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관리-기술지원 받았는데, ‘노하우’ 이전 아니었다(?)

외국법인 특허 사용 후 지급하는 특허료에 원천징수 과세 규정

한국가스공사, ‘상품’ 인도받았을 뿐 ‘노하우’ 이전받지 않았다며 원천징수 부당 주장

법원,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훈련-관리-기술지원 받았다면… “노하우 이전으로 봐야” 판단

한국가스공사의 황당한 법인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이 최근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외국법인과의 제휴로 지급한 특허료에 대해 세무서가 원천징수 과세를 했지만,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이어가 최근 패소한 한국가스공사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은 당시 관할 세무서가 법인세법과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정당한 과세를 했다고 판단했다.

원천징수란 국내에 사업장이 등록되지 않은 외국법인이 국내에서 올린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납부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그 소득을 지급하는 자가 미리 일정액을 더해 우리 국세청에 납부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992년 5월 대법원은 국내 기업이 외국으로부터 특허 기술을 도입해 생산한 제품에서 발생하는 특허료에 대해 국내에서 원천징수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대법원 판결의 발단은 지난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미국 필립스사와 계약을 체결, 필립스사의 특허 기술을 차용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신 한 대당 57센트의 특허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필립스사에 특허료를 지급하며 자동차 생산을 지속해 왔는데, 관할 세무서에서 현대자동차 측에 “특허료 지급에 따른 원천징수의 의무가 있다”며 법인세를 과세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세금 징수에 대한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앞서 언급한 대로 대법원은 현대차에 대한 원천징수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에서만 효력이 있으며 외국법인의 특허권이 등록돼 있지 않은 국내에서, 생산특허권이 등록된 외국에 특허제품을 수출할 경우 외국회사가 국내에서 얻은 소득이 없으므로 국내에서 세금을 원천징수할 수 없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 판결 이후, 기존에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기술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면서 이에 대해 지급한 특허료에 대해 법인세를 납부해 왔던 국내 회사들이 세무서에 원천징수한 세금을 되돌려 달라고 주장하는 등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그만큼 관련 법리해석을 두고 잡음도 많았지만, 지난 2008년 개정 법인세법에서는 위와 같은 사례에서 국내법인의 외국법인에 대한 특허료 지급에 있어 법인세 부과가 정당하다고 규정했다.

이후부터 국내기업들이 외국법인의 특허를 사용하고 이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하며 발생한 세금을 원천징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법인세법 제93조 제8항에도 상세히 명시돼 있다. 상표권과 디자인권, 산업상‧상업상‧과학상의 지식에 관한 정보 또는 노하우 등의 특허권이 국외에서 등록됐고, 이에 대한 사용의 대가를 국내에서 지급하는 경우 그 특허권의 국내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원천징수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와 같은 법인세 관련 규정은 글로벌 회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국내기업들이 매우 상식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만 할 부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세에 대한 법리해석상의 이견으로 여전히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잘 알려진 사례 중 하나로 지난 2016년 삼성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지급한 특허료에 대한 원천징수를 둘러싸고 빚어진 국세청과 MS사의 충돌이 있다.

또 한 가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더 있다. 바로 한국가스공사와 관할 세무서 간의 법인세 부과 처분 취소를 둘러싼 법적 갈등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외국기업의 특허를 국내에서 사용하면서 관련 특허료를 지급했고, 세무서가 이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했지만 부당한 과세 청구라는 취지로 불복했다.

이후 조세심판원과 행정소송까지 가는 치열한 다툼 끝에 최근 법인세 납부가 정당하다, 즉 한국가스공사의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단지 ‘상품’으로 인도받은 소프트웨어… “‘노하우’까지 받은 것은 아니다(?)”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는 지난 2014년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인 A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A사의 소프트웨어에는 가스공사가 다루는 천연가스 생산 및 공급과 관련된 공정해석 및 기술‧경험‧정보 등의 노하우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당국은 지난 2015년 말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대대적 세무조사에 나선 적도 있다. (사진=연합)
가스공사 입장에서는 해당 소프트웨어에 대한 필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소프트웨어 사용 등을 대가로 A사에 고액의 라이선스료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에 관할 세무서는 가스공사가 A사에 지급한 라이선스료를 국내원천소득으로 봤고, 이에 대해 원천징수의무자인 가스공사를 상대로 법인세 징수‧고지 처분을 두 차례 내렸다.

가스공사 측은 조세심판원에 세무서의 법인세 징수 처분에 대한 심판 청구를 했지만, 지난해 초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사실상 세무서의 과세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관할 세무서 역시 처분사유와 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라 가스공사 측에 대한 원천징수 과세 처분이 적법했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가스공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부과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가스공사는 당시 세무서의 처분에 대해 “법인세법 기본통칙 조항에 따른 과세 관행을 깨뜨리는 것”이라며 “신의칙 내지 새로운 해석에 의한 소급과세 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라고 주장했다.

가스공사 측은 A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사용하게 된 소프트웨어는 단지 ‘상품’으로 인도받았을 뿐, 여기에 담긴 ‘노하우(Know-how)’까지 이전받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법인세법 제93조 제8항에 따른 원천징수 대상은 외국에서 등록된 상표권 그리고 특정 지식에 관한 정보 또는 노하우 등의 특허권의 사용에 대해 국내법인이 외국법인에 지급한 대가다.

다시 말해 가스공사 측은 외국법인으로부터 단순히 상품 그 자체를 받았을 뿐, 그 상품의 노하우까지 이전받지 않아 자사가 A사에 지급한 라이선스료가 원천징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가스공사는 당시 세무서의 원천징수 부과가 국세청이 규정하는 법인세법 기본통칙에 있어서도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인세법 기본통칙 93-132…8의 ‘외국법인에게 지급하는 소프트웨어의 지급대가’에서는 원천징수 대상이 되는 소프트웨어의 대가 범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먼저 해당 소프트웨어의 비공개 원시코드(Source Code)가 제공되는 경우다. 또 원시코드가 제공되지 않았더라도, 국내 도입자의 개별적 주문에 의해 제작‧개작된 소프트웨어가 제공됐을 경우 역시 해당한다.

이어 소프트웨어의 지급 대가가 해당 소프트웨어의 사용형태 또는 재생산량 규모 등 소프트웨어의 사용과 관련된 일정기준에 기초해 결정하는 것에 있어 지급하는 대가를 노하우의 사용에 따른 사용료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이 지난 1997년 12월 12일 선고(97누4005)한 판결에서도 명시된 법리로서, 가스공사 측은 이 세 가지 어디에서도 자사가 A사로부터 제공받은 소프트웨어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교육훈련-관리-기술지원’ 받았는데… 노하우 이전 아니라고(?)

대법원의 지난 2000년 1월 21일 선고(97누11065)한 내용에 따르면, 법인세법 제93조 제8항 ‘나’목에서 규정한 노하우에 따른 사용료는 발명과 기술, 제조방법, 경영방법 등에 관한 비공개 기술정보를 사용하는 대가를 의미한다.

국내법인이 외국법인으로부터 도입한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도입가격, 특약내용 그리고 기타 제반사정에 비춰봤을 때 그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히 상품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노하우나 그 기술을 도입한 것이라면 그 도입의 대가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인 사용료 소득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법인세법 제98조에서 정한 원천징수 의무자인 국내법인, 즉 그 소프트웨어의 사용에 대해 외국법인에 사용료를 지급한 이에게 법인세를 징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한국가스공사와 관할 세무서 간 법인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의 재판을 맡은 법원은 가스공사 측이 A사로부터 인도받은 소프트웨어에 담긴 노하우나 기술까지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세무서의 원천징수 과세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최근 내렸다.

이 사건 재판부는 우선 A사의 소프트웨어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따져봤다. 해당 소프트웨어에는 가스공사가 필요로 하는 천연가스 등의 생산 및 공급과 관련된 기술과 경험‧정보에 기반한 노하우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가스공사와 A사가 맺은 라이선스 계약 조건 중에는 A사가 가스공사 측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하고, 소프트웨어 사용자에 대한 교육 훈련을 실시하며, 이에 대한 유지와 관리 책임까지 부담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가스공사가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시작한 이후에도 필요한 기술적 지원을 하는 등, 소위 말하는 ‘애프터 서비스(After Service)’까지 책임진다는 조건이었다.

동시에 가스공사 측은 A사에 소프트웨어의 유지 및 관리 등의 대가로도 매년 고액의 금전적 대가를 지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이 사건 재판부는 가스공사가 A사로부터 소프트웨어에 담긴 노하우나 기술까지 제공받았다고 볼 수 있고, 이후 소프트웨어의 유지 및 관리의 책임까지 맡긴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으므로 이는 원천징수 대상이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가스공사 측은 소프트웨어의 노하우를 제공받았다는 점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설령 자사가 그 노하우를 사용했다고 할지라도, 이를 이전받지 않은 이상 그 사용 대가를 원천징수 대상인 사용료 소득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부분 주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인세법 제93조 제9항에서 열거된 권리 등의 양도 대가뿐만 아니라 사용대가 역시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법인세법 기본통칙 ‘외국법인에게 지급하는 소프트웨어의 지급대가’에서 규정하는 원천징수 대상이 되는 소프트웨어의 대가 범위에 자사의 경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가스공사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가스공사 측이 이 부분 주장에 대해 대법원의 지난 1997년 12월 12일 선고(97누4005) 내용을 근거로 삼으면서 착오를 범했을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대법원 판례에서는 “그 밖에 해당 소프트웨어의 비공개 원시코드가 제공되는 경우, 원시코드가 제공되지 않더라도 국내 도입자의 개별적 주문에 의해 제작‧개작된 소프트웨어가 제공된 경우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지급대가가 해당 소프트웨어의 사용형태 또는 재생산량의 규모 등 소프트웨어의 사용과 관련된 일정기준에 기초해 결정되는 ‘경우 등에는’ 노하우 또는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이 내용 중 ‘경우 등에는’이라는 부분에 주목해, 노하우 도입을 가스공사가 주장한 세 가지 방법에 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해당 대법원 판례의 내용에 대해 ‘한정적 열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재판부는 세무서 측의 처분이 법인세법 기본통칙 조항에 따른 과세관행을 깨뜨렸다는 가스공사의 지적이 부당하다고 밝혔다.

본지의 취재 결과, 사실 A사는 한국가스공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 이전부터 삼성이나 SK 등 대기업 계열사 및 기타 국내법인들과도 제휴해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처분사유와 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라 가스공사 측에 대한 원천징수 과세 처분이 적법했다는 세무당국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사진=연합)
물론 당시에도 A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국내법인들은 이에 대한 라이선스료를 지급하며 세무서에 원천징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례에 있어 한국가스공사 측이 법인세법 제93조 제8항에 대한 명확한 의미에 대해 간과했을 소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법원의 판단대로 자사 측이 A사로부터 소프트웨어를 제공받으며 사실상의 노하우와 기술까지 도입했다는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과세당국의 처분에 불복해 장기간 동안 소송을 이어온 점은 반드시 개선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외국법인으로부터 특허권을 사용하는 다른 국내법인들에게도 법인세법 제93조 제8항에 따른 원천징수 대상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며,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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