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법 66조, ‘일반도로’ 제외 몰랐나

도로교통법 제66조, 도로상 차량 고장 등 정차 후 안전조치 의무 명시

‘도로’는 일반도로 제외한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해당

롯데손보, 일반도로에서 도로교통법 제66조 위반이라는 황당한 주장

도로교통법 66조를 잘못 파악해 상대방에 과실 책임을 물으려 했던 롯데손해보험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이면도로상에서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도로교통법 제66조 위반을 지적한 황당한 롯데손해보험(대표 김현수)의 사례가 밝혀졌다.

도로에서 교통사고나 차량이 고장 등으로 멈추는 비상사태가 생긴다면, 운전자들은 주변에 안전 삼각대를 설치하거나 그 밖의 안전조치를 취해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등을 예방할 의무가 있다.

이는 도로교통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는데, 동법 제66조에서는 “자동차 운전자는 차량 고장 등의 사유로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됐을 때,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표지를 설치하거나 해당 차량을 고속도로 등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 도로교통법 제66조는 굳이 자동차 운전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교통안전의 상식적 차원에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 이 법조항에서 주목해 바라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공간적 조건이 ‘고속도로 등’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도로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데, 일반도로와 고속도로 그리고 자동차전용도로다. 일반도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보행자 또는 차마(車馬)가 통행할 수 있는 도로다.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고속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도로이며, 자동차전용도로는 자동차만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다.

이중 도로교통법 제66조에서 공간적 조건인 ‘고속도로 등’이란, 대법원 판례(2013다215904)상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나 차량이 고장 등으로 멈추는 비상사태가 생긴다면”이라는 내용 중 ‘도로’에서 일반도로의 경우는 제외할 수 있다.

정리해 보자면 차량이 사고나 고장 등으로 멈췄을 때 삼각대 설치나 그 밖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은 일반도로나 고속도로 등 어느 도로에서도 필요한 상식적인 행동이지만, 엄밀히 일반도로에서는 이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 운전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처리에 있어 과실비율을 판단할 때 간과하기 쉽거나 보험사와의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의 판결을 통해 밝혀진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의 사례가 그랬다. 롯데손보는 일반도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에 있어 상대방 측 운전자가 삼각대 설치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차량이 사고나 고장 등으로 멈췄을 때 삼각대 설치나 그 밖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은 일반도로에서는 의무가 아니다. (사진=연합)
롯데손보는 상대방 측 운전자가 사고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내용과 함께 자사 피보험자에 유리한 과실비율을 책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사고가 ‘일반도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해당이 없다고 판단해 롯데손보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겨울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한 삼거리 교차로 내리막길 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 도로는 폭 3m 미만의 1차선 이면도로(裏面道路)였고, 폭설로 인해 빙판길로 변한 상태였다.

이날 오전 9시경 A씨의 차량은 이 내리막길 도로를 주행하던 중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그 자리에 정지하게 됐다.

당시 도로는 빙판길이었을 뿐만 아니라 눈도 쌓여있었고, A씨는 차량을 도저히 이동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는 차량을 그대로 도로에 정차시킨 채 미등을 켰고, 노상에 쌓인 눈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C씨가 이 길을 지나치고 있었다.

A씨는 C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C씨는 A씨 차량 근처에서 제설작업을 도왔다. 이로부터 얼마 뒤 A씨의 차량이 정차돼 있는 내리막길 도로를 B씨의 차량이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B씨의 차량도 A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행 중 빙판길에 넘어졌는데, 그만 근처에서 제설작업 중인 C씨를 충격해 큰 상해를 입히고 말았다.

B씨 차량에 대한 보험사인 롯데손보 측은 C씨에게 당시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 명목으로 1억 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롯데손보 측은 여기서 A씨 차량의 보험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C씨에 대한 사고에 A씨의 과실 역시 기여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롯데손보 측은 A씨가 차량을 정차시킨 뒤 후행 차량에 위험사항을 알릴 의무를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A씨가 도로교통법 제66조를 위반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A씨는 제설작업과 미등 점화만 실시했을 뿐, 도로에 삼각대를 설치하는 등의 안전조치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롯데손보는 A씨가 이 사건 내리막 빙판길에서 자신의 차를 정차시켜 놓음으로써, 후행 차량이 미끄러져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안전조치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B씨가 C씨에 사고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고, 당시 A씨의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66조를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롯데손보는 C씨의 사고에 대해 A씨의 과실이 최소 60% 이상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고, 자사가 C씨에게 지급한 손해배상금 대해 A씨 측 보험사가 A씨의 과실을 인정해 구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법원은 롯데손보 측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에서 청구 내용이 재판부로부터 전부 기각된 롯데손보 측은 항소했지만, 최근 항소심 재판부마저도 롯데손보 측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 사건 재판부의 판단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롯데손보 측이 A씨의 과실을 물은 근거로 도로교통법 제66조 위반을 들었지만, 당시 사고가 발생한 도로가 이 규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고가 난 도로는 폭 3m 미만의 1차선 이면도로였다. 이는 보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일반도로로서, 도로교통법 제66조에서의 공간적 조건인 ‘고속도로 등’에 해당하는 도로가 아니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 장소는 고속도로 및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 해당하므로 이와는 다른 전제에 선 롯데손보 측 이 부분 주장은 살펴볼 필요 없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롯데손보 측은 당시 A씨 차량이 도로교통법 제37조에서 정한 차량의 등화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이 부분 역시 이의를 제기했지만, A씨 차량이 차의 미등을 켰던 사실이 충분히 인정돼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현수 롯데손해보험 사장. (사진=연합,롯데손보 제공)
이번 사례는 도로교통법 제66조의 규정은 매우 상식적이며 일반적으로 따라야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이 잘 숙지하지 못하고 있을 ‘일반도로에서는 의무가 아니다’라는 점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보험을 전문으로 다루는 롯데손보에서 기초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이 부분 규정을 항소심까지 끌고 가면서 일반 운전자들의 과실을 물으려 했던 점은 자칫 소송남발로도 보일 수 있는 만큼, 향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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