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 대한통운의 소통부족(?)에 피해 본 지입차 노동자들

계약 과정에서 차량 매수해 소유권 가지게 된 차주들

차량 소유권 변경에 계약 내용 재차 명확히 할 의무 있었던 CJ대한통운

사실상 소통부족 및 방치로 비롯된 오해… 사업에 차질 겪게 된 지입차주들

CJ대한통운이 사실상의 소통부족으로 수탁자들의 향후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시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CJ대한통운이 계약상 변경‧수정 내용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사실상의 묵인과 방치로 화물차주들이 독립된 사업에 큰 차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수사업용 화물차의 대부분은 차주와 운수회사 간 위수탁계약을 통해 이뤄진 지입(持入)차량에 해당한다.

지입차란 쉽게 말해 화물 운수업을 희망하는 이가 화물차량을 직접 분양받거나 사들인다는 의미다.

화물차를 분양 또는 매입, 즉 차를 지입한 차주는 운수회사와의 위수탁계약을 통해 회사 측에 차량의 운영 및 관리권을 위탁하게 된다.

이 차를 수탁한 운수회사는 해당 차량을 자사의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함과 동시에, 차량에 영업용 번호를 부여하게 된다.

이어 운수회사는 지입차주에 화물차 운수업에 대한 일감을 제공하게 되며, 지입차주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로서 화물차 운수업을 영위하게 된다.

또 지입차주는 차량의 유지 및 관리 의무가 있으며 이에 따르는 수리, 주유, 보험료 등의 비용도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물론 지입차주는 운수회사에 매월 차량의 운영 및 관리비 명목의 지입료 그리고 계약과 동시에 보증금을 납부하게 된다.

반대로 운수회사는 지입차주에게 계약상 화물차 운송에 대한 일감 및 급여를 제공하며, 차량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의 신고 처리를 돕는다.

실질적으로 지입차의 소유권은 운수회사가 아닌 지입차주에게 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위수탁계약상 해당 화물차는 운수회사의 명의로 사업자 등록이 돼 있는 만큼 계약이 해지되기 전까지 차주는 차량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이를 담보로 금전적 거래를 할 수 없다.

지입차주와 운수회사 간 위수탁계약서의 각 조항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40조 및 관련 규정에 따른 표준 계약 내용을 반영하게 된다.

그만큼 어느 지입차주와 운수회사라고 할지라도 그 위수탁계약에 있어 표준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된다.

국내 대형 운수회사인 CJ대한통운(이하 대한통운)이 지난 1999년에서 2000년경 A씨와 B씨, C씨, D씨와 맺은 계약의 내용 역시 위와 같은 화물차 위수탁계약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A씨는 지난 2000년 대한통운과 사이의 화물차 운송업에 대한 위수탁계약을 체결해 물류 운송사업을 해나갔고, 지난 2013년에는 화물차를 새로운 차량으로 바꿔 재계약을 마쳤다.

또 B씨와 C씨, D씨 역시 지난 1999년 대한통운과 화물차 운송업에 대한 위수탁계약을 체결해 관련 사업을 영위해 갔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네 사람이 대한통운과 당시 맺었던 위수탁계약 내용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상 표준 위수탁계약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일반적 계약에 속했다.

계약상 수탁자인 네 사람은 대한통운 측에 대해 보증금 및 매월 관리비 명목의 사용료(지입료)를 납부할 의무가 있었다. 또 해당 화물차량의 관리 및 보험료 납부 책임 그리고 임의 처리 금지의 조항을 지켜야 했다.

무엇보다 네 사람은 대한통운으로부터 주어진 화물운송 업무를 신속∙안전∙정확하게 이행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의뢰를 거절할 수 없었다.

대한통운 측 역시 위탁자의 지위로 화물차에 자사 명의의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차량에 따르는 각종 세금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단지 이들의 화물차 위수탁계약이 다른 보통의 것들과 차이가 있었다면, 수탁자가 이용한 화물차가 이들 네 사람의 지입차가 아닌 대한통운 측 소유 차량이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계약상으로도 이들의 위수탁계약이 종료될 경우 네 사람은 그동안 몰고 다니던 화물차를 즉시 대한통운 측에 반납해야 했다.

특히 대한통운 측은 차량 소유권에 대해 계약 시점에 소유권은 위탁자인 자사에 있지만, 수탁자인 네 사람과 상호 협의를 한다면 해당 시점에 차량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조건을 계약 내용에 담았다.

이후인 지난 2015년 11월 A씨와 C씨, D씨는 대한통운과의 위수탁계약을 통해 그동안 이용해 왔던 각자의 화물차에 대한 시세 금액을 대한통운 측에 지급해 해당 차량을 매수했다.

이어 지난해 6월 이들과 대한통운 간 위수탁계약은 양측의 합의로 중도 해지돼 종료 됐다. 본래 정해졌던 위수탁계약의 기간은 같은 해 9월까지였다.

대한통운의 ‘묵인 및 방치’(?)에 권리 인정받지 못한 지입차주들

사실 지난 2015년 11월 A씨와 C씨, D씨가 대한통운 측으로부터 각자가 이용하던 화물차를 매수한 시점부터 사실상 해당 차량의 소유권은 이들 세 명에게 있었다.

다시 말해 위수탁계약에 제시된 조건상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상호 협의를 통해 차량의 소유권이 수탁자인 A씨 등에 이전된 시점이 이때부터였다는 의미였다.

물론 A씨 등이 각자의 화물차를 매수한 만큼 위수탁계약 해지 후에도 해당 차량을 대한통운에 반환할 의무 역시 없어진 상태였다.

더욱 주목해 볼 부분은 A씨와 C씨, D씨가 각자의 화물차를 매수해 실질적 소유권이 이들에게 귀속됨으로써, 당시 이들은 지입차주로서의 자격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입차 형식의 위수탁계약은 차주가 분양 또는 매입을 통해 화물차의 소유권을 가지지만, 운수회사에 차량의 사업자 명의와 운영 및 관리권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기존까지만 하더라도 화물차의 소유권마저도 대한통운 측에 있었지만, A씨 등 세 사람이 각자의 차량을 매수해 실질적 소유권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들의 위수탁계약이 지입차 형식으로 전환된 것은 명백했다.

설령 이들이 화물차를 매수했을 때 기존의 위수탁계약 기간 중에 이뤄져 계약이 갱신이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차량의 소유자가 된 만큼 향후의 갱신될 위수탁계약의 내용은 운수회사인 대한통운 측과의 협의를 통해 지입차 방식으로 수정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화물차를 매수한 시점은 위수탁계약이 갱신돼 자동으로 재계약이 이뤄진 바로 다음 달이었다.

당시 계약 종료 및 다음 재계약까지 무려 2년이나 남았고 양측이 향후 차량의 소유권을 두고 이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만큼, 계약서 작성의 주체이자 ‘갑’의 위치의 운수회사인 대한통운 측은 A씨 등에 대해 지입차 형식의 위수탁관리로 계약 내용을 변경해 차량의 실질적 소유권이 A씨 등에 있음을 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A씨 등 화물차주들은 자신들과 대한통운 사이의 위수탁계약이 지입차 형식을 전제로 한 것으로 자신들은 계약상 지입차주의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씨 등은 대한통운 측과의 위수탁계약이 중도에 해지돼 종료된 뒤, 자신들이 지입한 화물차를 통해 독립된 화물운송 사업을 경영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들에게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부칙 및 화물자동차에 대한 운송사업 허가업무 처리지침에 따라 대한통운과의 위수탁계약이 해지됐다는 서류가 필요했다.

화물자동차에 대한 운송사업 허가업무 처리지침 제8조에서는 위·수탁차주가 운수사업자와 위·수탁계약을 해지하고 화물운송 사업의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허가신청서 외에 ‘위수탁계약 해지서류’ 등을 첨부해 관할관청에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주가 화물운송 사업을 영위하면서 사업자 등록을 할 예정인 차량이 기존 운수회사와의 소유권이 정리된 동시에 더 이상의 위탁 업무 역시 끝났다는 점을 증명해주는 서류가 있어야만, 해당 사업의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에 A씨 등은 대한통운 측에 위수탁계약 해지서류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한통운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등과 협의해 위수탁계약이 해지돼 종료된 것은 맞지만, 해당 화물차를 지입할 것을 전제로 한 위수탁계약이 종료됐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사실 기존 위수탁계약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A씨 등이 처음부터 차량을 지입할 것을 전제로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들이 화물차를 지입할 것으로 전제로 한 위수탁계약이 종료됐다는 주장은 계약상 맞지 않았고, A씨 등이 대한통운을 상대로 이와 관련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결과 차량지입제를 전제로 위수탁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 A씨 등이 차량 지입을 전제로 위수탁계약을 체결한다는 명시적 의사는 없었지만, 계약 기간 중 화물차를 매입해 사실상의 소유권을 가지게 됐고 대한통운 측이 이를 인지한 채 이들의 차량에 자사의 사업자 등록을 유지한 채 일감을 제공한 것이라면 A씨 등이 지입차주의 지위에 있다는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

기존 위수탁계약상 차량의 소유권이 위탁자인 대한통운에 있다거나 계약 해지 뒤 차량을 위탁자에 반납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한 변경∙수정의 책임은 차량의 사업상 명의자이자 계약서 작성의 주체였던 대한통운에 있었다.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진=연합,CJ대한통운)
그 과정에서 해당 위수탁계약이 차량 지입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며, 계약 기간 중 수탁자의 요구와 위탁자의 동의로 수탁자가 지입차주의 자격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점 역시 명확하게 밝혀야 할 책임 역시 대한통운에 있었다.

무엇보다 A씨 등이 원한 것은 위수탁계약 해지서류였고 차량 지입을 전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견이 있었다면, 계약 기간 중 차량을 지입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었던 만큼 대한통운 측 역시 A씨 등과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입장을 좁힌 채 위·수탁계약 해지서류를 전달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대한통운 측은 이런 계약상 변동 내용을 제때 반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수탁자와 제대로 된 협의를 거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요소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계약 해지 후 따로 화물운송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A씨 등의 계획은 ‘갑’의 위치의 운수회사인 대한통운 측의 사실상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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