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의적 해석 가능한 약관→고객에 유리하게” 몰랐나(?)

피보험자 A씨, 기존에 한쪽 난소 절제된 상태에서 보험에 가입

보험기간 중 나머지 난소 절제술 받아… 명백했던 ‘양쪽 난소를 모두 잃었을 때’

롯데손보, ‘양쪽 난소를 모두 잃었을 때’를 고객에 유리하게 해석 안 했나(?)

롯데손해보험이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면서, 모호한 약관내용은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간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롯데손해보험(대표 김현수)이 ‘흉·복부장기 및 비뇨생식기 장해’에 대한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며 법적분쟁까지 갔지만 패소한 사연이 뒤늦게 밝혀졌다. 롯데손해보험과 피보험자 간 분쟁의 시작은 모호하게 해석되는 약관 내용이었다. 법원은 약관상 내용이 모호하게 해석되는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아주 잘 알려진’ 대법원 판례대로 피보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다시 말해, 롯데손해보험은 아주 잘 알려진 대법원 판례조차 철저히 고려하지 못한 채 피보험자와 소송전을 벌였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었다.

피보험자의 질병이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피보험자가 의료법상 인정된 정식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단확정을 받아야 한다. 또 보험약관상 보험기간 중 해당 질병의 진단이 확정돼야만 한다.

여기서 보험기간이란 보험사가 피보험자에 계약상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를 갖는 기간으로, 약관에는 기간 뒤에 ‘만기’라는 표현이 붙는다.

사실 피보험자의 특정한 질병이 보험기간 내 처음으로 발생했다면, 보험사와 피보험자 사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큰 이견은 발생하지 않는다.

암보험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암보험의 특약에는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암 보장 개시일 이후에 유방암, 자궁암 및 전립선암 이외의 암으로 진단확정됐을 때(최초 1회)’라는 조건이 주로 제시돼 있다.

이는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내 유방암과 자궁암, 전립선암을 제외한 나머지 암으로 확정된 진단서를 받기만 하면 최초 1회에 한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단순한 구조다.

다시 말해 암이 체내에 50% 퍼지거나, 100%까지 퍼져야 한다는 조건이 없이, 그저 암에 걸렸다는 진단확정만 받으면 사실상 보험금 지급 요건에 충족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약관상 일부 장해분류표에는 앞서 언급한 ‘체내 50% 또는 100% 퍼진 암’처럼 해석이 모호한 내용도 담겨있다.

‘보험기간 내 한손의 다섯 개 손가락을 모두 잃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한다’라는 내용이 그 대표적 예다.

이 장해에 있어 보험금 지급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첫째로 약관 상 보험기간 그리고 한손의 다섯 손가락의 상실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것이 다섯 손가락이 원래는 멀쩡했다가 보험계약 후 보험기간 중에 전부 상실하는 경우인 것인지, 아니면 본래 한손 중 손가락이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채 보험가입이 이뤄졌고 보험기간 내에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까지 전부 손실하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인지에 관한 부분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약관 내 둘 중 하나를 제외시킨다는 등의 별다른 추가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보험사와 피보험자 간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게 이렇게 보험약관상 해석이 모호한 경우 이를 고객에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야 한다.

다만 매우 드문 장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의 어려움 그리고 일부 보험사들이 여전히 보험약관 내용을 어렵게 만들어 놓는 바람에 보험사와 피보험자 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의 지난해 사례가 그랬다. 약관상 장해분류에 제시된 보험기간 중 진단이 확정된 질병으로 ‘뚜렷한 장해를 남겼을 때’라는 모호한 문구로 인해 피보험자와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법적분쟁을 벌였다.

롯데손보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법원은 고객에게 유리한 약관해석을 이유로 피보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시에 모호한 약관해석에 대한 보험사 측의 판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중년 여성 A씨는 지난 2013년 초반, 롯데손보의 한 건강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해당 보험상품은 피보험자가 약관상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질병에 대해 50% 이상 장해 지급률에 해당하는 장해상태가 됐을 때 후유장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해당 장해는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의료법상 정식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단확정을 받았을 때에 한한다.

얼마 후 A씨는 롯데손보의 또 다른 보험상품에 추가로 가입했다. 해당 보험은 앞서 가입한 상품의 약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후유장해 보장을 주로 하고 있었지만, 보장금액이 훨씬 더 높았다.

그렇게 A씨는 롯데손보의 보험상품 가입을 유지해오던 지난해 초 대학병원에서 난소의 낭종 진단을 받았고, 얼마 뒤 해당 난소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A씨는 이미 오래전 다른 한쪽의 난소 절제 수술을 한 적이 있었고, 결국 지난해 수술로 인해 양쪽 난소를 모두 잃게 된 셈이었다.

A씨 측은 수술 과정에서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 내역을 살펴봤고, 당시 수술로 인한 장해가 지난 2013년 가입했던 두 개의 롯데손보 보험상품들의 약관상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가 가입했던 두 가지의 롯데손보 보험상품 모두의 장해분류표상 ‘흉·복부장기 및 비뇨생식기 장해’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기재돼 있었다.

이는 피보험자가 ‘흉·복부장기 또는 비뇨생식기 기능에 뚜렷한 장해를 남겼을 때’ 후유장해 보험금을 지급하며, 여성 피보험자의 경우 그 장해의 판정기준으로서 ‘양쪽 난소를 모두 잃었을 때’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보험기간 중 의료법상 인정받은 대학병원에서 난소 낭종의 진단확정을 받았다. 또 난소 절제수술로 인해 양쪽 난소를 모두 잃게 됐다. 때문에 해당 보험상품의 약관상 보험금 지급사유에 배척하는 조건은 없었다.

이에 A씨는 보험금 신청에 필요한 자료를 모아 롯데손보 측에 관련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심사 끝에 거절당했다.

롯데손보 측은 A씨가 이미 보험기간 전에 다른 한 쪽의 난소를 절제한 상태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A씨가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보험기간 중 진단확정된 질병으로 인해 양쪽 난소를 모두 잃어야 하지만, 한쪽 난소가 보험기간 전 이미 절제됐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한 ‘다섯 손가락’의 예처럼 이미 한쪽이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하나를 제거한 것을 보험기간 중 양쪽을 모두 잃었을 때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A씨는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약관상 장해분류표에는 분명 보험기간 중 진단확정을 받고 양쪽 난소를 모두 잃었을 때라고 기재돼 있었다.

아무리 한쪽 난소가 절제된 상태에서 보험에 가입했을지라도 보험기간 중 양쪽 난소를 모두 잃은 것이 맞았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양측의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의견충돌은 법적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근 이 사건을 선고한 법원은 A씨 측의 승소 결정을 내렸다.

법원 역시 이 사건 보험약관이 ‘모호’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보험기간 중 진단확정된 질병으로 양쪽 난소를 모두 잃는 장해상태’라는 부분의 의미에 대해 보험기간 중 양쪽 난소를 모두 잃은 경우만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보험기간 중 추가로 한쪽 난소를 잃음으로써 양쪽 난소를 모두 잃게 되는 경우도 포함해 볼 것인지에 관한 판단의 문제라는 설명이었다.

이에 이 사건 재판부는 “두 가지 의미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약관의 해석이 모호하거나 다의적 해석이 가능할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A씨의 주장이 옳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대법원의 지난 2005년 10월 28일과 2011년 7월 28일 선고 결과 등에 따르면, 보험약관의 내용은 계약 체결자의 의사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약관 조항의 뜻이 명백하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운 경우, 고객보호의 측면에서 고객에게 유리하고 약관 작성자에게 불리하게 제한해석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A씨는 당시 롯데손보 외에 다른 손해보험사 상품에도 가입 중이었고, 이 보험사로부터 해당 수술로 인해 제대로 보험금을 지급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험사의 약관상 내용은 롯데손보의 그것과 유사했고, ‘보험가입 기간 중 발병한 질병으로 인해 나머지 한쪽을 절제한 상황으로 양쪽 난소를 잃은 경우에 해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결론 내리며 A씨에 분쟁 없이 보험금을 지급했다.

김현수 롯데손해보험 사장. (사진=연합,롯데손보 제공)
이 사건 재판부는 “다른 보험사에서도 사실상 동일한 약관 내용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했다”라며 “A씨가 보험기간 중에 진단확정된 난소를 제거함으로써 보험기간 중 양쪽 난소를 모두 잃은 장해에 해당하며, (롯데손보의)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결국 롯데손보 측은 A씨에 보험금 지급을 이행해야만 했다. 뒤늦게나마 보험금 지급이 이뤄지게 됐지만, A씨는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한동안 받지 못한 채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 사건에서 ‘보험기간 중 진단확정된 질병으로 양쪽 난소를 모두 잃는 장해상태’라는 내용은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약관상 유사하게 명시해 놓은 상태다. 때문에 약관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부분에 있어서 롯데손보의 탓을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보험사들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고객에 유리한 약관의 해석’에 대해 롯데손보 측이 간과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향후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피보험자가 보험가입을 위해 작성하는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등의 서류를 토대로 과거 수술이력을 제대로 살핀 뒤, 관련 약관에 대한 보다 철저한 설명의무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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