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조사 못해 벌어진 불상사… 채무자 면책됐으니 채권자도 면책(?)

신한카드, 이미 가등기 설정돼 있던 토지 지분을 강제경매에 넘겨

손해 입은 경락인, 신한카드 상대로 매각대금 반환 청구소송 제기

채무자 면책됐다며, 자신들도 담보책임 없다는 황당한 주장한 신한카드… 법원은 퇴짜

가등기 설정된 토지에 대해 재산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을 두고 책임을 사실상 회피하려 했던 신한카드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신한카드가 채무자에 대한 재산조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경매에 나서 경락인(競落人)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신한카드 측은 경락인의 손해에 대한 담보책임이 명백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면책됐다는 이유로 자신들도 담보책임에서 면책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용카드사들은 회원들이 카드 이용금액을 미납할 경우 채권추심 처리 절차를 거치게 된다.

우선 회원들에게 이용요금 납부 독촉 및 채무불이행 시 불이익 등을 알리는 전화를 하거나, 관련 내용을 담은 안내장을 우편으로 보낸다.

이런 채무상환 요구에도 장기간 변제가 이뤄지지 않거나 회원과의 연락이 지속적으로 닿지 않는다면 ‘회원님에서 채무자로 바뀌기 직전 절차’인 방문추심을 하게 된다. 만약 방문추심에도 불구하고 채무변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법적조치 통보 및 실행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카드사들이 관할 법원으로부터 집행권원(執行權原)을 부여받아 강제집행을 통한 채권회수를 하는 절차인데, 관련 조치사항에는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와 강제경매 신청 등이 있다.

이에 앞서 카드사들은 채무자로부터 압류하거나 경매에 붙일 목적물(담보물)의 가치가 있는지, 목적물의 소유권이 정말 채무자에 있는 것인지 여부를 명확히 판단해야만 한다.

이는 보통 방문추심과 동시에 이뤄지며 채권추심 과정에 있어서 채무자의 재산 및 신용조사라는 가장 우선적인 단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목적물의 실소유자가 과연 해당 채무자가 맞는지, 그래서 강제경매가 가능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주체는 채권자인 카드사이며, 카드사의 해당 임무는 기본적인만큼 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경매가 개시된 이후 실시되는 목적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현황조사나 감정가 책정의 책임은 각각 법원과 감정평가사들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카드사뿐만 아니라 전 금융사들이 불법 채권추심을 강하게 지양하고 있는 만큼, 매뉴얼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밟는다면 채무자에 대한 채권추심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장 기본적이면서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채무자의 재산조사에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긴다면, 담보물에 대한 강제경매 등 처분 후 이를 낙찰 받은 사람과 불편한 법적분쟁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2015년 신한카드의 사례가 이와 같았다. 신한카드 측이 한 채무자의 부동산 지분을 강제경매로 처분해 낙찰까지 됐지만,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사실상 타인의 소유로 넘어간 상태였다.

이에 강제경매를 통해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경락인은 신한카드 측에 낙찰대금 반환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신한카드의 채무자였던 A씨에서 시작된다. 제주도에 거주하던 A씨는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지역 내 약 600㎡의 토지에 대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A씨는 그러던 지난 2004년 5월경 B라는 사람과 이 토지의 지분에 대해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마쳤다.

본래 부동산 등기에 있어 가등기란 토지 매수자가 이전등기(본등기)에 대한 여건이 되지 않거나, 토지에 대한 권리 설정 등의 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 미리 조치해두는 절차다.

엄밀히 말해 매도인이 소유권을 상실한 것은 아니고 단지 사실상의 소유권이 매수인에게 넘어갔지만, 이전등기가 확실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기에 대한 우선순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가등기를 설정한다. 해당 부동산이 가등기된 상태에서 본등기에 대한 우선권은 가등기를 먼저 실행한 이가 가지게 된다.

그렇게 A씨가 가지고 있던 토지 지분이 B씨 소유로 가등기가 된지 8년이 지난 2012년 9월, 신한카드는 A씨에 대한 채권추심에 들어갔다.

당시 채권자 신한카드 측은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집행권원을 부여받아 A씨에 대한 3100만원 상당의 강제경매를 신청했는데, 그 집행목적물 중 하나가 바로 지난 2004년 B씨에 가등기가 설정됐던 토지의 지분이었다.

강제경매로 지정된 목적물이 이미 가등기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파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매법원은 강제경매 신청 10여일 후 강제경매 개시를 결정했다.

이후 C씨라는 사람이 해당 토지 지분에 대한 경매에 참여했고, 이를 1800여만원에 낙찰받았다.

다음해인 2013년 11월경 경매법원은 C씨에 최고가 매각허가 결정을 내리며, 낙찰대금 납부에 이어 C씨 명의의 소유권이전 등기가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신한카드 측은 1700여만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카드의 착오(?)가 몰고 온 ‘1토지 2등기’

결국 애초에 A씨가 가지고 있던 토지의 지분은 B씨가 가등기를 걸어놓은 상태였지만, B씨가 모르는 사이 C씨의 소유권이전 등기가 끝나면서 한 토지에 두 명의 권리자가 생긴 셈이었다.사실 B씨가 해당 토지 지분에 대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마친지 10년 동안 본등기를 하지 않았으니, C씨의 소유권이전 등기 사실을 모른 채 세월이 지나갈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번 사건이 큰 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B씨는 자신이 가등기를 걸어놓은 이 토지 지분이 타인에 의해 소유권이전 등기가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던 B씨는 곧바로 해당 토지 지분에 관해 확정판결을 받았고, 이에 가등기에 근거한 본등기를 완료했다. 동시에 C씨 명의였던 이 토지 지분의 소유권이전 등기는 말소됐다.

C씨 역시 황당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임에 분명했다. 그는 경매절차를 통해 이 토지 지분을 낙찰 받았고, 낙찰대금까지 모두 납부함으로써 정당히 소유권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B씨가 본등기를 마침으로써 소유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C씨는 B씨 탓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B씨가 이미 수년전 해당 토지 지분에 대해 가등기를 마친 것은 사실이었고, 때문에 그 역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또 C씨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B씨가 모르는 사이 경매절차를 통해 이 토지 지분에 대한 소유권이전 등기가 이뤄졌기에 제대로 보면 B씨 역시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해당 토지 지분에 가등기가 설정돼 있었음에도 이를 자신의 재산에 포함시킨 A씨와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강제경매를 추진했던 신한카드에 있었다.

A씨가 자신의 채무를 변제할 목적으로 가등기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겼을 수 있지만, 부동산 등기부등본만 확인해 보면 가등기 설정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신한카드 측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다.

이에 C씨는 민법 제578조 등에 따라, 이 사건 경매에 의한 매매계약을 해제함과 동시에 채권자인 신한카드를 상대로 매각대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신한카드 측은 자신들의 착오로 사실상 경락인이 피해를 본 경우이기 때문에, 분명히 책임이 있었다. 심지어 채무자가 소유하고 있던 권리에 흠결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리하게 경매에 내놓았다는 의심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판명난다면, 민법 제578조 3항에 따라 C씨는 신한카드를 상대로 매각대금 반환 청구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했다.

담보책임이 있었던 신한카드, 책임축소까지 노렸나(?)

민법상 담보책임은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의 대등한 계약관계를 전제로 발생한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 이익을 얻고, 다른 한쪽은 일방적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민법 제578조에 따라 경매에서 목적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 경락인(C씨)은 1차적으로 채무자(A씨)에게 그리고 2차적으로는 채권자(신한카드)에게 담보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대법원이 지난 1991년 10월 11일 선고(사건번호 91다21640)한 판례에 따르면, 민법 제578조는 경락인이 경매로 얻은 재산권을 완전히 취득할 수 없을 때 매도인의 위치에 있는 경매의 채무자나 채권자에게 담보책임을 부담시켜 경락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여기서 담보책임은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경매의 목적이 된 권리(목적물)의 전부 또는 일부가 타인에게 속하는 등 하자로 경락인이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거나 이를 잃게 됐을 때 적용된다.

특히 채권자는 경매 목적물의 가액으로부터 배당을 받기 때문에 목적물의 가액을 지불한 경락인과의 관계에서는 ‘매도인의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경매에서는 매도인으로서 지위를 가지지 않고 채무자보다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채권자에게도 담보책임을 분담시켜야만 한다. 또 경매절차가 개시돼 매수인(C씨)이 부동산을 낙찰받은 대금으로 채권자(신한카드)가 배당을 받고, 이후에 가등기에 근거한 본등기가 마쳐진다면, 이후 해당 부동산 경매로 생긴 매수인의 부담은 채권자에게도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C씨가 경매로 얻은 목적물의 손실에 대한 담보책임은 신한카드 역시 질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B씨와 C씨의 경우처럼 가등기가 설정된 상태에서 경매로 인해 C씨가 소유권을 취득하더라도 가등기는 소멸하지 않고 매수인인 C씨에게 인수된다.

이후 가등기에 근거한 본등기가 마쳐진다면, 매수인은 그대로 소유권을 잃게 된다. 동시에 채무자는 경매를 통해 채무가 소멸하고, 채권자는 배당으로 자신의 채권을 변제받을 수 있다.

정리해보자면 매수인 C씨는 부당하게 자신의 소유권을 상실하는 반면, 공동 매도인으로 볼 수 있는 A씨와 신한카드 측은 경매를 통해 각각 채무변제와 배당금 수령이라는 이익을 얻게 돼 균형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제주지방법원은 이런 법률적 사실에 근거해 신한카드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단지 법원은 A씨의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제한했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사진=신한카드 제공)
A씨는 사실 부동산 지분이 B씨 소유로 가등기가 된지 약 1년 후에 해당 토지에 대한 재산세와 지방세 등 각종 세금을 체납하고 있었다. 또 부동산 지분에 대한 경매가 이뤄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 및 면책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중 면책 부분에 대해 받아들였다.

A씨는 당시 경제적 자력이 없었고, 법원이 면책을 내리며 금전적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었다.

물론 경제적 사정을 떠나 C씨는 A씨로부터 경매에 따른 매매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만 표현해 준다면 소송으로까지 무리하게 끌고 갈 이유가 딱히 없었다. 때문에 C씨는 A씨에 대한 소를 중간에 취하했다.

다만 C씨 측은 신한카드가 경매로 인해 배당받은 금액의 범위 내에서 매매대금을 자신에게 반환할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신한카드의 주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했다. 당시 신한카드 측은 C씨 측 소송제기에 A씨가 파산절차에서 포괄적으로 면책돼, 채무자의 담보책임을 전제로 하는 채권자에 대한 담보책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A씨가 자력이 없어 담보책임을 질 형편이 되지 않았고, 때문에 그의 담보책임을 전제로 하는 자신들에 대한 담보책임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신한카드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경매에 있어 채권자에 대한 담보책임은 채무자에 대한 담보책임과는 독립돼 있지만, 그 추궁의 순서만 1순위·2순위로 나눌 뿐이었다.

채무자(A씨)가 면책됐다고 해서 채권자(신한카드)의 담보책임도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채무자가 파산절차에서 면책됐다고 하더라도 그 채무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채권자의 담보책임도 당연히 소멸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법원은 신한카드 측에 책임을 물어 매각대금을 반환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사건은 신한카드가 강제경매에 붙일 목적물이 채무자의 소유라는 점에 이의가 없는지 여부에 대해 재산조사 과정에서 제대로 파악했다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착오로 인해 경락인이 손해를 본 점에 대해 책임을 사실상 면하려 했던 태도에 대해, 국내 대형 신용카드사로서 따끔한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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