 증세가 악화돼 제주시에 있는 한 대형병원인 A중앙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병원에서 P씨에게 진단한 주요 질병은 ‘당뇨병성 다발신경병증 등’이었고, 부수적 질병은 ‘당뇨병성 말초혈관병증을 동반한 인슐린 의존 당뇨병 등’이었다.

다음 해 P씨는 A중앙병원과 B한방병원에서 약 180일 동안 입원과 퇴원을 다섯 차례나 반복하며 철저한 치료를 받았지만, 2014년 말 A중앙병원에서의 마지막 입원 기간 중 심각한 두통과 어지러움 그리고 근력저하 증상을 호소했다.

이에 A중앙병원 측은 P씨에 대한 뇌 MRI 및 MRA 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주치의는 P씨가 기존 질병에서 ‘대뇌 죽상경화증(질병코드 I672)’이라는 부수적 질병이 추가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대뇌 죽상경화증은 기타 뇌혈관 질환으로 분류되며, P씨가 가입한 메리츠화재 보험약관 상 2대질병에 포함되는 질병이었다.

이후 P씨는 퇴원 후에도 안면마비 증상을 보였고, 다른 대형병원인 C중앙병원에 재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는 이 병원 주치의로부터 ‘일과성 대뇌허혈(질병코드 G45)’ 및 대뇌 죽상경화증 진단을 최종적으로 받았다.

P씨는 그동안의 입원경과 및 진단결과를 첨부해 지난 2000년부터 유지해 온 메리츠화재의 보험계약 상 담보특약에 따라, 2대질병 진단비 1000만원 그리고 성별특정질병 요양비 500만원의 보험금을 메리츠화재 측에 청구했다.

그러나 메리츠화재 측은 자사의 손해사정보고서를 토대로 P씨 측의 2대질병 진단비 및 성별특정질병 요양비에 대한 보험금 전액의 지급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메리츠화재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보험금 지급 거부

메리츠화재 측은 P씨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그가 입원했던 A중앙병원과 C중앙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검사결과 그리고 전문의 소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우선 P씨의 2대질병 진단비 부분에 대해서는 그가 A중앙병원에서 시행한 MRI 및 MRA 검사결과, 단지 ‘혈관 내부의 윤곽이 무디다’는 정도의 소견 그리고 대뇌 죽상경화증의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소견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객관적으로 대뇌 죽상경화증을 진단할 만한 특별한 이상 소견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진료기록상으로도 대뇌 죽상경화증과 관련된 별도의 치료 이력도 발견할 수 없어 진단확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P씨가 안면마비 증상을 보인 후 재입원한 C중앙병원에서의 검사에 대해서는 그가 뇌혈관 검사 등의 객관적 검사를 거치지 않았고, 진료기록상 일과성 대뇌허혈로 진단한 사실만 확인될 뿐 당초 대뇌 죽상경화증으로 진단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메리츠화재 측은 “두 병원의 주치의가 P씨를 대뇌 죽상경화증으로 진단한 것은 그 기초가 된 객관적 검사결과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며 P씨가 받은 진단만으로는 보험계약 약관에 명시된 보험사고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메리츠화재 측은 P씨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진단을 하기 원한다며 제3의 전문의에게 자문을 의뢰했고, 그 결과 P씨에 대해 진단할 수 있는 병명이 그가 가입한 보험상품의 담보대상과는 무관한 일과성 대뇌허혈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P씨에게 2대질병 중 하나인 뇌혈관 질환의 객관적 진단을 확정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메리츠화재는 P씨에 대한 성별특정질병 요양비 부분 역시, 그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입원 기간 중 당뇨 치료의 직접적인 목적으로 계속해서 입원했다고 인정할 수 없어 보험금 지급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P씨는 메리츠화재의 보험금 지급 거부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그는 자신이 입원한 병원 두 곳에서 2대질병 중 뇌혈관 질환에 해당하는 대뇌 죽상경화증 진단을 분명히 받았고, 당뇨로 121일 이상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퇴원한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결에 적시된 재판부의 판단 그리고 메리츠화재 측 주장에 따르면, 메리츠화재는 진단확정의 명확한 정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진=주간한국)
이에 대한 전문의의 소견이 적시된 곳 역시 단순한 의증이 아닌,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기관의 전문의 자격을 가진 자가 발급한 정당한 진단서라고 덧붙였다.

특히 P씨는 무려 세 곳의 의료기관에서 내려진 진단 결과에 따라 청구한 보험금이 그대로 지급될 것이라는 점에 의심하지 않았음에도, 메리츠화재의 보험금 전액 지급 거부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P씨와 메리츠화재 사이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개인과 대형 보험사 간 소송에 돌입하게 됐다.

굳이 필수 아닌 과정 거치지 않았다고… 질병 진단마저 부정한 메리츠화재

손해사정보고서 작성과 제3의 전문의로부터의 자문이라는 정성을 들였음에도, 재판부는 메리츠화재 측의 주장을 단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최근 판결을 내린 제주지방법원은 A중앙병원 등에서 시행한 P씨에 대한 각종 진단이 메리츠화재 측의 의견과는 다르게 지극히 ‘합리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과연 메리츠화재가 보험계약상 ‘진단확정’의 정의에 대해 제대로 알고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는지 의구심을 표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계약 상 진단확정이란, 병원 또는 이와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의료기관의 전문의 자격을 가진 자에 의한 여러 의학적 소견이 전부 또는 일부로 돼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이런 약관 문언에 비춰 봤을 때, 진단확정이 반드시 메리츠화재가 주장하는 뇌혈관 검사 등 객관적 검사 결과에 의해서만 뒷받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재판부는 “P씨에 대한 전문의의 진단은 비록 MRI 및 MRA 검사라는 이학적 검사 결과만으로는 다소 부족하지만, 여기에 기타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출한 병리학적, 임상학적 소견”이라며 “그런 판단이 일반적인 의학지식에 비추어 객관적 타당성을 의심할 만한 것이 아닌 이상 진단확정으로서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정리해 보자면, P씨의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해 메리츠화재 측은 특별히 관련 치료 이력이나 이상 부분에 대해 적시하지 않은 전문의의 소견 그리고 뇌혈관 검사 등의 객관적 검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진단확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P씨의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특별한 치료나 이상 부분에 대한 기재 그리고 이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진단확정 부분이 무력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이런 과정까지 거쳤다면 보다 철저한 소견이 이뤄지겠지만, P씨에게 대뇌 죽상경화증이라는 질병이 전문의로부터 발견됐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때문에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었던 특별 치료나 추가 검사 등을 굳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P씨의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진단확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메리츠화재 측 주장은 오히려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무엇보다 P씨가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특별한 치료를 행하거나 관련 이력을 남기지 않았다는 메리츠화재 측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P씨에 대한 진료 기록 등을 모두 종합해 P씨가 입원 기간 중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고, 이에 대한 전문의의 진단 역시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우선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치료는 혈압 및 당뇨 조절과 생활습관 변화가 선행돼야 하며, 당뇨와 합병증을 앓고 있던 P씨의 경우 당뇨 치료와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한 치료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당뇨 환자에게 대뇌 죽상경화증은 별도의 특별한 약물치료 등을 요하는 것이 아닌, 이미 겪고 있는 당뇨에 대한 약물치료에 더해 항혈전제인 아스피린 처방만 이뤄지면 충분했다. 당연히 P씨는 이런 약물치료를 기존부터 행해오고 있었고, 그의 전문의 역시 대뇌 죽상경화증에 대해 약물치료 외에 더욱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재판부는 P씨가 오랜 기간 당뇨와 합병증을 앓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뇌혈관의 동맥경화 등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증거라고 바라봤다.

또 그가 A중앙병원에서 시행한 MRI 검사 영상에서 뇌혈관 내의 모양이 불규칙적이었고, 비슷한 기간 심각한 두통과 어지러움 그리고 근력저하 증상을 호소한 점도 뇌혈관 흐름이 원활하지 못함에 따른 증상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대한 전문의의 소견을 통해 P씨의 당시 증상이 뇌혈관 질환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상당하며, 대뇌 죽상경화증이라는 전문의의 진단도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P씨가 입원 기간 중 당뇨 치료의 직접적인 목적으로 계속해서 입원했다고 인정할 수 없어 성별특정질병 요양비 지급을 거부한 메리츠화재 측 입장에 대해 더욱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P씨는 A중앙병원과 B한방병원에서 약 180일 동안 입원과 퇴원을 다섯 차례나 반복했다. 중간에 퇴원한 기간은 최대 40여일에 불과했고, 진단 병명은 계속해서 ‘당뇨병성 다발신경병증 등’으로 일관됐다.

또 P씨는 입원 기간 중 인슐린 주사를 지속해서 처방받았고, 당뇨병 치료를 위한 각종 약물처방 그리고 그 합병증 치료 및 증상 완화를 위한 조치도 관련 문서에 명확히 적시돼 있었다. 병원 측에 사실조회 신청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해당 기록을 메리츠화재가 확인하지 못한 채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면, 보험사의 횡포로까지 볼 소지가 있었다.

재판부는 메리츠화재가 성별특정질병 요양비 지급을 거부한 부분에 대해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P씨가 당뇨병 치료를 주된 목적으로 120일 이상 계속해서 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은 ‘넉넉히’ 인정된다”라고 판시했다.

결국 메리츠화재는 P씨에게 2대질병 진단비 1000만원과 성별특정질병 요양비 500만원의 보험금에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게 됐다.

메리츠화재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까지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 사건 1심 판결이 지극히 정당했다며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가 자사 매출증가 만큼이나 보험소비자들에 대한 무리한 소송이 불신만을 키운다는 점에 보다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
이번 메리츠화재의 경우는 전문의의 소견이 ‘자세히’ 기재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계약상 진단확정이 아니라는 일부 보험사들의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판례라는 목소리다.

특히 손해사정보고서 작성과 제3의 전문의로부터의 자문이라는 과정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성별특정질병 요양비의 경우 P씨가 계속적 치료를 받았다는 증거가 명확했음에도 이를 지급하기를 거부하며 항소심까지 재판을 이어가려 했다는 점은 메리츠화재 가입자들과 예비 가입자들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