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외치지만, 근본적 해결책 못 돼

대학→군대→직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바닥’의 해운ㆍ조선업계

과거부터 생긴 상명하복 문화와 군기에 직장 내에서도 부조리 여전

한민철 기자

국내 해운 및 조선업계에서의 이뤄지는 항해사들 간 폭행ㆍ욕설 등 부조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측에서는 이를 인지하고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 유명무실한 대책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2013년 국내 한 해운사 소속의 기관사였던 A씨는 중동국가로 향하는 LNG운반선의 항해 업무를 맡기 위해 승선했다.당시 같은 선박에 승선했던 같은 해운사 소속 항해사 B씨는 A씨의 선배로 선박 내 위생점검을 부업무로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B씨는 A씨의 방실을 살핀 뒤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A씨는 당시 선장으로부터 이에 대해 심하게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B씨는 A씨가 선장의 지적에도 이를 웃어넘기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운·조선업계에는 뿌리깊은 부조리가 여전히 심각한 상태다. (사진=연합)
B씨는 A씨가 이전부터 방실 청소에 대해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고, 선장으로부터 지적을 받았음에도 개선할 의지가 보이지 않자 결국 화를 이기지 못했다.

B씨는 A씨를 질책할 목적으로 회의실로 불러내 욕설을 한 뒤, 그의 배와 가슴 그리고 몸통 부분을 때려 상해를 가했다. 향후 A씨가 병원 진단을 받으며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A씨의 상해는 ‘치료 일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로부터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했던 A씨는 상해로 인한 고통을 참을 수 없었고, B씨와 더 이상 같은 선박에 있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에 A씨는 항해 약 보름 만에 어머니의 건강을 사유로 들며 홀로 하선, 국내로 복귀했다. 이후 한 달 뒤 A씨는 안타깝게도 해운을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A씨는 B씨를 고소했고, B씨는 A씨에 사과하는 등 화해를 위한 노력을 다했지만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이 내려졌다.

사실 이는 A씨와 B씨 두 사람 간의 개인적인 폭행 사건에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이들의 고용주였던 해운사가 져야할 책임도 분명히 있었다.

자사 소속 사원이 선배 사원으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퇴사를 할 정도였다. 사건이 이렇게 확대될 때까지 사측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내 윤리강령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다는 점에 우선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회사라면 경영진과 사내 임직원들이 지켜야 할 기본윤리가 있고, 구성원을 폭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굳이 규칙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 소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운은 본지의 취재가 들어가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당시 폭행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해 파악조차 하고 있지 못했다.

비단 이번 사례에 국한되지 않고 본지가 해운ㆍ조선 및 항공업계 전반을 취재한 결과 항해사와 기관사 그리고 항공업계 조종사들 사이에서 욕설·폭행·군기 등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비행기 내에서 마주치는 항공업계와는 달리, 같은 배에서 몇 날 며칠을 함께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한 해운·조선업계의 경우 이런 부조리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가 업계 관계자를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해운ㆍ조선업은 항공만큼 ‘업계 바닥이 좁은 편’이다. 항해 또는 기관사를 목표로 하는 이들 대부분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남성의 경우 해군에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때문에 선후배들이 같은 대학 그리고 같은 해군의 과정을 거쳐 보다 위 아래가 엄격하고, 자연스럽게 군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좁은 바닥에서 대학 때부터 유지돼온 관계가 부조리로 이어져 업계 내에서 뿌리 뽑아야할 악습으로도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사측에 이런 부조리에 대한 익명 제보 채널을 마련했다 할지라도, 신고를 통해 오래 전부터 이어온 부조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영진들이 항해사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알고, 이를 존중하고 있기에 심각한 부조리가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A씨의 경우에도 B씨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을 사측에 이야기를 못한 채 퇴사했던 것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았고 오히려 이를 밝힌다면 다른 해운사로 이직했을 때 B씨와 유대가 있는 선배 항해사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에서 아무리 윤리경영을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해외에 장기간 떠나있는 항해사들과 고충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상담을 할 기회도 많지 않을뿐더러, 폭행 또는 욕설 등 부조리를 저지르는 인원을 알아냈다고 할지라도 가벼운 징계 외에 보다 엄격한 조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다.

때문에 사측에서 항해사 및 기관사들과 보다 개인적으로 상담할 기회를 많이 들어주고, 공익제보를 했을 때의 인센티브를 강화한다면 부조리에 대한 향후 개선의 방향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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