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의무 반드시 필요한 사항에 “안 해도 다 알지”(?)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내용 변경 두고 보험사-보험계약자 간 갈등 잦아

직업변경 통보, ‘지체 없이’는 못했지만 보험금 청구 전 했던 피보험자

철저한 설명의무 필요한 약관조항에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라는 메리츠화재

철저한 설명의무가 필요했던 약관조항을 사실상 무시했던 메리츠화재의 사연이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메리츠화재(대표 김용범)가 명시‧설명의무를 보다 더 철저히 해야만 했던 약관조항에 대해 피보험자 측에 대한 설명의무가 필요 없다고 오해했던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당시 메리츠화재 측은 해당 약관조항에 대해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우리 법원은 이런 메리츠화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가입자들은 이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게 되는데, 보통 ‘청약서’와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상품소개서’ 등의 서류 순으로 자필 기재를 하게 된다.

우선 청약서에는 가입자와 피보험자의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 등 기본정보를 기입한다. 또 가입하려는 보험상품의 종류 및 납입보험료에 대한 확인 그리고 보험료 납부 방법 및 계좌번호 등의 내용도 작성해야 한다.

이어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은 피보험자의 신체 및 평소 생활 정보 등을 고지하는 서류다.

여기에는 피보험자의 치료나 입원, 수술 이력과 키·몸무게, 임신 중인지 여부 등 건강 및 신체적 특징을 기재하게 된다. 또 피보험자의 자동차 운전 여부와 직장 및 업종, 구체적 취급 업무 역시 담게 된다.

마지막으로 상품설명서에는 가입하게 될 보험상품의 특약과 기타 가입자가 숙지해야 할 특이사항 및 관련 내용이 기술돼 있고, 가입자는 이곳 상품설명서에 보험설계사 등으로부터 상품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 들었다는 자필 작성을 하게 된다.

이 세 가지 보험계약에 필요한 서류 모두에는 가입자가 정확한 정보를 신중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보다 꼼꼼하게 신경을 써야 할 서류는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이다.

이 서류의 기재 내용은 보험계약 체결 이후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에는 피보험자의 건강과 신체적 특이사항 그리고 종사 중인 직장과 업종 등의 구체적 정보를 담게 된다.

보험사는 가입자로부터 받은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정보를 토대로, 향후 가입자 측이 납입해야 할 보험료의 책정에 반영하게 된다.

만약 피보험자가 과거 수술 및 질병 이력이 있거나 현재 비만 상태 그리고 급수가 위험군에 속하는 업종에 종사 중이라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향후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가 피보험자에 지급할 보험금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동시에 보험사들은 그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입 시기부터 납입보험료는 비교적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납입보험료와 보험금의 규모가 달라지는 만큼, 보험사는 이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의 정보를 보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제출 받아야 한다.

가입자 역시 이 정보에 허위사실을 담는 경우, 향후 보험금 청구를 했을 때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거나 보험계약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어 서류 작성에 있어 보다 철저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험계약은 장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피보험자의 건강과 신체적 특징 그리고 직장과 업종 즉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에 기재된 정보가 바뀌기 쉽다.

만약 가입자나 피보험자 측이 피보험자의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이 바뀌었다는 점을 지체 없이 보험사 측에 통보한다면, 보험사 측에서 납입보험료를 조정하는 등의 조치로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보험가입자와 피보험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한 채 보험계약을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향후 보험금 지급을 사유가 생겼을 때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내 변경된 정보를 보험사 측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보험금이 축소 지급되거나 보험계약 해지에 따른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보험사들의 보험약관에는 이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의 변경 부분에 대한 지체 없는 통보, 즉 ‘계약 후 알릴 의무사항’에 대해 적시돼 있다.

이는 상법 제652조 제1항의 ‘보험기간 중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에는 지체 없이 보험자에게 통지 해야 한다. 이를 해태한 때에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명백히 나타나 있다.

약관과 상법에 관련 사항이 명시돼 있는 만큼 계약 후 알릴 의무사항 위반과 관련된 보험사와 가입자‧피보험자 간 보험금 지급 분쟁에서 보험사가 유리한 입장에 서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보험사 역시 이에 대한 설명의무를 절대로 태만히 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계약 전‧후 알릴 의무사항은 납입보험료와 보험금의 규모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양측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고, 일부 보험계약자들이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험사가 이 부분에 대해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라고 오해한 채 설명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는 아쉬운 사례도 종종 발생하기 마련이다.

직업변경, ‘지체 없이’ 통보하지 않았던 것뿐… 보험금 청구 전 통보는 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A씨의 어머니 B씨는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하 메리츠화재)의 보험설계사 C씨로부터 보험가입을 권유받고, 가입자는 B씨 그리고 피보험자 및 보험계약 수익자를 A씨로 하는 장기 상해보험상품에 가입했다.

당시 B씨는 해당 보험계약 체결 과정에서 계약 전 알릴 의무사항 서류 중 피보험자 A씨의 직업란에 ‘대학생’이라고 기재했다.

실제로 당시 A씨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분으로서 보험사 기준 대학생의 직업급수는 1급으로, 이는 보다 저렴한 납입보험료 책정에 반영될 수 있었다.

그렇게 A씨는 수년 간 이 보험계약을 유지하던 지난 2015년 초, 대학 졸업 후 한 기계 제조 공장의 생산 관리직으로 취업하게 됐다.

안타깝게도 A씨는 취업 3개월 만에 업무 도중 큰 사고를 당했고, 무려 반년 동안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게 됐다.

A씨는 같은 해 말 의료법상 정식 의료기간으로 등록된 대학병원으로부터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어 몇 년 전 어머니 B씨가 가입한 메리츠화재의 보험계약에 따라 이 사건 사고로 인한 후유장해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보험가입 기간 중 직업이 변경됐을 때, 필히 보험사에 관련 사항을 통지해야 한다. (사진=연합)
그런데 메리츠화재 측은 A씨에 약관상 지급해야 할 금액보다 감액한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통보했다.

메리츠화재 측은 A씨가 직업이 변경돼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히 증가했음에도 자사 측에 이를 알리지 않아 약관 상 계약 후 알릴 의무와 상법 제652조 제1항의 통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A씨가 대학생 신분이었을 때 보험사가 판단한 직업급수는 1급이지만, 사고 당시 A씨에 해당하는 ‘기타 건설, 전기 및 생산관리자’ 업무의 직업급수는 2급으로 보다 고위험군이었다.

또 A씨는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취업했을 때 메리츠화재 측에 지체 없이 직업변경 사항을 통보하지는 않았다.

메리츠화재 측은 A씨가 약관 상 계약 후 알릴 의무 부분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며, 보험금을 축소 지급하는 것에 더해 해당 보험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A씨는 강력히 반발했다. 우선 직업변경 부분과 관련해서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메리츠화재 측에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산업재해 서류를 제출했고, 이에 며칠 뒤 메리츠화재 직원이 당사 전산망에 자진의 직업변경 등록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대학생에서 공장 관리직으로 직업이 변경된 뒤 ‘지체 없이’ 이에 대해 통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 보험금 청구 이전 시점에 직업변경 등록이 완료됐고 메리츠화재 측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므로 보험금 축소 지급과 계약 해지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 보험계약의 가입자는 어머니 B씨로, 엄밀히 말해 메리츠화재 측이 A씨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계약 후 알릴 의무사항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았기에 이는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설명이었다. 심지어 A씨는 어머니 B씨로부터 해당 약관 내용을 전달받은 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설명의무 반드시 필요했던 약관조항을 “별도 설명이 필요 없었다”라니

항소심 끝에 법원은 최근 A씨에 대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메리츠화재의 약관조항의 명시 및 설명의무 위반 그리고 A씨의 통지의무 위반 등에 대한 쟁점에서 재판부는 모두 A씨 측 손을 들어줬다.

앞서 메리츠화재는 자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A씨 측의 주장을 반박한 바 있다.

메리츠화재 측 주장에 따르면, 이 사건 약관조항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으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었다는 입장이었다.

또 해당 부분에 대한 설명이 이미 상법 제652조에서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A씨에게 명시 및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메리츠화재 측 주장은 대법원이 지난 2014년 7월 24일 선고(사건번호 2013다217108)한 내용에도 적시돼 있다.

당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약관에 정해진 사항이라고 할지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돼 보험계약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 그리고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런 사항에 대해서까지 보험자에게 명시‧설명의 의무가 인정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메리츠화재 측은 해당 약관조항이 명시‧설명의무로 인정할 수 있을지라도 자사 설계사 C씨가 A씨 및 B씨에 직업변경 사실 통지의무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A씨의 설명의무 위반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약관조항이 보험계약서상 기재사항의 변동에 관한 것으로 보험자가 명시‧설명해야 하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직업변동에 따른 통보라는 것은 상법 제652조 및 제653조가 규정한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라는 부분에 해당하는 사유를 개별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법 규정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한 정도의 약관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메리츠화재 측 주장과는 다르게 이 사건 약관조항인 직업변경 통지의무에 대해 보험계약자 측에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명시‧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메리츠화재 측 주장과 또 다른 부분이 발견됐는데, 이 사건 재판 중 C씨가 A씨 및 B씨에 직업변경 사실 통지의무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 기억이 아닌 추상적인 설명”이었던 것으로 바로잡혔다.

심지어 C씨는 상품설명서에 기재된 주요사항을 완벽히 설명한 것도 아니었고, B씨가 C씨로부터 추가로 가입한 보험상품의 청약서에는 A씨와 B씨의 자필서명도 기재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재판부는 C씨가 A씨 및 B씨에 반드시 명시‧설명해야 하는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메리츠화재 측이 주장한 A씨 측 통지의무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직업변동에 따른 통보라는 약관조항을 반드시 설명의무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사진=연합)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이 사건 약관조항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거나 직업이 대학생에서 생산 관리직으로 변경된 경우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히 증가된 경우에 해당해 이를 메리츠화재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라고 밝혔다.

메리츠화재 측이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A씨와 B씨에게 직업변경이 통지 의무 대상임을 알렸다거나, A씨가 사고 당시 직업급수에 해당하는 ‘기타 건설, 전기 및 생산관리자’ 업종이 사회통념상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직업이라는 등의 사정을 알 수 있었을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메리츠화재 측은 직업변경 사실 통지의무 대한 명시‧설명의무를 철저히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라고 오해한 채 보험금 축소 지급 및 계약해지를 주장했던 셈이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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