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4세 잇따른 승진…승계 위한 잰걸음 시동

LG 구광모, 승진 대신 LG전자 이동, 능력 시험대…치적 쌓기용?

CJ 이경후, 두드러진 실적 향상으로 8개월 만에 승진…미주 사업 이끌어

한국타이어 3세 경영 시작…장남 조현식 부회장 경영 이끌게 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4년 전국 219개 기업을 대상으로 발표한 ‘2014년 승진․승급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2.41%,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74%에 그친다. 1000명 중 7명만이 임원이 되는 셈이다. 임원을 다는 시간도 평균 24년이 걸린다. 그러나 오너 일가는 초고속 승진으로 단숨에 임원 자리를 꿰찬다.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총수가 있는 상위 50대 그룹(2016년 6월 말 자산 기준) 오너 일가 및 배우자 208명의 경영참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입사 후 임원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 평균 4.9년에 불과했다.

올해도 초고속 승진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재계는 과거와 달리 성과주의에 입각한 인사시스템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일각에서는 빠른 승진에는 경영권 안정화라는 포석도 담겨 있다고 덧붙인다.

CJ 회장 장녀 이경후, 8개월 만에 다시 승진…입사 6년 만에 임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맏딸인 이경후(32)씨는 8개월 만에 다시 승진명단에 올랐다. 지난 3월 임원인사에서 CJ그룹의 미국사업을 담당하는 미주 통합마케팅담당 상무대우로 2년 만에 승진한데 이어 8개월 만에 상무로 직함을 바꿨다. 이 상무는 입사 6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 상무의 배우자인 정종환 미주지역본부 공동본부장도 이 상무와 같이 상무대우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이 상무는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를 마친 후 2011년 CJ주식회사 기획팀 대리로 입사해 사업관리와 기획업무를 익힌 뒤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 방송기획팀, CJ 미국지역본부 등을 거쳤다.

이 상무의 승진 원동력은 미주 지역에서의 두드러진 성과다. CJ는 최근 미국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 지난해 연매출 1000억 원을 달성, 미국 만두 시장에서 25년간 독식해 온 만두 브랜드 링링을 제치고 현지 시장점유율 1위(11.3%)로 올라섰다. 매출은 2015년 890억 원에서 2016년 1080억 원으로 21.3%(190억 원)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1600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미국 정가에서 2번이나 거론되기도 했다. 미국 에드 로이스(Ed Royce) 연방하원의회 외교위원장은 지난 6월에 이어 8월에 ‘비비고 만두’를 한·미 FTA의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이 상무 부부는 미국에서 CJ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케이콘(K-CON)의 성공적 개최에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미국 LA에서 열린 케이콘에는 2만9000여 명이 참석했다.

비비고 성공에 힘입어 CJ는 캘리포니아 플러턴 공장과 뉴욕 브루클린 공장에 이어 올해 미 동부 지역에 세 번째 생산 공장을 건설,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미국 내 매출을 약 3000억 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확실한 일처리로 이 상무의 그룹 내 평판도 좋은 편이라는 것은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 자녀 중 첫 임원 탄생으로 CJ 3세 경영의 초석이 마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재현 회장의 외아들이자 이 상무의 동생인 이선호 CJ부장(27)은 이번 승진 명단에서는 빠졌다. 이 부장은 2013년 CJ제일제당 사원으로 입사해 지난 3월 부장을 달았다. 이 부장은 지난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유학생활을 접고 지주사 CJ로 출근하고 있다. 아직 임원을 달지 않은 만큼 일반직원들과 섞여 조용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왕관을 쓰려는 자, 능력을 입증하라’…LG 구광모, 시험대에 올라

오너가 4세인 구광모 ㈜LG 상무(39)의 이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승진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구 상무는 LG전자로 이동해 미래 신성장사업 가운데 하나인 비투비(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승진 명단에는 없지만 부사장이 맡던 업무를 이어받아 사실상 승진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원래 이 자리를 맡았던 권순황 B2B사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했고 결과적으로 구 상무는 부사장급 자리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구 상무가 옮긴 ID사업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디스플레이 및 상업용 디스플레이 등 B2B 사업을 담당한다. 이 사업부문은 전자·디스플레이·ICT 등 주요 사업부문과의 협업을 비롯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용 기술인 마이크로 LED 분야의 R&D 투자도 필요한 사업이다. 구 상무는 ID사업부장을 맡아 사업가 경험을 더 풍부하게 쌓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관계자는 “구광모 상무가 오너 일가 중 한명이지만 ID사업부장을 맡게 된 것은 빠른 승진보다는 충분한 경영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인사원칙과 전통을 따른 것”이라며 “사업현장에서 사업 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으로 입사한 이후 미국 뉴저지 법인을 거쳐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 기획팀에서 일했다. 이후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 가전 공장이 있는 창원 사업장을 거치며 제조와 판매 현장, 국내외·지방 현장에서 두루 경험을 쌓고 있다. 입사 9년 만에 2014년 지주회사 ㈜LG 상무로 승진해 임원이 됐고, 3년간 LG 주력 사업과 미래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시너지팀 상무로 일했다.

재계에서는 다른 대기업 3·4세와 달리 임원이 되기까지 기간이 길어 구 상무의 전무 승진을 점쳤다. 그러나 승진 대신 이뤄진 보직 이동은 LG가 특유의 경영수업 일환이라 보고 있다.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검증할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구자경 LG명예회장은 18년, 구본무 회장은 20여 년간 실무 경험을 쌓고 회장직에 오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구 상무의 실적 쌓기용 인사 발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ID사업부의 주된 분야가 ‘사이니지’인 탓이다. 사이니지는 TV·PC·모바일에 이은 제4의 스크린으로 불리며 공공장소나 상업공간에 설치되는 디스플레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기존 옥외 광고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제품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는 2014년 17조1000억 원에서 2020년에는 35조5000억 원을 기록해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시장성이 밝은 분야라는 것이다. 때문에 LG전자는 ID사업부에서, 삼성전자는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엔터프라이즈비즈니스팀에서 사이니지를 담당하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분명한 분야에서 쌓은 구 상무의 실적을 바탕으로 선대 회장들보다 빠른 승계를 염두에 둔 인사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허철홍 부장, GS 4세 중 유일하게 승진 명단에…GS칼텍스에서 경영수업

이번에 단행된 GS그룹 임원인사 가운데 오너가에서는 유일하게 허철홍 ㈜GS 부장(38)이 GS칼텍스 경영개선부문장(상무)으로 승진했다. 허철홍 신임 상무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이다. 허 상무는 허만정 창업주의 증손자로 ㈜GS 지분 1.34%를 보유하고 있다. 허 상무가 승진함에 따라 GS그룹에서 임원으로 등록된 GS오너가 4세는 총 5명으로 늘어났다.

1979년생인 허 상무는 2009년 ㈜GS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재직하며 전략, 기획, 지원 등 여러 업무를 경험했다. GS칼텍스는 그의 두 번째 계열사다. 허 상무도 GS칼텍스에서 근무를 시작함에 따라 GS칼텍스가 오너가 4세들의 필수 경영 수업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허 상무에 앞서 허세홍 GS글로벌 대표,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전무), 허주홍 GS칼텍스 부장 등이 GS칼텍스에서 경험을 쌓았다.

재계 관계자는 “GS그룹의 핵심인 에너지 사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GS칼텍스에서의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LS 구본혁·구동휘, 각각 부사장·상무로…차근차근 승계 작업

LS그룹에서는 이번 연말 인사에서 총수 일가인 구본혁(40) LS니꼬동제련 전무를 부사장으로, 구동휘(35) LS산전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구 부사장은 고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 구 상무는 구자열(64) LS그룹 회장의 아들로 3세 경영인에 해당된다.

구 신임 부사장은 2003년 LS전선에 입사해 지주회사인 LS를 거쳐 2012년부터 LS니꼬동제련에서 일하고 있다. 중국법인장과 전략기획부문장, 지원본부장, 사업본부장을 거치면서 오너 경영자로 순조롭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구 부사장은 2011년 LS그룹 오너일가 3세 중 제일 먼저 임원을 단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가장 빠르게 등기임원에 올랐다.

구동휘 신임 상무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일하다가 2013년 LS산전 차장으로 입사, 부장을 거쳐 지난해 임원(이사)으로 승진한 뒤 1년 만에 상무를 달았다. 구 상무는 올초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녀인 박상민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구 부사장과 구 상무가 승진하면서 그룹 내 오너가 3세들의 경영 승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LS그룹 계열사에서 경영수업 중인 오너가 3세는 구 부사장과 구 상무를 비롯해 구본규 LS산전 전무와 구본권 LS니꼬동제련 부장 등 4명이다.

한편, GS그룹은 현재 총수 허창수 회장을 비롯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 오너 3세 7명이 입사 후 사장단에 오르는데 20.9년, LS그룹 오너 2세들은 20.7년이 걸렸다.

한국타이어 3세 경영 본격화…승계 한발 앞선 장남

한국타이어그룹의 3세 경영이 궤도에 올랐다. 오너 3세인 조현식(47)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그룹 내 유일하게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서승화 한국타이어 대표이사가 내년 3월로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에서 조 신임 부회장이 사실상 한국타이어그룹 경영을 책임지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경영권 구도에도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한국타이어 대표이사가 맡아오던 부회장직을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조현식)가 맡으면서 조 부회장 승계로 무게가 기울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7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조 부회장은 2010년 한국타이어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반에 나섰다. 2015년부터는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로 옮겨 신사업 창출에 힘쓰고 있다. 조 부회장은 입사 20년 만에, 사장 승진 8년 만에 부회장직을 달게 됐다.

조 회장의 차남이자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범(45) 한국타이어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COO(최고운영책임자) 겸 한국타이어 각자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조 사장은 서 부회장 후임인 이수일 사장과 각자 대표이사로 한국타이어 경영을 이끌게 됐다.

그룹을 이끌 조 부회장의 어깨는 무겁다. 성숙기로 접어든 타이어산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테네시 공장 가동에 돌입한 한국타이어는 미국 시장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한국타이어가 내건 ‘2020년 글로벌 톱5 진입 프로젝트’의 핵심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 부회장은 미국법인을 직접 챙기며 공장 가동 및 조기정상화에 힘썼다.

여기에 올해 초 지주사에 100억 원을 출자해 자동차정비관련 자회사인 HK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그룹 내 비타이어사업부문을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수입차 정비를 비롯해 애프터마켓을 주력시장으로 한다.

이규호 코오롱 상무보, 지주사 상무로…막바지 경영수업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3)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는 이번 인사에서 ㈜코오롱 상무로 승진했다.

미국 명문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이 신임 상무는 2012년 차장(당시 28세)으로 입사해 구미공장을 지키며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며 2013년 코오롱글로벌 부장으로 옮겼다. 이듬해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로 승진한 그는 2년 만에 지주사인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임원이 됐다. CEO스코어(대표 박주근)에 따르면 그가 입사 후 임원까지 걸린 시간은 3.1년이다. 부친인 이 회장은 입사 이후 임원까지 7.4년 소요됐다.

장자승계 원칙을 지키고 있는 코오롱 그룹이기에 이 상무의 경영 승계는 정해진 수순이다. 다만 향후 코오롱의 사업영역이 현재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가 CVC(기업주도 벤처캐피털)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투자주체가 되는 벤처캐피털(VC)의 일종인 CVC은 주로 모기업과 관련된 분야의 스타트업을 투자처로 삼는다. 이 상무가 직접 설립에 참여한 코오롱이노베이스는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곳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부사장으로…무거워진 어깨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는 이번 인사를 통해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동시에 현대중공업의 선박영업부문장 및 기획실 부실장을 겸임하면서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미래 핵심사업’도 책임진다.

정 신임 부사장은 지난 2009년 재무팀 대리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201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13년 경영기획실 선박영업부 부장으로 현대중공업에 복귀한 뒤, 이듬해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그 다음 해 11월 또 전무(기획 및 조선해양 영업 총괄부문장)로 승진해 ‘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정 부사장은 내년 100억달러 규모로 수주목표를 상향한 현대중공업의 선박영업과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선박관리 및 스마트십 등 미래 사업을 이끌게 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서 미래 전략을 짜고, 선박 사후관리 등을 책임지는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까지 겸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평가를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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