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대상자 분양대금에 포함됐던 ‘안 내도 됐던 돈’

도시개발사업에 따른 이주대책, 이주대상자에 주택‧택지 공급으로도 가능

SH공사, 이주대상자에 특별공급주택 분양권 제공

자사 부담의 ‘생활기본시설 설치비’, 이주대상자 납부한 분양대금에 포함시킨 SH공사

자사가 부담해야 할 ‘생활기본시설 설치비’를 이주대상자가 납부한 분양대금에 포함시킨 SH공사의 황당한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도시개발사업에 따른 이주대책 수립·실시에 있어, 관련 법령상 이주에 따른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를 시행자인 자신들이 부담했어야 함에도 이를 이주대상자들이 부담하게 하다가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당한 사례가 밝혀졌다. 사실상 이주대책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마저 간과했던 SH공사는 결국 법원으로부터 지난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는 해당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구 공익사업법)’ 제78조에 따라 도시개발사업 시행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수용과 사용에 대한 이주대책의 수립 및 보상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시행자는 도시개발사업에 편입된 주택 또는 토지의 소유주와 협의해 주거 이전에 필요한 비용을 산정해 보상할 수 있다.

또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토지의 소유주가 농업‧어업을 계속해 영위할 수 없게 됐을 경우에도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주대상자에 대한 보상에는 굳이 금전적 부분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해당 공익사업과 관련된 업무에 고용 특혜를 주는 방법도 있다.

특히 이주대책 협의를 통해 이주대상자들에 해당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조성될 주택 등을 제공하는 것 역시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토지보상법 시행령)’ 제40조의 제4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조항에는 “사업시행자가 ‘택지개발촉진법’ 또는 ‘주택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이주대상자에게 택지 또는 주택을 공급한 경우에도 이주대책을 수립·실시한 것으로 본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토지보상법 제78조의 제4항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명시돼 있다. 도시개발사업 시행자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수용과 사용에 대한 이주대책의 수립을 통해 정한 이주정착지에는 도로와 급수시설, 배수시설, 그 밖의 공공시설 등 통상적 수준의 생활기본시설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도시개발사업 시행으로 이주대상자가 된 이들이 향후 이주해 정착할 곳에서 누리게 될 생활기본시설에 대한 부분 역시 그 이주대책을 마련하는 시행자가 시설을 제공하거나 그에 소요되는 설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지난 2011년 6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7다63089,63096)을 통해 보다 명확해 졌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서는 “구 공익사업법은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협의 또는 수용에 의해 취득하거나 사용함에 따른 손실의 보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공익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통해 공공복리의 증진과 재산권의 적정한 보호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른 이주대책은 공익사업의 시행에 필요한 토지 등을 제공함으로써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이주대책 대상자들에게 종전의 생활상태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여 주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라고 명시했다.

이와 같은 공익적 목적을 위한 도시개발사업의 취지에 따라, 토지보상법(구 공익사업법) 제78조 제4항에서 제시된 ‘도로‧급수시설‧배수시설 그 밖의 공공시설 등 당해 지역조건에 따른 생활기본시설’은 주택법 제23조 등 관련 법령에 의해 주택건설사업 그리고 대지조성사업을 시행하는 시행자가 설치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 생활기본시설에는 구체적으로 상하수도시설, 전기시설과 통신시설, 가스시설, 지역 난방시설 등 간선시설 등이 포함돼 있다.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는 토지보상법 시행령 제40조의 제4항에서 규정돼 있는 이주대상자에게 택지 또는 주택을 공급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해당 택지나 주택에 대한 분양계약 체결을 통해 이주대상자가 납부할 금액 중 시행자가 부담해야 할 생활기본시설 설치비는 공제돼야 한다.

도시개발사업에 따른 주거이전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 아쉬운 점은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낙후된 곳이 많았고, 이 사업구역에 편입된 주택 또는 토지의 소유주, 즉 이주대상자도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한 이주대상자들은 이 토지보상법에 대해 완벽히 숙지하지 못한 채, 시행자들이 추진하는 이주대책과 보상절차에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한 이주대상자들은 토지보상법에 대해 완벽히 숙지하지 못한 채, 시행자들이 추진하는 이주대책과 보상절차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기사의 도시개발지와 관련 없음* (사진=연합)
다시 말하자면 법에 의해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들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에 대해 바로 인지하지 못한 채 이주를 완료하거나 시행자 측과 불편한 법적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안 내도 되는 ‘생활기본시설 설치비’ 포함시킨 SH공사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로 인해 밝혀진 SH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공사)의 지난 2004년 말 도시개발사업의 경우가 이와 같았다.

당시 SH공사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일대에 지정된 도시개발구역에 대한 사업의 시행자로 선정됐다.

SH공사의 해당 도시개발사업은 구 공익사업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 우선 사업 시행자 선정 다음해에 이주대상자에 대한 보상계획을 공고했고, 그 다음해에는 이주대책 기준일자를 정해 이주대책을 공고했다.

이후 지난 2013년 말경 도시개발사업 구역 내에 특별공급주택을 포함한 1100여세대 이상의 아파트를 신축 및 분양했다.

당시 이 도시개발사업의 이주대상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소유하던 토지나 주택 등이 사업지구에 편입되자 이를 공익사업을 위해 제공했고, 이후 SH공사의 이주대책에 따라 이주를 완료했거나 보상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주대상자 중에는 금전적 보상이 아닌 SH공사가 해당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신축‧분양한 아파트 중 특별공급주택을 분양받기로 한 A씨와 B씨가 있었다.

두 사람은 SH공사와의 협의 끝에 각각 해당 특별공급주택을 분양받기로 하는 수분양계약을 체결했고, 그 중 B씨의 경우 SH공사의 승인 하에 C씨와 D씨라는 사람에게 이 분양계약상의 지분 절반씩을 양도했다.

이후 A씨와 C씨, D씨는 SH공사로부터 제공받은 특별공급주택의 분양계약에서 정한 대금을 완납했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잡음 없이 SH공사의 도시개발사업이 아파트의 성공적 분양으로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세 사람은 한참 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자신들이 납부한 분양대금 중에 법적으로 ‘내지 않아도 되는 금액’까지 포함돼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내지 않아도 되는 금액’은 이주대책 수립을 통해 발생하게 된 이주 후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수용과 사용에 대한 이주대책을 수립하면서, 이주에 따라 발생하는 도로와 급수시설, 배수시설, 그 밖의 공공시설 등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용을 이주대상자들에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물론 이는 이주대상자에게 택지 또는 주택을 공급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고, A씨 등이 사업시행자인 SH공사와 체결한 특별공급주택의 분양계약과 이에 따라 지급한 분양대금에서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용을 제외돼야만 했다.

그러나 SH공사는 이를 공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 사람이 지급할 분양대금에 포함해 청구했다.

SH공사가 세 사람이 지급한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용 상당의 경제적 이득을 위법하게 얻은 것이 명백했고, 이들은 SH공사를 상대로 해당 부당이득의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법원은 어렵지 않게 SH공사 측에 A씨 등이 청구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납부한 분양대금은 구 공익사업법 제78조 제4항에 규정된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용을 공제하지 않은 채 정해진 금액”이라며 “이 분양대금에서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용을 포함시킨 부분은 강행법규인 해당 법조항에 위배돼 무효이며, SH공사는 A씨 등에 생활기본시설 설치비용 상당의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라고 판시했다.

사실 이 소송이 제기된 점에 대해 매우 아쉽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도시개발이라는 대규모 공익사업의 시행사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만 할 이주대책 수립 및 보상절차 진행이었음에도, 사업시행자인 SH공사가 매우 기본적이며 필수적 법조항인 토지보상법 제78조의 내용을 사실상 간과한 채 분양대금을 산출한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세용 SH공사 사장. (사진=연합)
특히 도시개발사업의 이주대상자들은 해당 법조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주 및 보상을 끝내기 쉬운 만큼, SH공사가 솔선해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용을 공제한 분양대금을 납부하도록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주대상자들로부터 때늦은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당해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크며 향후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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