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불가능한 상태의 자살, “자살 아니다”… 면책 주장한 푸르덴셜

우울증 겪던 중 자살한 A씨… 푸르덴셜,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며 보험금 지급 거부

우울증→자유로운 의사결정 할 수 없었어… 보험수익자 “고의로 해친 경우 아니다” 주장

법원 “푸르덴셜생명,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 되지 않아”

우울증 환자의 자살에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다 패소한 푸르덴셜생명의 사례가 공개됐다. (사진=주간한국)
한민철 기자

정신질환을 겪고 있던 피보험자의 자살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한 보험수익자에, 이에 대한 지급을 거부한 푸르덴셜생명의 최근 사례가 공개됐다. 푸르덴셜생명은 피보험자의 자살이 보험약관상 보험금 지급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피보험자가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했다는 점을 보험수익자가 증명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법원은 푸르덴셜생명 측 주장은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던 중년의 남성 A씨는 지난 2000년 말, 외국계 보험사 푸르덴셜생명보험의 한 종신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A씨는 이 보험계약을 체결하며, 피보험자는 자신으로 그리고 질병 또는 상해를 입었을 때 보험수익자 역시 자신으로 설정했다. 또 사망 시에는 보험수익자를 그의 아내인 H씨로 지정했다.

A씨가 가입한 푸르덴셜생명의 이 보험상품에는 재해사망 특약이 있었다. 이는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인 A씨가 재해로 인해 사망하거나 장해등급 분류표 중 제1급 장해상태가 됐을 때, 보험수익자 H씨에 특약보험 가입금액 전액인 8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단지 푸르덴셜생명은 약관 상 피보험자인 A씨가 고의로 자신을 해치거나, 보험수익자인 H씨가 A씨를 해친 경우 등으로 A씨가 사망하거나 제1급 장해상태가 됐다면, H씨 측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해당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그렇게 A씨는 15년이 가깝게 푸르덴셜생명과의 이 보험계약을 유지해오던 지난 2014년 여름, 자신의 아파트에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안타깝게도 A씨는 다음날 유명을 달리했다.

병원에서 진단한 A씨의 사망 원인은 두피열상과 외상성 뇌출혈, 요추골절, 우측다발성늑골골절 등이었다.

A씨의 장례를 수습한 H씨는 두 달 후, 푸르덴셜생명 측에 A씨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푸르덴셜생명은 보험금 청구 시점으로부터 다시 두 달 후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A씨가 자살한 것”이라며 약관 상 보험자(푸르덴셜생명) 면책사유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H씨 측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당연히 H씨는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H씨는 푸르덴셜생명 측이 언급한대로 남편 A씨가 사고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A씨는 당시 담당업무와 친구의 병사 등 외부적 요인으로 병원으로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실이 있다. H씨는 남편이 정신적으로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 행동으로 사고를 겪게 됐고,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A씨의 사망은 재해사망이 명백해 푸르덴셜생명 측이 재해사망보험금 8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푸르덴셜생명 측은 A씨가 자살한 것 사실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사고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보험자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 보험약관의 문언 상 ‘자살’이란, 보험보장 대상에서 아예 제외를 시키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푸르덴셜생명은 H씨의 주장 중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는 이번 보험약관 상 면책에 대한 예외로도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고 당시 A씨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여부는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언급한 H씨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보험약관의 문언해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설령 H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당시 A씨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점은 ‘이를 주장하는 H씨가 입증해야 하는데’, A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푸르덴셜생명 측은 “자살동기나 진료경과 등에 비춰 보더라도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행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H씨 측에 보험계약에 따른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H씨와 푸르덴셜생명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소송에 들어가게 됐다.

법원 “A씨,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 푸르덴셜생명 면책사유 되지 않아”

이번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대구지방법원은 H씨의 손을 들어줬다. 푸르덴셜생명 측은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최근 H씨의 승소를 결정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A씨가 가입한 푸르덴셜생명 보험상품의 약관 상,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A씨)가 재해로 사망한 경우 특약보험금 전액(8000만원)을 지급 그리고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자가 면책되는 것으로 규정, 면책에 대한 예외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가 자살 당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푸르덴셜생명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법 제659조 제1항에는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생겼을 경우, 보험자(푸르덴셜생명)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732조 제2항에서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에서 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생긴 경우에도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피보험자 등이 고의로 인해 사망사고가 생긴 경우, 보험계약상의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에 대한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했다.

다만 지난 2007년 9월 6일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자살이란 사망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절단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를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A씨의 경우도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 사고로서 ‘재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었다.

1심 재판부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자살은 그 자체로 이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볼 수 없으며, 푸르덴셜생명은 보험약관에 따라 H씨 측에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라며 “면책예외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보험금 지급 대상으로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리해 보자면, 푸르덴셜생명은 “A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살에 이르렀다는 근거가 되는가”라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당시 A씨의 상태가 충분히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때문에 엄밀히 A씨의 죽음을 자살로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 푸르덴셜생명의 면책예외 규정과는 관계없이 A씨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이었다.

특히 푸르덴셜생명 측이 언급한 것과는 다르게,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에 있어서도 푸르덴셜생명 측의 보험금 지급의무를 면책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자살 입증을 보험수익자가(?)… 푸르덴셜생명의 큰 착각이었나

푸르덴셜생명 측은 H씨와의 1심 재판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을 통해 입장을 더욱 보강했다. 무려 15년 가깝게 보험계약을 유지해온 고객의 사망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법원의 판결까지 불복하며 항소한 점부터 매우 부적절한 모습이었다.

푸르덴셜생명은 항소심까지 끌고 갔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한민철 기자)
물론 항소심에서는 다양한 법률적 근거를 들어 원심 판결의 부당성 및 H씨 측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유를 소명했다. 그러나 1심 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푸르덴셜생명은 생명보험 표준약관이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를 보험자 면책의 예외사유로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취지에 대해, 본래 이것이 보험금 지급사유는 아니지만 보험자 면책의 예외사유로 규정된 경우에만 보험금 지급사유로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A씨의 보험약관은 ‘피보험자가 재해로 인해 사망한 경우’를 원칙적인 보장대상으로 규정하고, 면책사유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면책의 예외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어 푸르덴셜생명 측은 A씨의 보험상품이 피보험자의 자살이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해서 보험의 보장범위를 정한 뒤, 그에 따라 보험료와 보험금이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살한 경우까지 보험금 지급의무를 인정한다면 보험계약의 보장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해 보험의 대원칙인 수지상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1심 재판부 그리고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푸르덴셜생명 측이 A씨의 보험상품은 자살이 보험사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장범위를 정한 뒤 그에 따라 보험료와 보험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물론 이런 주장만으로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가 푸르덴셜생명의 보험금 지급의무를 면책시킬 수 없다는 이번 사건 판결의 ‘대주제’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적인 입장을 보강해 맞이한 항소심이 큰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푸르덴셜생명 측은 크나 큰 오류 하나를 범했다. 앞서 푸르덴셜생명은 H씨 측에 사고 당시 A씨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점을 ‘H씨가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초, 우리 법원은 당시 푸르덴셜생명 측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의미있는 판결을 내놨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보험약관이 있더라도,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보험사가 명백한 자살의 증거를 제시해야’한다고 판결했다. 만약 피보험자의 자살을 보험사가 입증해내지 못한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씨의 자살이 보험금 지급대상이라는 점을 피보험자의 가족, 즉 보험수익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푸르덴셜생명 측 주장과는 정반대였다.

물론 H씨는 A씨의 병원 진료기록 그리고 그가 가입한 다른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구한 결과 등의 자료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실제로 H씨는 사고가 있던 시기, 병원으로부터 무력감, 집중력 감소, 식욕 및 체중감소, 우울 등을 호소해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또 같은 날 식욕부진과 피로증후군으로 내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며칠 후 A씨는 다른 병원에서도 의료진에게 “3개월 전부터 마음이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기분도 우울하다”라고 밝히며 약물처방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여러 차례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우울 증상을 호소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특히 A씨의 사고 이후 그가 가입했던 다른 보험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이 보험사가 자문을 구한 의료기관에서는 “A씨의 심리검사 결과를 비추어 볼 때, 중증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A씨는 자살 당시 본인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사건 1심 법원의 촉탁에 따라 A씨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진료기록상 A씨는 우울한 기분을 주로 호소했고, 이로인해 무기력감과 집중력 감소 등을 호소했다”라며 “우울장애 환자는 치료 중에도 자살위험이 동반되므로, A씨 또한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자살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사망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다”며 “푸르덴셜생명은 A씨의 재해로 인한 사망에 따라 보험수익자인 H씨에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면책사유를 내세워 그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푸르덴셜생명 커티스 장 대표이사. (사진=연합)
푸르덴셜생명 측은 H씨에 재해사망보험금 8000만원과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게 됐다. 남편의 우울증과 이로 인한 사망의 슬픔을 안은 채, 그가 남겨놓고 간 보험금을 청구하는 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했던 푸르덴셜생명. 거의 매년 ‘좋은 생보사 1위’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지만, 소송에 항소까지 끌고 갔던 이들의 태도에 소비자는 재차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례는 최근 몇 년간 보험업계에서 꾸준히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살보험금과 관련돼 보험소비자와 보험사들 사이의 큰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특히 고의가 아닌 정신질환 등의 상태에서의 자살의 경우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 사유에 해당한다는 명백한 판례가 나온 만큼, 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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