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근절’ 높은 평가… ‘재벌개혁‘ 시험대에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등 ‘4대 갑질’ 근절에 선제 대응

“경제적 약자 보호에 힘써, 높이 평가해야” vs “보여주기식 대책에 치중”

대기업 자발적 변화 요구에도 미온적…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준비

“공정위 본연 역할 속 성과내야” vs “재벌 개혁, 경제 성장과 함께 가야”

오는 14일이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만에 재벌 개혁의 선봉장으로 김 위원장을 택했다. 정권 초반 자신의 경제 공약을 가장 잘 구현할 인물로 염두에 뒀다는 방증이다.

지난 1년동안 김 위원장은 임면권자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평가다. 가맹점주, 중소영세상공업자 등 갑의 횡포에 좌절했던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대책을 제시하고 수차례 국회를 찾으며 입법 활동에도 노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대했던 재벌 개혁에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검찰의 수장으로 김 위원장의 행보를 뒤돌아보며 앞으로의 과제를 진단해봤다.

“을의 눈물 닦아주겠다”던 김 위원장…4대 갑질 개정안 통과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공정위는 시장의 경쟁구조를 유지·강화함으로써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바를 상당히 다르다”며 공정위가 한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말했다. 그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달라는 것”이라며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개혁 방향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5월 2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리점거래 불공정관행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김 위원장이 취임 이후 1년 동안 거둔 성과 가운데 눈에 띄는 영역은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등이다. 이른바 ‘4대 갑질’로 불리는 이 부분에 대해 공정위는 가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우선적으로 불공정하도급거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공정위는 김 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말 하도급거래 상습법위반사업자 명단을 공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제조 · 건설 · 용역 업종의 5000개 원사업자와 9만 5000개 하도급 업체 등 10만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도급서면실태조사를 통해 거래과정에서의 불공정 행위를 파악했다. 이밖에 올 5월 말 기준 1년간 31개 기업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 간 제재를 가한 기업의 수는 비슷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은 대림산업, 동부건설, 대우조선해양, GS건설, LG전자 등 대기업 제재 횟수가 월등히 높았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하도급법은 3번 개정됐다. 특히 하도급계약 체결 이후에 원재료 가격 이외 노무비 등 공급 원가가 변동되는 경우에도 하도급업체가 원사업자에 대해 하도급 대금을 증액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하도급업체에게 부여하는 등 ‘을’의 위치에 있는 업체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연말에는 하도급법과 함께 가맹거래법 개정안을 국회를 통과시키며 가맹점주와 하도급업체의 권익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손질했다. 가맹거래법 개정안에는 ▲가맹점주와 합의 없이 가맹본부의 일방적인 영업 지역 변경 행위 ▲법 위반 행위로 피해 가맹점주가 신고, 분쟁 조정 신청, 서면 실태조사를 포함한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가맹본부가 계약해지 등을 통해 보복하는 행위 등 두 가지의 새로운 위법 행위가 담겼다. 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를 취하고 가맹본부의 가맹점주에 대한 보복행위도 3배소 적용 대상에 추가했다.

김 위원장은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 간의 지나친 갑을 관계 해소에도 노력했다. 지난해 8월 ▲대규모유통업법 집행 체계 개선 ▲납품업체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불공정 거래 감시 강화 및 업계 자율 협력 확대 등 3대 전략, 15개 실천 과제가 담긴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발표했고 지난 연말에는 백화점, TV홈쇼핑, 대형마트, 온라인몰 분야 판매수수료율을 공개했다. 동시에 지난해 9월, 11월에 이어 올 5월까지 3차례 간담회를 열어 유통업계 상생을 위해 공정위 정책 추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3월에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산개발 및 임대업으로 등록돼 있는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은 여전히 대규모유통업법에 적용을 받지 않아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이에 김 위원장이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던 복합쇼핑몰과 아울렛도 유통법 적용대상에 포함시켜 이들 업체들도 판촉비용 등을 분담하도록 제도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요원한 상태다.

“갑질 근절 대책은 성공적”…“보여주기에 치우친 측면도”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납품업체 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고자 했던 시도는 김 위원장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황 고려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양극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중소영세상공업자의 입장에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큰 의미”라며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프랜차이즈 등 갑질 관련 규제를 잘 시행하고 있다”며 “경제 정책을 주관하는 수장 가운데 제일 눈에 띄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고 계속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경제에 방점에 두고 공정위를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공정경제가 확립돼야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면서도 “갑질과 같은 시사적인 이슈에 매달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중심으로 크게 주목되는 면에만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불공정 거래 문제는 재벌만의, 갑(甲)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불공정을 궁극적으로 고쳐나가기 위한 종합적인 플랜과 우선순위를 세워 제도와 규정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대기업·중소기업 등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무엇이 공정한 시장 경제를 해치고 잘못된 것인지 국민과 시장에 인식시킨 후 명확한 규정을 세우고 관행을 바로 잡는데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총구 숨긴 재벌 저격수? … 재벌개혁 관련 성과는 물음표

지난 1년간 갑질 대책이 공정위 정책의 한 축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대기업 개혁이었다. 이는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으로 내정됐을 때부터 예고됐다. 그는 대기업 개혁에 대한 의지를 인사청문회부터 가감없이 피력했다.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대기업 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과 총수 중심의 왜곡된 지배구조가 온전하고 내부 거래를 통한 사익 추구 방식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부덕하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우리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엄정하게 근절해 나가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대기업 개혁 전담 조직인 ‘기업집단국’을 신설했다. 기업집단국의 첫 과제는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 실태 전수조사였다. 그간 대기업 공익재단은 기업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등에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갑질 이슈처럼 대기업 관련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청문회 당시 그는 “조급하고 충격적인 조치를 시행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고,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는 “재벌개혁, 기업과 관련된 일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검찰개혁처럼 기업을 몰아치듯 개혁할 수 없다”며 “정교한 실태조사와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 서두르지 않고 일관되고 예측 가능성 있게 하겠다”고 말한 대목의 연장선상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과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이 지난 5월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체임버 라운지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던 도중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관계자가 펼침막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신 기업들의 자발적 변화를 꾸준히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며 변화를 요구했고, 지난 2월에는 현대차, SK, LG, 롯데 등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소유 지배구조 개선 사례를 발표하며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순환출자 문제가 사라지고 있고, 지배구조 역시 기업들이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에서 “현행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공정위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등 민사규율의 강화, 그리고 공정위와 지자체의 협업체계 구축 등은 국회와의 충실한 협의, 협치 과정이 없으면 한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과제”라고 공정위가 처한 현실을 토로한 바 있다.

기업들의 변화 속도가 김 위원장의 의도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공정거래법을 38년 만에 전부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을 현재 시장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손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0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을 재벌개혁을 위한 법률적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대기업에 쏠린 경제 집중력을 억제하고 불공정한 행위들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오는 9월 발의가 예상되는 공정거래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 대기업 개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정중동 행보는 기업과 재계, 시민단체 등 여러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일각에서는 너무 느슨하고 느리다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을 거칠게 옥죈다고 비판한다”면서 “공정위는 이러한 양쪽의 비판을 모두 경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쪽의 비판 속에서도 김 위원장은 취임 2년차를 맞이해 개혁의 고삐를 조일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위에 ‘경제 민주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제 민주화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법률 개정은 공정거래법·상법·자본시장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데, 각 법률 소관이 부처별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서열이 낮은 공정위에 다른 부처를 아우르는 TF가 설치된 점을 비춰 보면 김 위원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남은 임기 2년 과제는? 

김상조호의 1년은 대체로 호평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황 고려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대기업 개혁에 대해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한 적이 없다. 재벌 문제가 해소되길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애매하다거나 성과가 없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들이 문제로 인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아 불안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현행법상 대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치를 요구할만한 법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이 김 위원장의 고민”이라며 “국회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정위 본연의 역할은 효율성과 소비자후생 면에서 경제 정책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히 해 경제정책 실행 면에서 성과를 거둬야 처음에 김 위원장을 임명했던 의미가 살아나고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김상조 위원장도 전통적인 경쟁 정책에 대해 좀 더 공부하면서 본인의 시각을 깊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여주기식 대책보다는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공정경제라는 것은 프랜차이즈 업체나 대기업 1~2곳을 겨냥한다고 바로 세워질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를 떠나더라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시장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토대를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다음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바뀌지 않는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1년 동안 한 일은 과거 공정거래위원장이 하지 못했던 일이다.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일”이라며 “불공정을 뿌리뽑고 경제 검찰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외부 인력 수혈 등 공정위 규모 확충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개혁이 국가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교수는 “대기업의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기업의 체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국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자 시절 주주가치 중심의 재벌 개혁을 주장했던 김 위원장의 생각이 그대로 적용되면 우량기업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만 이득을 보는 국부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기업의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 교수는 이어 “기업 소유 구조, 불공정 거래를 해소시키면서도 기업들이 성장을 해야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라면서 “산업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는 방향으로 양극화, 경제력 집중, 불공정 거래 등의 문제와 기업 경쟁력 강화 문제를 조화시킬 방안을 김 위원장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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