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권 발생 통지 무시, 개인 권리 지켜주지 못해… 황당한 변명도

토지보상법 제91조, 공익사업 취득 토지의 폐지 등에 따른 환매권 발생 규정 제시

A씨 원소유 토지, 기존 도로사업에서 택지조성사업 지구로 변경… 환매권 발생 명백

한국도로공사, 환매권 발생 통지 의무 있었음에도 변명 일관

환매권 발생을 지체 없이 알렸어야 함에도 이를 간과해 막대한 손해를 끼칠 뻔 했던 한국도로공사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은 한국도로공사 김천 사옥. (사진=한국도로공사)
한민철 기자

토지보상법에 따라 토지의 원소유자에 환매권 발생을 지체 없이 알렸어야 함에도 이를 간과해 막대한 손해를 끼칠 뻔했던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의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 제91조에는 국가기관 등이 공익사업을 위해 취득한 토지가 사업의 폐지‧변경으로 인해 필요가 없어졌을 경우, 해당 토지의 환매권과 관련된 규정이 제시돼 있다.

구체적으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의 취득일(수용개시일)로부터 10년 이내에 해당 공익사업의 폐지‧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기존에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가 없게 됐다면, 취득일 당시의 토지소유자 등은 그 토지가 필요 없게 된 시점에서 1년 또는 취득일로부터 10년 이내에 토지에 대해 지급받은 보상금 상당액을 사업시행자에 지급하고, 그 토지 등을 매수할 수 있는 환매권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개인인 K씨가 소유한 토지가 있는데 국가에서 해당 토지를 취득해 군부대를 설치하는 사례다.

여기서 국가와 토지 소유주 K씨 간 협의가 원만히 이뤄진다면, 토지보상법에 따라 군부대 설치 사업의 시행업무를 맡은 기관은 K씨에 토지 협의취득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후 해당 토지를 국가 명의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친 뒤, 군부대 설치 사업이 진행된다.

그런데 만약 이로부터 10년 내에 국가에서 해당 토지에 군부대가 아닌 주택 조성을 결정하는 기존 공익사업의 폐지‧변경의 사유가 생긴다면, 이는 기존에 군부대 조성을 위한 목적으로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다면 K씨나 그의 포괄적 승계인(또는 상속인)들은 기존에 K씨가 군부대 설치 사업 시행사로부터 지급받은 보상금 상당의 금액을 되돌려 주고, 해당 토지를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환매권을 가지게 된다.

이 규정은 공익적 취지로 국가기관에 토지를 사실상 헌납한 원소유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히 국가가 공익사업을 위해 사유지를 취득한 후 의도적으로 아파트나 상업시설 조성, 기존 공익사업의 폐지‧변경을 통해 소위 땅 장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든 사례에서 기존 공익사업의 폐지‧변경으로 인해 토지의 원소유주인 K씨에 우선 환매권이 없다는 가정을 했을 때, 국가기관이 K씨의 토지를 취득해 2년 만에 군부대 설치 사업을 취소한 뒤 주택 조성 사업으로 인해 해당 토지를 매매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국가기관이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를 양보한 K씨에 대한 기만이자 공평의 원칙을 깨뜨리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이 공익사업을 위해 개인으로부터 취득한 토지를 주택 조성 사업으로 인해 매매하며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되는 황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만큼 토지보상법 따라 토지의 원소유주에 환매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앞서 언급한 동법 제91조에서 제시된 토지의 원소유주에 대한 환매권이 발생했을 때 사업시행자는 지체 없이 해당 사실을 환매권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기존 공익사업의 목적에 필요가 없어진 토지라면, 사업시행자는 원소유주에게 우선적으로 그 사실을 알려 환매할 것인지 여부를 최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토지보상법 제92조에도 법적인 의무로서 명시돼 있고, 앞서 언급한 토지의 원소유자 보호 및 공평의 원칙 존중 그리고 환매권 행사의 실효성 보장 등의 의미가 있다.

다만 환매권 발생 사유까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의 취득일로부터 10년 이내라는 긴 기간이 주어지는 만큼, 사업시행자들이 이를 간과한 채 토지의 원소유주에게 환매권 발생에 대한 통지 등을 하지 않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이 지난 2000년 11월 14일 선고한 판례(99다45864)에는 이로 인한 결과에 따른 책임 여부에 대해 판시하고 있다.

만약 사업시행자들의 해태로 원소유자가 환매권 행사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 그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면, 환매권자는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두고 사업시행자에 불법행위를 물을 수 있다는 규정이다.

당연히 사업시행자들은 환매권자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토지보상법에 명시된 법적 의무를 저버린 결과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법원의 판결을 통해 밝혀진 한국도로공사의 사례가 이와 같았다. 한국도로공사는 공익사업 목적으로 취득한 토지가 사업의 폐지‧변경으로 인해 필요가 없어졌고, 토지의 원소유자에게 환매권 발생에 대한 통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원소유자가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넘길 때까지 한국도로공사는 이를 알리지 않았고, 결국 이런 한국도로공사의 위법 행위로 국가에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를 헌납한 개인은 막대한 손해를 입는 상황에 갈 수밖에 없었다.

환매권 발생 조건에 맞아떨어졌던 정황들

A씨는 서울시 송파구 일대 토지 약 300㎡를 소유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998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이곳 일대의 도로확장 사업을 추진했고, A씨의 해당 소유지도 이 도로사업 구역에 편입됐다.

이 도로사업의 시행업무는 한국도로공사가 위탁을 받았고, A씨는 다음해인 1999년 초 협의 끝에 도로공사로부터 보상금을 받는 대신 공공용지 협의취득에 따라 해당 300㎡의 토지를 대한민국 명의로 하는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이로부터 약 4년 뒤인 지난 2002년 말 건설교통부는 서울시 송파구 일원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고시했고, 여기에는 A씨가 원래 소유하고 있던 300㎡의 토지 역시 포함된 상태였다.

서울시는 2003년 말 이 택지개발사업의 개발계획변경 및 실시계획을 승인 및 고시했고, 해당 300㎡의 토지는 공동주택용지 부지로 편입됐다.

이후인 지난 2007년 말 서울시는 택지개발사업 구역의 면적을 다시 변경했는데, 이로 인해 이 300㎡의 토지는 둘로 쪼개져 약 250㎡가 택지개발사업 구역에 포함됐다.

당시 이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자로 지정됐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지난 2004년 이 250㎡의 토지에 대한 택지조성 공사에 착수했고, 이후 현재는 경관녹지로 조성된 상태다.

비록 300㎡ 전부가 택지조성사업에 편입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토지가 기존의 도로사업 구역에서 변경된 것은 사실이었다.

2010년 도로구역 해제 결정과 SH공사의 토지매수로 원소유자 A씨에게 환매권이 발생한 것은 명백했다. (사진=연합)
2006년경부터 해당 토지 내에서 기존에 설치된 도로의 포장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2008년 말에는 해당 부체도로가 완전히 철거됐다.

이에 해당 토지는 지난 2010년 도로구역 해제 결정과 함께 국유재산 용도 폐지로 이어졌다. 곧바로 SH공사는 국가로부터 이 250㎡의 토지를 매수했고, 공공용지의 협의 취득을 사유로 한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다.

앞서 언급한 토지보상법 규정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이 과정에서 당연히 A씨에게 환매권이 발생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우선 A씨가 원래 소유하고 있던 300㎡의 토지가 건설교통부장관이 고시한 도로확장 사업으로 인한 사업구역에 포함됐다. 이어 한국도로공사라는 공공기관이자 이 도로사업의 시행자와 협의를 통해 토지를 취득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는 토지보상법 제91조에서 명시하는 “국가기관 등이 공익사업을 위해 취득한 토지”가 분명했다.

또 이 토지가 A씨를 떠나 국가 명의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친 뒤, 기존의 도로사업의 목적이 바뀌어 택지조성사업 지구로 편입돼 다시 소유권이 변경됐다면 이는 분명 동법 동조항에서 명시하는 “공익사업의 폐지‧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기존에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가 없게 된 상황”이었다.

물론 도로가 설치된 후 해당 토지에 대해 다른 공익사업인 택지조성이 시행되는 경우, 택지조성사업 실시계획 승인 그 자체만으로는 토지의 원소유자에 환매권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 2014년 9월 4일 선고한 판례(2014다204970)에 따르면, 택지조성사업 실시계획 승인 이외에도 최초 협의 취득된 목적인 도로사업에 따른 사용이 중단됨으로써 말 그대로 기존에 취득한 토지가 필요가 없게 된다면 환매권이 발생할 수 있다.

A씨가 원래 소유하고 있던 300㎡의 토지 중 SH공사가 최종적으로 매수한 250㎡의 토지는 기존 도로사업과는 별개의 사업인 택지개발사업 목적에 속했다.

지난 2006년 도로 포장이 철거된 시점부터 당초 사업목적에 따른 용도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음이 명백했다.

다시 말해 토지보상법에 따라 토지의 원소유주인 A씨에 환매권이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황당한 변명으로 일관한 한국도로공사

A씨는 한국도로공사로부터 해당 토지에 대한 환매권 발생에 대해 통지 등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A씨는 이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뒤늦게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법원은 최근 판결을 통해 A씨의 해당 토지에서 환매권이 발생한 점 그리고 한국도로공사는 이런 사실을 A씨에 지체 없이 통지 또는 공지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점, 이 토지가 기존 목적에서 필요가 없어졌고 환매권이 발생한 시점을 지난 2006년이라는 부분도 인정했다.

토지보상법 제91조 중 “취득일 당시의 토지소유자 등은 그 토지가 필요 없게 된 시점에서 1년 또는 취득일로부터 10년 이내”라는 규정에 따라, 2006년에서 1년 이내인 ‘2007년’ 또는 토지 취득시점인 1999년 초에서 10년인 ‘2009년 초’까지가 A씨가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기간은 만료된 상황이었고, 대법원 판례(2010다30782)에 따라 위 두 가지의 기간 중 더 늦게 도래한 날인 2009년 초부터 환매권 상실에 따른 손해를 계산, 환매권 통지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해태한 책임이 있던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이에 대한 청구를 주장할 수 있었다.

이에 한국도로공사 측은 SH공사 측이 해당 토지에 설치돼 있던 도로를 자신들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철거했기 때문에, 도로로써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을지라도 A씨에 대한 환매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강래(왼쪽) 한국도로공사 사장. (사진=연합)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측 주장과는 다르게 SH공사는 지난 2003년과 2007년 두 번의 실시계획인가 등을 통해 해당 토지에 설치된 도로의 철거에 관한 허가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한국도로공사 측의 이 주장은 허위에 불과했다.

또 이 사건 재판부는 해당 토지가 택지개발사업에 포함돼 도로 철거가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한국도로공사 측이 모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토지의 택지개발사업 구역 포함을 전제로 한국도로공사와 SH공사 간 그에 관한 보상협의까지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 설령 SH공사가 도로 철거에 필요한 허가를 못 받았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해 A씨가 해당 토지에 가지는 환매권 발생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환매권 발생에 따라 한국도로공사는 A씨에 ‘지체 없이’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A씨는 뒤늦게 이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도로공사의 환매권 발생사실에 대한 통지의무 해태로 자신이 환매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음을 인식할 수조차 없었다.

한국도로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은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상실한 원소유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환매권 발생에 따른 원소유자에 대한 지체 없는 통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례는 한국도로공사의 토지보상법에 대한 철저하지 못한 이해 그리고 개인의 법률상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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