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를 재산상 손해배상(?) 보험금 전액 내놓으라니

무보험자동차 사고 배상의무자, 피보험자에 손해배상 지급하면 보험사 공제 가능

가해자-피해자 합의로 오고간 금액, 위자료 또는 재산상 손해배상금 여부로 보험사 공제 가늠

현대해상, 위자료 여부 쉽게 확인 가능했음에도 재산상 손해배상금이라 주장하다 결국 패소

합의 위자료를 재산상 손해배상금이라며 기 지급한 보험금 전액을 돌려놓으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현대해상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위자료 명목의 합의금을 재산상 손해배상금으로 간주해 보험소비자에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현대해상화재보험(대표 이철영·박찬종)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대부분의 자동차종합보험계약 약관에는 보험사의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공제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는 피보험자가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사고로 죽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보험사는 이 사고에 대한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액을 공제한 뒤 나머지 보험금 지급기준에 따라 산출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무보험자동차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 외에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차량을 말한다.

위 규정을 정리해보자면, 무보험차량을 몰다가 피보험자에 교통사고를 낸 배상의무자가 적절히 합의해 피보험자에 ‘재산상(민사상) 손해배상금’을 건넨 경우, 보험사는 본래 피보험자에 지급할 보험금에서 해당 손해배상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지급한다는 의미였다.

우리 법원과 보험업계는 이 공제 규정에 대해 피보험자가 보험사 및 배상의무자로부터 부당하게 이중 배상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 규정에도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금의 성격이 보험사가 피보험자에 제공할 보험금의 그것과 같아야지만, 보험사 측 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기준에 따라 피보험자에게 지급할 금액이 2000만원인데, 이 보험금이 피보험자에게 지급되기 전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치료비 명목의 손해배상금 1000만원을 건넸다.

이 경우 보험사가 지급해야 했던 2000만원이 전부 공제되는 것이 아니라, 배상의무자가 이미 지급한 ‘치료비’ 부분인 1000만원만을 공제한 나머지 손해에 대해서는 피보험자에 보험금 지급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다음 조건은 애매하면서도 다수가 착오를 겪을 수 있는데, 바로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건넨 손해배상금이 사고에 따른 재산상 보상인지, 아니면 사고를 일으킨 배상의무자의 반성 및 피보험자에 대한 정신적 보상의 의미인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와의 합의를 통해 ‘재산상 손해배상금’ 다시 말해 배상의무자가 발생시킨 교통사고로 인한 신체적·물적 피해 등에 관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면, 이는 보험사 측이 피보험자에 지급할 보험금에 대한 공제 사유다.

다만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게 건넨 돈이 사고에 따른 재산상 손해배상금이 아닌, 단순히 배상의무자의 피보험자에 대한 ‘위자료’일 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흔히 사고를 일으킨 배상의무자는 향후 경찰수사나 형사재판 과정에서 처벌의 강도를 덜기 위해 피해자인 피보험자와 원만한 합의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위자료 명목의 합의금을 전달할 수 있다.

이 돈은 재산상 손해배상금이 아닌,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와 합의를 거치면서 자신의 형사 책임을 덜고 과실에 대한 반성 등을 위해 건네는 위자료일 뿐이다.

물론 이 금액은 보험사가 피보험자에 지급할 보험금 중 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아쉬운 부분은 다수의 보험소비자와 심지어 보험사들 역시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보험금 공제 지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이하 현대해상)의 경우가 그랬다.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게 건넨 위자료 의미의 합의금을 재산상 손해배상금으로 잘못 간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보험차량을 몰다 사고를 낸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와 합의해 재산상 손해배상금을 건넨 경우, 보험사는 피보험자에 자동차보험상 보험금 지급기준 금액에서 해당 손해배상금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하게 돼 있다. 물론 위자료는 재산상 손해배상금에서 제외된다. (사진=연합)
이에 공제됐어야 했을 해당 부분 보험금을 피보험자에 지급했으니, 이는 부당하게 받은 보험금으로서 자사가 지급한 보험금 ‘전액’을 돌려내라며 피보험자에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합의서 등 문서 몇 개만 읽어봤다면 이해했을 ‘위자료 400만원’

지난 2015년 초 A씨는 아버지 B씨의 차량을 몰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했다. 당시 A씨는 무면허인 상태로 운전 중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일으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몰던 아버지 B씨의 차량은 현대해상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해당 보험의 특약 중에는 ‘가족한정운전’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또 A씨가 일으킨 사고로 피해를 입게 된 차량은 D씨가 운전 중이었고, 차 안에는 그의 지인 E씨가 동석 중이었다.

당시 사고로 D씨와 동승자 E씨는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크고 작은 상해를 입게 됐다.

D씨가 몰던 차량은 어머니 C씨의 차로, 이 차량 역시 현대해상보의 자동차종합보험계약에 가입돼 있었고, 특약 중에는 무보험차량에 의한 상해를 담보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현대해상 측은 C씨와 D씨에 무보험차에 의한 상해담보특약과 관련된 보험금을 각각 지급했고, D씨에게는 사고 피해를 입은 차량의 자차보험금까지 총 85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A씨와 C씨 측의 개인적 금전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A씨가 C씨에 합의금으로 400만원을 지급한 것이었다.

무면허 운전과 중앙선 침범 등의 위법행위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는 A씨였다. 때문에 이 사건과 관련돼 향후 경찰조사 또는 형사재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피의자 A씨는 피해자 C씨와 적절히 합의를 본다면, C씨에 끼친 손해 부분과 관련해서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현대해상 측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C씨가 A씨 측과 손해배상에 관한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사 측에 알리지도 않은 채 보험금을 지급받았다는 입장이었다.

C씨 측이 현대해상과 맺은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의 약관 상 ‘보험금 지급 기준에 의해 산출된 금액에서 피보험자(C씨)가 배상의무자(A씨)로부터 이미 지급받은 손해배상액을 공제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는 만큼, C씨가 A씨로부터 받은 400만원은 공제해야만 했던 금액이라는 주장이었다.

현대해상 측은 C씨 측이 받아간 보험금을 850여만원을 부당이득금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심리를 맡은 대구지방법원은 지난해 3월 현대해상 측의 패소 판결을 내렸고, 현대해상이 판결에 불복해 열린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현대해상 측 항소를 기각하며 이들의 패소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법원의 판결은 현대해상 측이 굳이 항소심까지 가야만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매우 명쾌했다.

우선 이 사건 재판부는 A씨와 C씨 측이 당시 수사기관에 제출한 합의서에 주목, 합의서 내 ‘이 사건 사고에 대해 원만히 합의한다’라는 부분을 통해 합의가 이뤄진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합의서의 전체적 취지를 고려해 보면 이는 A씨가 자신의 형사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C씨에게 건넨 400만원 역시 단순한 위자료로서의 의미일 뿐 민사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A씨와 C씨 측이 작성한 각서나 서약서 형식의 문서에서도 ‘위로금을 지불하는 것은 구상권 청구에 피해가 없기로 하기 위함’, ‘차량과 치료비 제외하고 위로금 지급’, ‘위로금 지불하고 형사구상금에 대해서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기로 서약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사실 대법원이 지난 2001년 2월 23일 선고(사건번호 2000다46894)한 내용에 따르면, 불법행위의 가해자에 대한 수사나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합의금 명목의 돈을 받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경우, 이 돈을 위자료 명목으로 지급받은 것임을 명시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정리해 보자면, 가해자와 피해자 간 합의금은 보통 재산상 손해배상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맞지만, ‘위자료 명목’이라는 취지의 명시적 증거가 있다면 재산상 손해배상금이 아닌 위자료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A씨와 C씨의 경우에도 여러 문서를 통해 400만원의 합의금이 위로금 즉 향후 C씨의 손해에 대한 A씨의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의 위자료라는 점을 명시한 이상, 이 돈은 재산상 손해배상금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A씨와 C씨 측은 합의금이 위자료 명목이라는 점에 관해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라며 “이 사건 합의금이 재산상 손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합의금은 현대해상 보험약관에 의해 공제돼야 하는 손해배상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A씨와 C씨 간 합의서 등만 제대로 살펴봤으면, 400만원이 재산상 손해배상금인지 위자료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결국 현대해상은 이 합의금에 대해 부당이익이라고 착각한 채 피보험자에 이에 대한 반환을 요구한 셈이었다.

심지어 현대해상은 앞서 언급한 공제 규정의 첫 번째 조건을 간과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보험사가 지급할 보험금은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이다.

왼쪽부터 이철영·박찬종 현대해상 대표. (사진=연합)
또 보험사가 피보험자에 제공할 보험금 중 공제 대상은 전액이 아니라, 배상의무자가 피보험자에 이미 지급한 손해배상금 중 성격이 같은 부분만 공제하면 된다.

그렇다면 만약 400만원의 합의금이 재산상 손해배상금이 맞았다고 가정해 볼지라도, 현대해상이 부당이득금으로 반환을 주장할 액수는 최대 400만원이었다.

C씨와 D씨에게 지급한 850여만원 전액을 다 돌려내라는 것은 보험소비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한 주장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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