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자리 초대형 IB, 내년에는 달라지나…KB증권 발행어음 인가 근접

KB증권, 인가 문턱에서 좌절…내년 초 결정될 듯

NH투자증권, 재무건전성이 발목 잡아…심사 중이나 불투명

삼성증권, 심사 보류…이재용 최종 판결까지 기다려야

최종구 금융위원장 “초대형 IB 육성과 관리 모두 신경쓰겠다”

한국판 ‘골드만 삭스’ 탄생의 길이 험난하다. 지난 11월 금융위는 미래에셋대우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개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초대형 IB)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초대형 IB 업무의 핵심인 단기금융업, 즉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곳은 한국투자증권, 단 1곳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단기금융업 인가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으면서 초대형 IB 육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심사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심사 보류된 삼성증권 외에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등 3곳은 각기 다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제각각 당국에서 문제 삼을만한 이슈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형 IB들의 속사정은 무엇이며 향후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KB증권, 두 번째로 단기금융업 인가 받나

금융감독원은 지난 1일 제재심의위원회 제14차 회의를 열고 KB증권에 대한 검사결과 조치안을 심의하고 기관경고 조치를 결정했다. 이와 함께 금융위원회에 과징금 58억 원 부과 건의, 대표이사 주의적 경고, 관련 임직원 감봉-주의 조치 등을 의결했다. 금감원 제재심의 결정은 추후 금감원장 결재 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부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방침이다.

금감원은 KB투자증권과 통합하기 전 현대증권이 계열사 현대엘앤알의 사모사채(610억원)를 인수하고 현대유엔아이 유상증자에 200억 원을 출자한 것이 대주주에 대한 계열신용공여 금지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금지 조항은 금융투자회사가 대주주의 사금고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현대증권 대표였던 윤경은 사장(현 KB증권 공동대표)은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았다.

금감원의 기관경고 제재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현재 자본시장법 금융투자업 규정상 신규 사업 진출시 ‘최대주주가 최근 1년간 기관경고 조치 또는 최근 3년간 시정명령이나 중지명령, 업무 정지 이상의 조치를 받은 사실’이 없어야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을 수 있다. 기관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은 금융회사는 1년간 신규사업 인가가 불허된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단기금융업 심사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에 KB증권의 단기금융업인가안이 상정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 계열신용공여금지 위반은 2014년 현대증권 당시 이뤄진 일”이라며 “KB금융지주로 대주주가 바뀐 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KB금융지주는 타 금융사보다 내부통제에 엄격한 편”이라고 말했다. 추후 법 위반 소지가 낮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금투협 차원에서 초대형 IB 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가 밝힌 면죄부는 자본시장법 예외사항이다. 현행법상 금융산업의 신속한 구조개선 지원 등 불가피한 경우 금융회사가 제재를 받은 사실이 있더라도 신규 인허가, 대주주 변경승인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KB증권이 극적으로 인가받을 여지는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 상황이 ‘금융산업의 신속한 구조개선 지원’ 등의 전제조건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발행어음으로 마련된 자금의 절반 이상을 의무적으로 기업이 발생한 회사채나 대출 등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벤처·혁신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도 단기금융업 인가는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경제를 빌미로 잣대를 소극적으로 적용해 온 그간의 관행을 이제는 끊어야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인가를 따낸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한 초대형 IB들이 각기 다른 자격 논란이 있기에 당국에서 고심이 깊을 것”이라며 “제재 결과가 인가 결정의 절대적 기준이 아닌 만큼 KB증권으로서는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고 바라봤다.

당국의 고심은 지난 13일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초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날 정례회의를 열고 KB증권에 대한 단기금융업 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결정을 다음 증선위로 미뤘다. 당국 관계자는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KB증권이 현대증권과 합병 전에 발생한 현대증권 제재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증선위는 2주 간격으로 열리지만 연말인 점을 고려해 다음 증선위 정례회의는 내년 1월 둘째 주에 열릴 예정이다. 따라서 이르면 내년 1월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기관경고’ 제재의 빌미를 제공했던 윤경은 KB증권 공동대표는 1년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20일 KB금융지주는 상시지배구조위원회를 열어 윤경은·전병조 공동대표를 1년씩 연임시키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내년 통합 2년차를 맞이하는 KB증권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현 체제를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 단기간에 풀 수 없는 실타래…심사만 계속

지난 6월 기준, 미래에셋대우(7조1493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NH투자증권(4조6924억 원)은 유력한 단기금융업 인가 후보였다. 그러나 NH투자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는 증선위 안건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금감원 심사 절차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NH투자증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재무 건전성이다. 올 2분기 기준 NH투자증권의 채무 보증 규모는 3조 5600억 원에 달한다. 2조 원대 중후반 수준인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보다 훨씬 높아 자본건전성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대형 IB 관련 재무건전성 문제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지난 10월 금융위 국감에서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심사 중이었던 자기자본 4조원 이상 금융투자업자 지정과 단기금융업 인가와 관련해 “심사의 기준이 대부분 대주주 적격성 기준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너무 정치적 요소”라며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지 증권사의 건전성이나 자금관리 요건으로 봐야한다”는 지적했다. 이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대주주 적격성 외에 회사 건전성 문제도 같이 봐서 심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NH투자증권의 건전성 문제가 인가에 부정적 요소로 꼽히고 있는 이유다.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인허가 특혜 논란도 여전하다. 지난 10월 정무위 국감 당시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케이뱅크 주주들이 작성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주주 간 계약서’를 근거로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이 은행법상 사실상 동일인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자본인 KT가 우리은행과 NH투자증권을 통해 이사회와 경영 전반을 장악했기 때문에 ‘은산분리’ 원칙에 위배됐다는 주장도 펼쳤다. 박 의원은 일정 지분 이상을 정리하는 '은산 분리 원칙에 따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지적되면서 NH투자증권의 인가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NH투자증권에 대해서는 단기금융업 자격 심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적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년 열리는 증선위에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삼성증권, 인가 심사 보류 중…이재용 확정판결 때까지 중단

단기금융업 인가 심사를 진행 중이거나 유보 중인 초대형 IB와는 달리 삼성증권의 상황은 어둡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금융당국은 대주주의 재판을 이유로 삼성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 심사를 아예 보류했다. 금융당국이 지목한 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현재 삼성증권의 대주주는 지분 29.44%를 보유한 삼성생명이다. 대주주가 법인일 경우 법인의 최대주주의 적격성을 따지게 되는데 최대주주는 지분 20.76%를 보유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증권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고 삼성생명 지분을 0.06% 보유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 0.06%를 가진 특수관계인이기에 삼성증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라고 판단했다. 0.1%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지만 지난해 8월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주주 범위가 특수관계인까지 넓혀짐에 따라 이 부회장이 대주주 적격 심사 대상에 오른 것이다.

당시 금융위 관계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인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고 만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경우 중대한 결격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어 심사를 보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심사 보류 기간은 이 부회장에 대한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다.

당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이 올해 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재해사망특약(자살보험금) 미지급 이슈로 ‘기관경고’를 받은 점을 초대형IB 인가의 걸림돌로 여겨왔다.

그러나 당국이 대주주 범위를 폭넓게 적용함으로써 삼성증권은 초대형 IB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초대형 IB의 핵심인 발행어음 업무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고 훗날 인가를 받는다고 해도 후발주자로서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도 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확정 판결에서 유죄를 받을 경우 심사 보류가 아닌 인가 자체가 거절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삼성증권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최종구 “인가 다 해줘도 발행어음 규모, 銀여신 5%에 불과”…추가 인가 가능성 ↑

단기금융업 인가 관련 금융당국의 심사 보류 및 유보에 업계는 초대형 IB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수장인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초대형 투자은행(IB) 활동에 기대감을 보이면서 추가 사업 인가 등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앞서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지난 20일, 초대형 IB의 건전성 강화 및 신용공여 대상 제한을 권고하면서 초대형 IB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혁신위는 신용공여 대상을 IB의 고유기능(지분투자, M&A, IPO, Structured Financing, Prime Brokerage 등)이나 신행·혁신 기업으로 제한하고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와 투자자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은행권이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바다. 앞서 은행연합회는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은행업 라이선스 없이 은행업을 수행토록 하는 것과 같다”며 “업권간 불평등, 건전성 규제공백, 금산분리 원칙 무력화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인가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행정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담은 70여개의 혁신위 권고안은 강제성이 없지만 금융위로서는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이튿날인 지난 2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혁신위 권고안에 대해 “금융행정을 책임지는 금융위원장으로서 이러한 사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권고안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초대형 IB 관련 사안 수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최 위원장은 “초대형 IB 관련해서 혁신위가 제기한 것처럼 상업은행 기능을 일부 부여하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후보 금융투자회사들이 전부 다 최종인가를 받아서 그 발행어음 업무를 영위하더라도 전체 상업은행들이 운용하는 여신 규모의 4~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투자회사가 좀 더 거대 은행보다 자금운용 의사 결정하는데 기동성 있고 과감하고, 사업성있는 것을 찾아 다니는 센스 등은 앞서 있다”며 “IB 기능 육성, 자금이 생산적 필요로 하는 혁신중소기업에 더 돌아가도록 하자는 게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건전성 우려는 충분히 타당하다”며 “기존 건전성 감독 장치를 마련했지만 다시 짚어보고 계속 감독하고, 필요하면 더 강화하겠다”고 관리감독에 신경 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앞서 최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요자인 기업 입장에서 기업의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확충해야 한다”며 초대형 IB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초대형 IB 육성뿐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기업금융업무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있다면 동일하게 노력할 것”이라며 은행권의 반발을 잠재우려는 모습도 보였다.

금융당국 수장이 초대형 IB 육성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조만간 단기금융업 인가 역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논란에도 인가를 따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대주주인 한국금융지주가 100% 출자한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는 잇단 실패로 자본잠식에 빠져 2015년 3월에 파산한 바 있다. 이는 대주주 요건 가운데 ‘최근 5년간 파산·채무자 회생절차를 밟은 기업의 최대주주(또는 주요주주)로서 이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실이 있는 경우’엔 자회사의 금융투자업 인가가 불가능하다는 요건에 해당됐다. 그러나 코너스톤은 투자판단 미스로 파산절차가 이뤄진 것이고 투자판단에 한국금융지주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회사 측 입장을 금융당국이 받아들이면서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선례에 비춰 자격 논란에 휩싸인 초대형 IB들의 문제들이 당국에 소명이 된다면 발행어음 2호, 3호가 내년에 연달아 나올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허인회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