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무능력자 제도 취지 고려 못 한 ‘부족한 판단’했나

친애저축은행·SBI저축은행에서 대출실행한 A씨, 사기대출 당한 지적장애인

A씨, 사기대출이자 행위무능력자 대출이므로 무효 주장… 친애저축은행·SBI저축은행은 반발

법원, “거래 안전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능력자를 보호”… A씨 손 들어줘

지적장애인 고객에 대출채무를 넘긴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의 황당한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은 SBI저축은행 간판.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행위무능력자의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대출을 실행한 뒤, 채무를 그 행위무능력자에 전가하려다 패소한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 두 회사는 사후 개선책마저 제대로 내놓지 못하며, 사실상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 위험을 남겨 놨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남성 A씨는 지난 2015년 12월 말, 제이티(JT)친애저축은행(이하 친애저축은행)에서 대출금 500만원, 연이율 29.20%의 대출약정을 체결했다.

당시 A씨는 친애저축은행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대출을 실행했다. 친애저축은행 측은 A씨와의 대출이 비대면 계약이었던 만큼 보다 꼼꼼한 심사가 필요했다.

이에 친애저축은행 측은 대출 실행 전 A씨의 신분증 사본과 주민등록초본 등 필요한 서류를 넘겨받았고, A씨 명의의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를 통한 전자서명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그의 계좌로 대출금을 송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이틀 뒤 A씨는 다른 저축은행에서 더 큰 금액의 대출계약을 다시 신청했다. 그는 SBI저축은행에서 대출금 1700만원에 연이율 34.8%의 고금리로 직장인 대출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친애저축은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SBI저축은행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대출신청서를 접수했고, 이후 SBI저축은행 측은 대출심사를 위해 A씨의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등의 각종 대출 관련 서류를 제출받았다.

이어 SBI저축은행은 A씨의 직장 전화번호와 휴대전화번호를 확인했고, 상담원이 직접 A씨와 통화해 대출신청 관련 사항을 확인했다. 마무리로 A씨의 공인인증서 전자서명을 받은 뒤 대출금을 그의 예금계좌로 송금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금융고객과 저축은행 사이의 대출계약에 불과했다. 고객의 대출신청이 각 저축은행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됐고, 대출심사 전 과정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틀을 간격으로 다른 저축은행에서 고금리 대출을 실행했던 만큼, A씨가 당시 급전이 필요했던 내막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 A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따른 지적장애 3급에 해당하는 장애인이었다.

A씨가 친애저축은행 및 SBI저축은행과 맺은 대출계약은 당시 그가 알고 지내던 장애인 도우미 B씨가 대출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모두 꾸며낸 일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을 실행한 얼마 뒤 A씨가 B씨를 사기죄로 고소하며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구체적 사실에 따르면, B씨는 A씨가 친애저축은행으로부터 최초 대출계약을 맺기 닷새 전 그에게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이익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어 B씨는 그 사업을 위해서는 초기 비용이 필요한데, A씨 명의로 대출을 받아 그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니 신분증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B씨는 A씨가 지적장애인으로 사리분별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이를 이용해 대출을 받을 목적이었다.

물론 사업을 하거나 A씨에게 투자 이익금을 줄 계획은 전혀 없었으며, 단지 A씨 명의로 대출을 받아 유흥비 등으로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B씨는 A씨로부터 신분증뿐만 아니라 A씨 명의의 휴대폰과 예금통장, 현금카드 등을 건네받았고, 그를 기망해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하게 했다.

심지어 이후에도 다른 두 곳의 대부업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기 대출을 실행하며, 무려 4200만원 가까운 대출금을 편취했다.

B씨는 대출금이 A씨 명의 예금계좌로 입금되자마자, A씨로부터 건네받은 현금카드 등으로 대출금을 전부 인출해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A씨는 가족인 C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A씨의 한정후견인으로 지정된 C씨는 함께 B씨를 고소, 결국 그는 사기죄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지적장애인 A씨에 ‘적법하게 체결된 계약’이라는 친애저축은행·SBI저축은행

B씨의 기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A씨의 명의로 실행한 대출금에 대한 채무를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여부였다.

B씨는 이미 사기죄로 기소됐고 대출금을 변제할 경제적 능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A씨 측 역시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에서 실행한 대출금에 대한 자신의 채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A씨 측은 당시 대출계약은 엄연히 B씨가 불순한 목적으로 A씨에게 대출신청 절차를 하나하나 안내하면서 이뤄졌고, A씨는 지적장애로 인해 자신의 행위의 의미와 그 법적인 책임 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대출을 체결한 만큼 의사무능력자에 의한 무효의 법률행위라는 입장이었다.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 측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출을 실행한 당사자는 A씨였지만, 그 대출은 B씨의 전적인 사기행위로 인해 이뤄졌고 대출금 역시 B씨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사용됐다.

실질적 채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들 저축은행사 입장에서는 대출금을 고객에게 제대로 제공했지만 자칫 그 대출금을 제때 변제받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A씨 측 주장처럼 A씨가 실행한 대출행위는 의사무능력자에 의한 무효의 법률행위였고, 이 사건 대출을 ‘사기대출’로 변하게 한 장본인인 B씨에게 대출금에 대한 채무를 지우는 것이 당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 측은 B씨가 아닌 A씨 측에게 이 사건 대출계약의 채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의사능력과 관계없이 해당 대출계약은 적법하게 체결된 만큼 대출계약자인 A씨에 그 귀책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우선 친애저축은행 측은 비대면대출에 있어 본인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대출서류와 공인인증서 등을 자신들이 확인한 만큼, 대출 취급상 과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A씨가 B씨에게 공인인증서 등을 양도한 행위는 그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 과실의 효력이 A씨에 대한 대출계약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SBI저축은행의 경우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 제7조와 제18조에 따라, 이 사건 대출계약이 A씨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통한 전자서명에 기해 체결된 만큼, A씨의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 제7조와 제18조에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해 송신된 경우, 그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행위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법률에서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본인임을 확인하는 것을 제한 또는 배제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 이 법의 규정에 따라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에 의해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SBI저축은행에 수신된 A씨의 공인인증서 전자서명이라는 의사표시는 ‘작성자’인 A씨로 보는 것이 원칙이며, 공인인증서가 본인임을 확인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인 만큼 이 사건 대출행위의 당사자 역시 A씨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A씨 측은 두 회사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소송을 제기하며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법원 “거래 안전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능력자를 보호”… 두 회사는 사후 개선 관심 없나(?)

지난 2010년경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제한하는 내부 조항을 유지했던 국내 한 금융회사에게 이를 차별행위라며 관련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후 현재는 대출에 있어 지적장애인을 차별하는 악습이 상당히 개선된 상태로, 만약 대출을 거부할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이뤄질 경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대한 법률’에 따라 제재를 받게 된다.

다만 이번 사건의 사례에서처럼 일부 금융회사들이 지적장애인, 즉 의사능력이 결여된다는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대출실행 후 채무 관계를 따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치 의사능력이 있는 사람의 계약과도 같은 잣대로 판단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받아 오고 있다.

JT친애저축은행 본사가 위치한 강남 동훈타워. (사진=한민철 기자)
앞서 언급한 대로 금융사들이 대출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되지만, 같은 장애인이라도 의사능력이 결여되는 이들에 대한 대출은 그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 일반적인 대출계약과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법원의 지난 2009년 1월 15일 판례(사건번호 2008다58367)에 따르면, 어떤 법률행위에 대한 의사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일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에 대해서도 이해해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A씨는 이미 오래 전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지적장애 3급에 지정됐고, 대학병원으로부터 받은 정신감정에서 객관적 인지기능과 언어이해 능력, 지각추론 능력 등 모두가 ‘매우 낮음’ 수준의 결과가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A씨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상생활에서의 행동들은 그의 의사능력이 크게 결여됐다고 충분히 볼 수 있는 근거였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은 법원 역시 A씨에 대한 이런 점들을 받아들여 그의 의사무능력 상태를 인정했다.

또 A씨가 친애저축은행 및 SBI저축은행과 맺은 대출계약의 금액이 소액이라고 할 수 없고 이율 또한 낮지 않은 점에 있어서, 그가 대출계약 당시 각 계약의 대출조건이나 계약에 적용되는 전자금융거래기본약관의 법률적인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능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이 사건 대출계약은 의사능력의 흠결 상태에서 체결된 무효라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친애저축은행의 주장에 대해 지난 2007년 11월 16일 대법원 판례(사건번호 2005다71659)를 들어, 행위무능력자 제도가 거래의 안전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능력자를 보호하는 것에 근본적 입법 취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친애저축은행에 대출취급상 과실이 없었고 A씨에게 귀책을 물을 수 있을지라도, 이 대출계약에 따른 A씨의 귀책이 그가 행위무능력자라는 점보다 우선해 판단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은 SBI저축은행의 주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에 의해 이 사건 대출계약이 A씨 본인의 의사표시에 따라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A씨가 의사무능력자였던 이상 그 의사표시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대출계약의 효력 역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SBI저축은행 측은 B씨의 기망행위로 A씨의 대출계약이 이뤄졌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데, A씨가 기망당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대출신청을 무효로 볼 수 없다며 추가로 주장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행위무능력자 제도의 성격과 입법 취지에 따라 행위무능력자에 대한 보호를 거래에 우선해 판단할 수밖에 없는 만큼, A씨의 의사능력에 흠결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출계약이 무효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법원은 A씨 측 손을 들어주며, A씨는 두 저축은행의 대출금 채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대출계약이 비대면으로 상당수 이뤄지거나, 대출심사에 필요한 서류 중에는 고객이 지적장애인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대출심사를 위한 상담원과의 유선통화 과정도 고객이 지적장애인인지 여부를 사실상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물론 이 사건 대출계약에서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의 주장처럼, 엄밀히 말해 공인인증서 본인확인으로 계약 당사자의 대출계약에 대한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인증서를 신뢰한 금융기관에 모든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것에 있어 다소 이들 저축은행에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금융기관 마다 대출에 있어 단순히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뿐만이 아닌, 지적장애인과 같은 행위무능력자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들의 대출심사에 있어 대출경위와 본인의 대출계약 의사 여부 파악 등의 절차를 보다 철저히 거친 뒤 대출을 실행한다면 이와 같이 고객과 금융사 간 소송까지 가는 사례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이번 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의 경우처럼 단순히 일반 계약자의 귀책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면, 억울한 소비자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목소리다.

두 저축은행사들은 A씨에 대한 대출이 정상적 절차를 거쳤고, 대출을 거부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지 않아 대출을 실행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후 행위무능력자 고객을 고려한 대출심사 체계와 기타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대출기록 삭제 등을 진행해 고객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 처리함”이라고만 답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례의 중대성이나 사후 조치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한 모양새였고, 이는 곧 향후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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