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의견 신뢰하고, 소비자 의견 무시(?)… 보험금 지급 거부, 결국 패소

두 명의 전문의로부터 ‘중대한 암’ 취지의 보고서·진단서 발급받았던 A씨

한화생명, ‘경계성 종양’이라는 자문에 의존해 ‘중대한 암’이라는 소비자 주장 무시했나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번호 ‘C20, M8240/3’, 경계성 종양 아닌 명백한 ‘중대한 암’

중대한 암을 일방적 의견에 의존해 경계성 종양이라고 주장하다 법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패소 판결을 받은 한화생명보험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복수의 전문의를 통해 중대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보험소비자에게 자문기관의 의견에 의존해 ‘경계성 종양’이라며 정당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한화생명보험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한화생명 측은 고객과 무려 3년여 간 소송을 진행했지만, 1심은 물론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A씨는 지난 2011년 초, 대한생명보험의 한 종합보험에 가입했다. 그는 해당 보험상품의 피보험자 및 보험수익자 모두를 자신으로 설정했다.

이로부터 약 반년 후, A씨의 가족인 B씨도 같은 대한생명의 한 변액유니버셜보험에 가입했다. B씨는 보험수익자를 자신으로 설정했지만, 피보험자를 A씨로 지정했다.

여기서 피보험자란 보험계약상 보험사고로 인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사유를 발생시키는 당사자를 의미한다. 또 보험수익자는 피보험자의 보험사고에 대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 및 수령하는 이를 뜻한다.

A씨의 경우처럼 피보험자와 보험수익자가 같은 경우가 보통이지만, B씨처럼 피보험자와 보험수익자가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이 가입한 보험상품에는 암과 기타 질병관련 특약이 담겨 있었다. 우선 A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에는 피보험자가 ‘중대한 암’으로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25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특약이 제시돼 있었다.

B씨의 보험상품에도 피보험자가 ‘중대한 질병’으로 진단확정을 받은 경우 약 376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약이 있었다. 여기서 질병이란 암과 뇌질환, 심장질환 등을 뜻하기 때문에, 중대한 질병에는 중대한 암도 포함돼 있었다.

또 A씨와 B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에서 피보험자가 ‘경계성 종양’으로 진단이 확정된다면 각각 6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특약도 나타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A씨가 전문의로부터 ‘중대한 암’으로 확진을 받게 된다면, 그가 가입한 보험계약에서의 2500만원 그리고 B씨가 가입한 계약에서의 3760여만원, 총 6260여만원의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할 수 있었다.

물론 A씨가 전문의로부터 ‘경계성 종양’ 확진을 받는다면, 두 사람의 보험계약에서 각각 600만원, 총 1200만원의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였다.

A씨 등이 해당 보험에 가입한 다음 해인 지난 2012년 10월 대한생명이 한화생명보험(이하 한화생명·대표이사 차남규)으로 사명이 바뀌면서, A씨와 B씨의 해당 보험계약과 관련된 보험금 지급 및 심사 업무도 한화생명이 맡게 됐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 보험계약을 유지해 오던 지난 2013년 10월경, A씨는 거주지 주변의 한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이 병원의 소화기내과 임상 전문의 C씨는 A씨에 직장 내 용종이 발견됐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는 곧바로 용종 절제술을 받게 됐다. 수술 다음 날, 임상의 C씨는 A씨에 대한 조직병리 검사를 실시한 뒤 ‘신경내분비종양 1급’이라는 진단명의 조직병리검사 보고서를 발행했다.

임상의 C씨는 해당 보고서에 ‘점막층 및 점막하층 침윤’, ‘림프관 침윤 없음’, ‘종양크기 : 0.3㎝’, ‘절제부위의 종양침윤 없음’이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A씨는 다음 해인 2014년 5월경 더욱 큰 병원을 찾아, 병리과 전문의 D씨로부터 재검사를 받은 뒤 병리학적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 진단서에서는 임상의 C씨가 A씨의 조직병리검사 보고서에 기재한 것과 유사한 내용으로 ‘직장의 신경내분비종양 1급(카르시노이드 종양)’ 그리고 ‘한국질병분류번호 : C20, M8240/3’ 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이어 ‘종양의 크기 : 0.3×0.2㎝’, ‘종양의 침윤 : 점막층 및 점막하층’, ‘림프관 및 혈관의 침윤 : 없음’ 등의 조직검사결과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전문의 D씨는 진단서 내에 A씨가 침윤과 전이하는 특성을 가진 종양을 가진 경우로 ‘명백한 악성 종양’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소견을 기재했다.

실제로 A씨가 진단받은 카르시노이드 종양은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표(제5·6차)에 따라 기본적으로 형태학적 분류코드 ‘M8240’을 제시받는다.

그런데 끝에 ‘/0’이 붙으면 단순한 양성, ‘/1’이 붙으면 양성 또는 경계성 또는 낮은 악성 잠재성, ‘/2’가 붙으면 정상소재의 암종 또는 비침윤성·비침범성 그리고 ‘/3’의 경우 ‘악성’ 종양으로 분류한다.

만약 ‘M8240/1’이라면 ‘경계성 종양’에 해당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A씨의 진단서 내에 ‘M8240/3’이라고 적시돼 있던 만큼 그의 질병은 ‘악성 카르시노이드 종양’이 명백했다.

또 진단서 내 ‘한국질병분류번호 : C20, M8240/3’이라는 내용 중 ‘C20’은 ‘직장 내 악성신생물’, 다른 말로 ‘직장암’을 의미했다.

한화생명 “학회에서는 경계성 종양이라는데”…

A씨는 임상의 C씨로부터 받은 수술 결과 및 조직병리검사 보고서 그리고 전문의 D씨로부터 발급한 진단서 등을 첨부해 한화생명 측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특히 B씨 역시 자신이 유지해 온 한화생명 보험상품의 피보험자가 A씨였던 만큼, 이번 A씨의 암 진단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 및 수령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이들은 피보험자가 전문의로부터 ‘중대한 암’을 진단받은 만큼, 2500만원과 3760여만을 각각 한화생명 측에 청구했다.

그러나 한화생명은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두 사람에게 각각 6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피보험자가 중대한 암이 아닌 ‘경계성 종양’으로 확진을 받았을 때 지급하는 금액의 경우였다.

한화생명 측은 두 사람의 보험금 청구가 이뤄지던 시기 대한병리학회로부터 A씨의 진단에 대한 자문을 받았고, A씨의 경우는 경계성 종양이라는 의견이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화생명 측은 학회로부터 “종양의 크기가 0.3㎝이며 절제된 조직 내에 국한돼 있고, 종양 주위 조직에 종양이 없기 때문에 완전 절제된 것으로 보인다. 고유근층(고유근유층) 침윤은 없는 것으로 판정이 가능하므로 경계성 종양(형태학적 분류코드 M8240/1)에 해당한다”라는 회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A씨 측은 경계성 종양이라는 한화생명 측 주장에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은 소화기내과 임상 전문의와 병리과 전문의로부터 사실상 ‘중대한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한화생명 측이 경계성 종양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소송에 돌입하게 됐다.

법원 “주위 조직으로의 침윤 파괴적 증식, 중대한 암 특징”

지난 2014년 6월에 소송이 접수된 지 무려 3년여가 지난 최근에서야 A씨 측과 한화생명 간의 보험금 소송은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은 1심과 항소심 재판 모두 A씨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경계성 종양이라는 한화생명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었다.

한화생명은 학회의 의견을 참고해 A씨의 경우가 중대한 암이 아닌, 경계성 종양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
우선 재판부는 한화생명 측이 자문을 구한 대한병리학회의 회신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봤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회 측은 A씨의 종양 주위 조직에 종양이 없기에 절제가 완전히 이뤄졌고, 고유근육층에 대한 침윤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놨다.

또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의 약관 상 ‘중대한 암’에 대한 규정에 대해 들여다 봤다.

두 사람이 가입한 대한생명의 보험상품 약관에서는 중대한 암에 대해 “악성종양세포가 존재하거나 주위 조직으로 약성종양세포의 침윤, 파괴적 증식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악성종양”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또 여기에서는 병리학적으로 제자리암과 경계성 종양 등의 유사암은 중대한 암으로 포함하지 않으며, 중대한 암의 확진은 해부병리 전문의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자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약관에서는 중대한 암의 특징으로 대한병리학회에서 언급한 ‘주위 조직’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나타나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병리과 전문의 D씨는 A씨에 대한 진단서 내 ‘슬라이드 판독상 침윤이 실제 진행된 상태인지 여부’에 대해 “A씨의 종양이 점막층과 점막하층에 분포돼 있으며, 점막하층에 종양이 더 많고, 점막층에서 발생한 종양이 점막하층으로 침윤해 더 많이 자랐다”라며 “현재 상태에서는 (종양의) 크기가 작아 다른 부위로 전이했을 가능성이 적지만, 제거하지 않아 크기가 더 커지면 전이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소견을 기재하며, A씨의 종양이 침윤과 전이의 특성이 있는 악성종양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일반적 고객의 입장에서 점막층에서 점막하층으로의 침윤이 상당히 진행됐고, 향후에도 추가적 침윤이 발생할 수 있다면 중대한 암의 특징인 ‘주위 조직으로의 침윤 파괴적 증식’이라는 요건을 갖췄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라며 “A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병리과 전문의의 병리학적 진단이 근거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단정할 사유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5월 12일 대법원의 판결(2015다243347) 등에 따르면, 보험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약관 조항에 대한 해석이 명백하지 않다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된다.

한화생명 측이 대한병리학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위 조직’에서의 종양이 존재하지 않다는 등의 사유로 중대한 암을 정의했지만, 보험약관 상에는 이 주위 조직에 대해 보험사 및 일반 고객 모두가 객관적·획일적으로 이해할 만한 내용이 제시돼 있지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때문에 이 ‘주위 조직’에 대해서는 고객인 A씨 측에 유리하게 해석이 내려져야 하며, 그가 병리과 전문의로부터 진단받은 내용에 따라 ‘주위 조직으로의 침윤 파괴적 증식’, 즉 중대한 암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차남규 대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보험사’ 지향한다면… 무리한 소송 지양해야

특히 재판부는 한화생명 측이 A씨에 대해 경계성 종양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옳지 않다는 판결을 내놨다.

A씨 등의 보험약관 상 소화기관에서의 경계성 종양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표에서 ‘D37, M8240/1’로 분류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표 중 신생물 형태분류에 따르면, A씨가 제시받은 형태학적 분류코드 ‘M8240/3’을 ‘충수에 발생한 불확실한 악성 잠재성의 유암종인 M8240/1을 제외한 유암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때문에 경계성 종양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대한병리학회는 지난 2008년부터 논문 등을 통해 ‘1㎝ 미만의 전이가 없는 직장 유암종을 경계성 종양으로 분류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이번 A씨의 0.3㎝ 크기의 종양이 경계성 종양이라는 의견을 한화생명 측에 전달한 것도 이런 측면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충분했고, 재판부는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대한병리학회의 해당 의견이 학계 내에서의 통일된 견해라고 하기도 어렵다”라며 “A씨 등에 대한 보험계약 당시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에 반영되지도 않았으며, 이를 기준으로 삼기도 적절하지 않다”라고 판결했다.

또 한화생명 측이 자문을 구한 대한병리학회의 상급 기관인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재판부가 회신한 사실조회결과 등에 따르면, 전문의들마다 환자에게 부여하는 진단코드에 대해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특히 A씨의 경우처럼 직장 유암종의 악성종양 분류 여부 역시 병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병리과 전문의 D씨의 진단을 더욱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한화생명 측은 자신들의 주장이 어느 한 가지도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A씨와 B씨에게 각각의 보험금 청구금액에서 600만원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그리고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했다.

한화생명 측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까지 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납부한 보험료가 향후 보험사기가 아닌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보험금을 지급하길 원하기 때문에, 고객과의 보험금 분쟁을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번 한화생명의 보험금 소송은 두 명의 고객의 주장 그리고 두 명의 전문의의 소견 및 진단서 내용을 뒤로 한 채, 사실상 자문기관의 의견에 의존한 꼴이었다.

고객은 자신이 중대한 암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수술 기록 및 중대한 암에 해당한다는 소견을 적시한 조직병리검사 보고서 및 진단서 등을 보험사에 제출해 정당한 보험금 청구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생명은 학계에서 통일된 견해도 아니었던 자문 내용을 바탕으로 이를 경계성 종양이라며 제대로 된 보험금 지급을 거부, 3년여 간 소송을 끌어온 경우였다.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 (사진=연합)
‘보험사기가 아닌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보험금으로 지급하길 원한 것’이 아닌,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소송을 끌어간 것 아니냐는 쓴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소비자들은 한화생명 보험 가입을 망설이게 되고,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보험사’를 외치는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의 목표에도 의구심을 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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