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개 회원사에 달린 금투협회장 선거…정부 입김은?

정회동ㆍ황성호ㆍ권용원ㆍ 손복조 출사표… 회원사ㆍ정부 모두 충족할 후보는?

대기업 출신 민간 인사 출마 전무…전·현직 투자증권 후보로 채워져

내달 초까지 공모…현직 CEO·文정부 인연 인사 출격하나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최근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새 수장 자리를 놓고 선거전이 본격 시작됐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제4대 회장 선출을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차기 회장 인선에 착수했다. 추천위는 공익이사 3명과 외부인사 2명으로 구성하고, 향후 선거 일정과 절차 등을 진행키로 했다. 금투협 관계자는 “다음 주쯤 선거 공고를 내서 공모를 시작하고 1월 초까지 공모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투협은 증권사(56), 자산운용사(169), 선물사(5), 신탁사(11) 등 241개 정회원을 비롯해 총 376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등 금융투자업계를 대표하는 금투협은 영업질서 확립을 통해 금융투자산업의 신뢰도를 높이고 투자자보호를 위해 자율규제시스템을 마련하는 기능을 한다. 금융당국에 정책을 건의하고 협의하는 등 업계의 대리인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재까지 금투협 차기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정회동 전 KB투자증권 대표,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대표,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회장 등 4명이다. 업계에서는 공모가 시작되면 다수의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회장 임기는 3년이며 5억여 원의 연봉이 지급된다.

文정부와 불협화음 내비친 황영기 회장

지난달 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대책’ 발표 자리에서 돌발 발언을 했다. 당시 최 위원장은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이 후원이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선임된 경우가 많았다. 또 그런 인사가 나타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대기업 출신 민간인사가 금융 유관협회장을 맡고 있는 곳은 생명보험협회와 금융투자협회뿐이다. 생보협회는 이미 후임자가 정해진 상태라 사실상 황 회장을 겨냥한 셈이었다.

황 회장은 최 위원장이 언급한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이다. 1975년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89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 담당부장, 1994년 삼성전자 자금팀장, 1997년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2001년 삼성증권 사장으로 취임했고, 이후 2015년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당국 수장의 인식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자 황 회장은 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정과 지금 시대를 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결이 다른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외교상 기피인물을 뜻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를 언급하며 “현 정부에서 나는 척결 대상까진 아니지만 그리 환영받지는 못하는 존재”라고도 덧붙였다.

대기업 출신 없이 전ㆍ현직 투자증권 CEO 출격

최 위원장 발언의 여파로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모두 투자증권 출신이다. 이달 초 제일 먼저 출마를 선언한 정회동 전 KB투자증권 대표는 1956년 생으로 LG투자증권 부사장, 흥국증권 사장, NH농협증권 사장, 아이엠투자증권 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에 뒤늦게 출마하려다 포기한 바 있다. 다양한 규모의 증권사를 운영한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사장으로 일한 회사들의 투자금융(IB)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도 성공했다.

뒤이어 출마 선언한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대표는 1953년 생으로 씨티은행 서울지점 이사, 다이너스카드 한국법인장, CJ증권 사장, PCA운용 사장, 그리스 아테네은행 수석부행장을 거쳐 우리투자증권 수장에 올랐다.

황 전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35년 금융인생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에 출마를 결심했다”며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개혁하는 자세로 업계의 성장을 이끌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금융자산이 5000조 원에 달한다. 이를 투자자산으로 운용해 수익을 1% 더 내면 50조 원의 수익이 생긴다”며 “이를 사회복지와 SOC 재원으로 재투자하면 국민소득 40000불 시대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가 금투업을 보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글로벌 5개 운용사를 역임하면서 익힌 경험과 국제감각, 네트워크로 협회를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가운데 유일한 현직 CEO인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는 50대로 타 후보들에 비해 젊다. 1961년생인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기술고시(21회)에 합격,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약 20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다우기술, 키움인베스트먼트 사장을 거쳐 키움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온라인 중심 증권사로서 성장성과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수익성을 높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런 실적을 인정받아 연임될 가능성이 유력했으나 고심 끝에 협회장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관료 출신이라 당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4차 산업혁명 등 금융권 새로운 트렌드에도 빠른 적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협회장 선거는 1월 말이고 키움증권 대표 연임 관련 주총은 3월에 열려 현직을 유지하면서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회장도 출마의지를 밝혔다. 손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지난 선거부터 나가고 싶었으나 토러스증권에 몸담고 있는 등 여건이 안돼 못했다”며 “토러스투자증권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 뒤 마지막으로 금융업계에 봉사하고 싶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손 회장은 1951년 경북 경주 출생으로 배재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2월까지 토러스투자증권 대표이사를 지냈다.

회원사 소신이냐 정부 눈치냐에 향방 갈릴 듯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이어 황영기 회장의 연임 포기가 이어지면서 회원사들 사이에서는 주판알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3년 임기 동안 황 회장은 은행권과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와 비과세해외주식형 펀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등 자본시장의 각종 현안을 성사시켰다. ‘검투사’라는 별명에 걸맞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진 황 회장의 증권사 100대 과제 추진에 업계도 힘을 실어주며 연임 가능성은 높았지만 그는 결국 퇴장을 선택했다.

금투업계에서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대기업 회원사 출신이 후원이나 도움을 받아 금융협회장에 오르면 안 된다”는 최 위원장의 인사 가이드라인 성격의 발언 때문이다. 출마한 후보들은 입 모아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법규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협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와 각을 세우다가는 한 발자국도 진전될 수 없다. 금융당국과 소통할 수 있고 수긍할 만한 인사를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거물급이 아니라면 정부 코드와 맞는 인사의 차기 협회장 선출을 지지하는 회원사가 속속 늘어나는 모습”이라며 “후보들의 출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입김이 생각보다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40여 곳의 회원사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입김이 회장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업계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하는 후보를 뽑아야 하지 않겠나. 1사 1표가 아니기 때문에 대형사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은행이나 보험업계는 이사회가 특정 후보를 추대하는 방식으로 협회장을 선임한다. 반면 금투협회장은 241개 회원사가 부여받은 표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구조다. 투표권은 회원사 1개 사당 한 표씩 40% 반영하고 나머지 60%는 회비분담률에 따라 가중치로 구성된다. 전체 의결권의 과반수 출석으로 총회가 성립하면 출석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을 얻은 후보자가 협회장으로 당선된다. 회비 분담금이 큰 회사가 투표의 향방을 좌우하곤 했다.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형사의 회비분담금은 소형 운용사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형사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분석이다.

반론도 있다. 올해 들어 당국의 정회원사 진입요건 완화로 기존 회원사의 50%에 해당하는 80곳이 새롭게 정회원으로 들어왔다. 선거 흐름이 박빙으로 흘러갈 경우 동등하게 부여되는 40% 의결권에서 신규 회원사들의 결정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회원사를 신경 써야 하는 힘든 선거 일정이 될 것”이라며 “업계 여론을 먼저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잠재 후보군은…최방길ㆍ김기범ㆍ윤경은 거론

후보 공모 일정은 내년 1월 초까지다. 여러 후보가 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그 중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다. 최 전 대표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학과 선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고교 선배이기도 하다. 지난 금투협회장 선거 당시 황영기 회장과 경쟁했던 최 전 대표는 얼마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선임 당시 정지원 현 이사장과 경합한 바 있다. 최 전 대표는 출마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대통령 및 당국 수장과의 관계 때문에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황 회장, 최 전 대표와 최종 후보 3인에 올랐던 김기범 전 대우증권 사장도 출마 이력 때문에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출마를 선언한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을 제외하고 거론되고 있는 현직 CEO는 윤경은 KB증권 사장이다. 윤 사장은 올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는 출마를 선언한 인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50대라는 점,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이라 불릴 정도로 문재인 정부 들어 중용되고 있는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서 출마 여부가 집중되고 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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