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의무 등 사측 책임 명백함에도… ‘꼬리자르기’ 했나

2013년 현대미포조선 선박 충돌사고, 항해사 안전운항 관련 법규 위반·운항 부주의로 결론

사고 선박 당직선장, 현대미포조선이 고용한 용역인력… 당시 정식 선장경력 20일에 불과

총돌사고로 상대 선박 적재된 독성 화학물질 일부 바다에 유실돼

현대미포조선ㆍ현대중공업 측 “단순한 충돌사고…보험처리로 끝난 일”

지난 2013년 12월 부산에서 발생했던 현대미포조선 선박의 충돌사고의 숨겨진 이야기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은 현대미포조선 선박으로 기사 사고선박과는 관련 없음.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지난 2013년 말에 부산 앞바다에서 발생했던 현대미포조선 선박의 충돌사고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밝혀졌다. 사고 당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측은 단순한 사고로 선을 그었고, 사측 책임이 아닌 선박 항해사들의 부주의 등으로 사고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 사고의 근본적 책임은 현대미포조선 측에 있었다. 심지어 사고로 인해 상대 선박 내 적재돼 있던 화학물질 일부가 부산 앞 바다에 유출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3사 중 한 곳인 현대미포조선의 선박 충돌사고는 지난 2013년 12월 29일 새벽 2시경 발생했다.

전날인 12월 28일 아침 9시 45분경 현대미포조선소 소유의 자동차운반선이었던 그래비티 하이웨이호는 울산항 현대미포조선 제1안벽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시운전을 떠날 예정이었다.

이에 선장을 비롯한 6명의 시운전 선원, 현대미포조선 소속 시운전 인력 등 총 63명이 승선한 채 출항했다.

같은 날 홍콩 선적인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마리타임 메이지호는 27명의 선원이 승선한 가운데 울산항을 떠나 중국 닝보 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선박은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12월 28일 밤 10시경 부산 태종대 등대로부터 약 8.5마일 거리의 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동시에 그래비티 하이웨이호는 진로 전방에서 마이타임 메이지호가 한 바퀴 우선회하는 것을 확인했고, 곧바로 항로 변경을 시도했다.

재빠른 항로 변경시도까지는 좋았으나 그래비티 하이웨이호는 감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마리타임 메이지호의 현 중앙부에 충돌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해 그래비티 하이웨이호의 선수부와 마리타임 메이지호의 좌현 중앙부 및 주변 해상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화재는 크게 번지지 않았고, 선원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되며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 직후 일부 언론보도 등을 통해 간단히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사고는 두 선박 항해 당직자들의 안전운항 관련 법규 위반 및 운항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부산해양경찰은 조사 결과 운항 부주의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항해사들을 업무상 과실 및 선박파괴 등의 혐의로 입건까지 했다.

당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측은 단순한 충돌사고라며 선을 그었고, 당사자들 간 보험처리를 통해 원만한 수습으로 끝날 일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당시 충돌사고는 보험금 지급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충돌사고로 끝내기에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도 있었고, 사고의 근본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짚고 넘어가지 못한 채 조용히 묻힐 수는 없었다.

현대미포조선 측은 당시 시운전을 떠나기에 앞서, 울산지방해양수산청에 그래비티 하이웨이호의 시운전을 위한 임시항해검사를 신청했고, 연안수역을 포함한 남해와 동해를 항행구역(航行區域)으로 기재한 선박운항계획서를 첨부했다.

이에 수산청은 출항 이틀 전인 2013년 12월 26일 현대미포조선 측의 신청사항 대부분을 받아들이되, 항행구역에 대해서만 신청 부분 중 일부를 제외한 수역으로 변경 지정했다.

당시 수산청이 현대미포조선 측에 임시항해검사증을 발급하면서 ‘제출된 시운전 승선자 명단 이외의 자는 승선 금지’, ‘화물적재 운송금지’ 그리고 ‘항해구역 외 항해금지’ 등의 조건을 명시했다.

이후 당시 충돌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앞서 현대미포조선 측은 그래비티 하이웨이호에 선장을 비롯한 6명의 시운전 선원, 시운전 인력 등 총 63명이 승선시켰다.

그런데 이중 시운전에 관해 선장 및 항해사 역할을 하는 책임선장, 항해사 역할의 당직선장 등 총 6명은 현대미포조선 소속 시운전 선원이 아닌, 선박 시운전 전문 용역회사 A사와 용역계약을 체결해 공급받은 인력들이었다.

사실 현대미포조선 측은 수산청에 임시항해검사를 신청했을 당시, 시운전 선원 명단에 책임선장 및 당직선장 등 3명을 자사소속 인원으로 전부 기재해 제출했다.

출항을 앞두고 현대미포조선 소속 시운전 담당자는 용역계약을 통해 공급받은 A사 인력들로 시운전 선원 명단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고, 이들을 그대로 승선시켰다.

정리해 보자면 수산청으로부터 발급받은 임시항해검사증서에 기재된 책임선장 및 당직선장의 이름은 실제 승선한 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현대미포조선 소속 시운전 담당자들은 임시항해검사증서 내의 항해구역이 수산청으로부터 변경 승인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히 책임선장 등은 현대미포조선이 최초 신청한 구역에서 시운전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 상태에서 시운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항해구역을 벗어난 항해로 인해 충돌사고로 이어졌다.

충돌사고로 유출됐던 화학물질 & 정식선장 경력 20일에 불과했던 용역인력

현대미포조선 시운전 담당자들은 당시의 착오가 사소하거나 충돌사고에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며 선을 그으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연히 당시 시운전은 수산청이 발급한 임시항해검사증의 조건 중 ‘제출된 시운전 승선자 명단 이외의 자는 승선 금지’와 ‘항해구역 외 항해금지’ 조건을 어긴 채 이뤄진 항해였다.

이를 현대미포조선 측이 제대로 파악했다면, 아찔한 충돌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비티 하이웨이호의 당직선장을 맡은 A사 인력 B씨는 사고 발생 약 20분 전, 그래비티 하이웨이호로부터 약 5.8마일 전방에 항해 중이던 마리타임 메이지호를 육안과 레이더를 통해 최초로 발견했다.

이에 당직선장 B씨는 마리타임 메이지호가 그래비티 하이웨이호의 선미를 지나갈 것이라고 판단해 기관사에게 전화를 걸어 선박이 침로(針路)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요청했고, 선수 전방에 접근하는 제3의 선박을 피하기 위해 조타수에게 215도 침로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런 요청과 지시는 문제없이 실행됐지만, 앞서 언급한 바대로 변침 후 감속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며 마리타임 메이지호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마리타임 메이지호에 승선 중이었던 항해사 C씨는 소형 어선을 피하기 위해 우현으로 침로를 바꿨고, 예정침로로 복귀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접근 중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해 조타수에게 다시 침로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에 마리타임 메이지호는 우선회를 함으로써 다가오는 선박을 피해가려 했지만,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아무런 피항동작을 취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후 해경 조사결과, 사고가 난 해상은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지정받은 항해구역에서 벗어난 연안수역이었다. 당시 기상 및 해상 상태, 바람의 세기 등은 양호해 선박 승선 인원들의 인위적 조작 외에 배가 지정 구역을 벗어나게 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리타임 메이지호에 적재된 화학물질에 대해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했던 보험사 측은 당시 충돌사고의 근본적 원인은 단순히 항해사들의 운항 부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관할관청으로부터 허가받은 지정 구역에서 벗어나 과도한 속력으로 항해했고, 전방경계까지 소홀히 했음에도 적절한 피항 동작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를 발생시킨 근본적 주체는 현대미포조선으로서 시운전 담당자에 대한 관리감독 등의 책임이 소홀했다는 지적이었다.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됐던 당시 충돌사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담당한 부산지방법원은 현대미포조선 선박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사고 당시 지정 항해구역을 벗어나 시운전을 하고 있었고, 이에 해상교통량이 많은 연안에 접근하면서 선박 충돌사고 가능성을 높였다는 설명이었다.

또 그래비티 하이웨이호는 사고 당시 속력이 21노트로, 주기관 연속 최대출력 회전수 105RPM을 초과한 108RPM을 유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안전 속력 위반의 과실이 인정될 수밖에 없었고, 마리타임 메이지호 역시 사고를 피하기 힘들었다는 판단이었다.

심지어 사고 당시 현대미포조선 및 현대중공업 측의 입장처럼 ‘단순한 충돌사고’로 끝낼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당시 마리타임 메이지호는 당시 선내에 파라자일렌 약 2만여톤, 아크릴로나이트럴 4000여톤, 스틸렌 5150여톤 등의 화학물질 총 2만 9335톤을 적재한 상태였고, 이중 아크릴로나이트럴 약 335톤이 충돌사고로 바다에 유실됐다.

만약 사고 규모가 더 컸었다면, 독성 화학물질이 부산 앞바다를 뒤덮어 지난 2008년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재연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법원은 사고의 책임을 선박 내 일부 당직자들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이 아닌, 현대미포조선 측이 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래비티 하이웨이호가 수산청으로부터 임시항해검사증서를 발급받았을 당시, 회사 자체적으로 신고한 승선인원 외에 자가 승선을 하지는 않았는지 미리 확인하는 등 선박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면서 신고한 승선인원 이외의 자가 시운전을 시행했다는 설명이었다.

한영석 현대미포조선 사장. (사진=연합,현대미포조선)
또 사고 당시 A사 용역인력이었던 당직선장 B씨는 정식 선장경력이 불과 20일에 불과해 시운전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 역시 이에 비춰 B씨가 당시 충돌사고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역계약을 하면서 인력들의 경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현대미포조선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는 의미였다.

현대미포조선 측은 당시 법원에 마리타임 메이지호의 선로 변경을 예측할 수 없었고 어떤 적절한 피항 동작도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마리타임 메이지호 측 선장 및 항해사가 위험 회피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현대미포조선의 주장을 전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현대미포조선이 당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축소하려 했다면, 이를 다시 보고 재발방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