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수장 수난시대…교체 가능성도 제기돼

김정태 채용비리 관여 정황에 하나금융 노심초사

KB,우리은행은 담당자 구속 및 재판 진행 중…과거 신한도 전력

‘저승사자’ 김기식 등판에 금융권 일제히 숨죽여

금융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인 금융당국 수장이 교체된 데 이어 개입이 확인되면서 수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한 금융회사가 연루된 사건을 재조사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사정당국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는 형국이다.

감독을 맡고 있는 금융당국에는 개혁 성향의 강성 수장이 취임하면서 금융권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민단체 및 의정 활동 기간 동안 재벌과 금융권 개혁에 몰두해 왔던 김기식 전 의원이 신임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탓이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다. 사실상 문 대통령이 직접 지목했다고 봐도 무방한 인사”라고 밝혔다. 여권 및 시민단체에서는 김 원장이 금융권과 얽혀 있었던 최흥식 전 원장보다 관계가 자유롭기 때문에 금융 개혁에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채용비리 뇌관에 지배구조 압박ㆍ檢 수사 가능성도

금융수장들의 수난시대다. 각종 악재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권 최대 화두는 채용비리다. 지난 2일 금감원은 2013년 하나은행 채용 업무 현장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총 32건의 비리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사퇴한 최흥식 전 금감원장을 비롯해 함영주 행장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됐다. 3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추천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나왔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지배구조 문제와 회장 선임 문제를 놓고 금감원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하나금융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앞서 지난달 23일, 하나금융 이사회는 주총 후 회의를 열어 대표이사 회장의 유고 시 임원 중 연장자가 이를 대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경영승계 방침을 결정했다. 하나은행도 회장 사퇴 등 비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증거다.

채용비리 의혹에서 KB금융지주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지난달 KB국민은행 인사 담당자가 구속된데 이어 지난 5일에는 KB금융지주 HR 총괄 상무도 구속 수감됐다. 문제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친누나의 손녀)도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윤 회장의 종손녀는 서류전형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 300명 중 273등 했지만 2차 면접에서 120명 중 4등으로 합격했다. 경영지원그룹 부행장과 인력지원부 직원이 최고 등급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연말 연임에 성공한 윤 회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금융권 채용비리 의혹의 시작은 우리은행이었다. 지난해 10월 이광구 당시 행장은 연임이 결정된 상황에서 채용비리가 터지자 사퇴한 바 있다.

채용비리 무풍지대, 신한금융…검찰 조사 받나

대형 금융지주사 가운데 채용비리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는 곳은 신한금융지주다. 그러나 신한금융은 앞서 특혜 채용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1992년 신한은행에 입사한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의 아들 라모 씨의 신한프라이빗에쿼티(PE) 고속 승진을 비롯해 신상훈 전 사장의 자녀 입사 의혹, 한동우 전 회장 아들 미국뉴욕지점 발령 의혹, 이백순 전 행장의 자녀 근무 등 고위 임원 자제들의 채용이 문제됐다. 업계 관계자는 “논란 발생 이후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한 결과, 이번 채용비리 의혹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에 더 큰 장애물이 닥칠 가능성도 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남산 3억원 뇌물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년, 2010년, 2015년)에 대한 본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남산 3억원’ 사건이란 2008년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 이백순 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지시로 서울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3억 원을 전달했던 사건이다. 이 돈의 최종 종착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지목됐다. 하지만 수사는 번번이 흐지부지로 끝나면서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검찰 재조사가 이뤄질 경우 결과에 따라 신한금융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신한사태’를 능가하는 파장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많은 상황이다.

장하성 라인 피했더니 ‘저승사자’ 등장…김기식發 개혁에 금융권 촉각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던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은행 채용 특혜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금융권에서는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에서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자 내부 정보를 제보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로 최근 2015∼2017년 채용실태 검사 땐 관련 자료가 모두 삭제됐고, 복구하기 어렵다던 하나은행에서 그보다 이전인 2013년의 채용 관련 내용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최 원장 관련 채용비리 의혹 보도 내용을 보면 하나은행 내부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그렇다면 하나은행의 경영진도 이런 것이 제보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던 금융당국 수장이 사라졌지만 더 강력한 상대가 나타났다. ‘저승사자’ ‘끝판왕’ 등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김기식 신임 원장은 그동안 금융개혁에도 목소리를 내왔다. 금융권이 “올 것이 왔다”며 긴장하는 이유다.

의원 시절 김 원장의 대표 법안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다. 금융회사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제2금융권까지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는 모든 금융회사의 대주주의 자격 요건 유지 여부를 심사해 자격 미달 시에는 시정 명령이나 의결권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김 원장은 과거 금융지주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2014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그는 “본래 금융지주회사 제도는 은행 중심의 금융산업에서 자본시장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비은행영역의 리스크를 은행으로부터 분리할 목적으로 도입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으로부터 십수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금융회사의 업무 다각화는 요원하고, 은행이 60~9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지주회사 도입으로 달성하려 했던 목적은 퇴색한 지 오래고,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크게 갖는 기형적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 원장은 또 “지주회사가 자회사들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막상 그에 따른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있다”면서 “(금융지주는) 자리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금융당국이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담길 내용의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2016년 시행됐지만 금융사 CEO의 셀프연임과 부당한 영향력 행사 등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면서 당국이 직접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 원장은 지난 2일 취임사에서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보호 간에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감독기구의 위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길”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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