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사고, 손해 기여(?)… 진단서는 봤나

화물차 운전사 A씨, 도로 가드레일 충돌 및 2차 사고로 큰 상해 입어

A씨 차량 보험사, 메리츠화재 상대로 구상금 분쟁 심의위원회 심의 청구

메리츠화재 측에 불리했던 과실비율, 억울하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속도로상에서의 교통사고는 2차 사고의 위험성이 크고, 향후 보험사들이 피보험자의 1차 및 2차 사고에서의 손해 정도를 가늠하는데 애를 먹을 수 있다. *사진은 기사 속 사연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자동차 2차 사고로 인해 발생한 운전자의 손해 기여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메리츠화재해상보험(대표 김용범)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2차 사고의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다.

때문에 고속도로 사고로 인해 운전자가 상해를 입거나 차량이 파손돼 향후 보험금을 청구한다면, 보험사들이 1차 사고로 입은 손해와 2차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한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피보험자들과 이견이 없는 액수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된 보험사들의 고충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다. 2차 사고까지 겪은 자동차 보험자가 해당 사고로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그 상해의 기여도가 1차가 컸는지 아니면 2차가 더 컸는지, 1차와 2차 두 차례 모두 기여했다면 그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복잡한 셈법을 따져야만 한다.

그만큼 이들 보험사들은 향후 피보험자들과 2차 사고로 인한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분쟁을 빚을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사고 당시의 여러 정황과 사고 후 운전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단받은 내용 등을 제대로 분석한다면 보험사들도 피보험자가 과연 어느 사고에서 더 큰 손해가 발생했는지 파악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런 과정을 철저히 챙기지 못해 상대 보험사 또는 피보험자와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사건은 지난 2016년 가을 부산방향으로 향하는 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화물차 운전자 A씨는 해당 고속도로의 편도 3차로를 따라 진행하던 중 차량 타이어가 펑크가 나면서 도로 우측에 설치돼 있던 가드레일을 충격했다.

A씨 차량은 가드레일과 부딪힌 직후 좌측으로 회전해 2차로와 3차로 사이에서 원래 진행방향과 반대로 정차했다.

A씨는 사고 후 곧바로 우측 갓길에 몸을 피신했다. 다만 그는 화물차를 고속도로상에 그대로 놔둔다면 2차 사고가 우려된다고 판단했고, 다시 차량에 탑승해 차를 움직여 보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안타깝게도 이때 A씨 차량을 향해 다가오던 B씨의 대형 화물차가 충돌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B씨의 차량은 A씨 차량의 운전석 부분을 그대로 충격했고, A씨는 큰 상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A씨의 차량과 자동차종합보험 계약에 체결돼 있던 보험사는 당시 사고로 인해 발생한 그의 병원 치료비 등 명목의 보험금으로 500여만원을 지급했다.

당시 사고를 유발한 쪽은 A씨였지만, A씨가 입은 손해는 B씨의 차량이 A씨 차량과 충돌해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사진은 기사 속 사연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
이후 A씨 측 보험사는 B씨 측 차량의 자동차종합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던 보험사인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하 메리츠화재)을 상대로 구상금 분쟁 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청구했고, 위원회는 지난해 8월 A씨와 B씨 차량의 과실비율을 40대 60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메리츠화재가 A씨 측 보험사에 300여만원의 구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메리츠화재 측은 위원회의 결론에 따라 A씨 측 보험사에 300여만원을 지급했지만, B씨의 과실비율이 더 높다는 이번 결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이번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면, B씨 차량이 과속을 했다거나 차선을 위반 또는 전방주시 의무를 태만한 것이 아닌 A씨 차량이 고속도로상에 2개의 차로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이 A씨 차량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할지라도, B씨는 자신이 가던 길을 향후 아무런 문제없이 운전하고 있었고 A씨 차량으로 인해 어쩌면 억울한 사고를 겪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또 B씨는 당시 사고에 대한 고의가 없었고 A씨가 사고로 심각한 상해를 입은 부분에 있어서도 오로지 B씨의 차량이 운전석 부분을 충돌한 것만이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었다.

당연히 메리츠화재 측은 A씨가 당시 사고로 입은 상해로 인해 지급받은 치료비 등의 보험금 중 절반이 넘는 300여만원을 지급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 충분했다.

메리츠화재 측은 법원에 정식으로 A씨 측 보험사에 300여만원의 구상금을 지급한 것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A씨가 당시 B씨 차량과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우측 가드레일을 충격한 1차 사고에서 강한 충격을 받아 상해를 입었고, B씨 측이 해당 1차 사고로 인해 발생한 손해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A씨에 해당하는 손해액에서 1차 사고로 인해 빚어진 상해의 기여도가 반영돼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메리츠화재 측은 A씨의 당시 손해에 대해 A씨가 우측 가드레일을 충격한 1차 사고 그리고 B씨의 차량과 충돌한 2차 사고의 기여도가 50대 50이라고 지적했다.

구상금 분쟁 심위위원회에서 A씨와 B씨의 과실비율에 대해 40대 60으로 정한만큼, 자사 메리츠화재는 B씨 차량의 책임비율 등으로 산정된 170여만원밖에 구상금으로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메리츠화재 측의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선 법원은 과연 A씨가 당시 1차 사고로 인해 상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사실 1차 사고로 A씨 차량의 파손 상태는 크지 않았고 그는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B씨의 차량이 A씨 차량의 운전석 부분을 그대로 충격하면서 당연히 A씨가 당시 1차 및 2차 사고로 입게 될 상해가 2차 사고에 전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대형 화물차인 B씨 차량이 A씨 화물차량의 좌측 앞부분을 충격하면서 운전자인 A씨에 충돌 당시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받았을 것”이라며 “두 사람 차량의 파손 부위 및 정도에 비춰 2차 사고 당시 충격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메리츠화재 측 주장이 오해라는 점은 A씨가 병원 치료를 하면서 받은 진단서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A씨는 당시 사고로 인해 병원으로부터 우측 다리의 골절, 좌측 발목 및 내측 삼각인대 손상, 종아리 타박상 및 피부 괴사, 다발성 타박상 등의 진단을 받았다.

메리츠화재는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2차 교통사고에 있어 사고별 피보험자의 손해 기여도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메리츠타워. (사진=한민철 기자)
재판부는 이와 같은 상해가 보통 차량이 도로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충격해 운전자가 입는 것이 아닌, 차량 외부에서 무언가 강력한 충격이 생겨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봤을 때 당시 A씨가 입은 상해는 1차 사고가 아닌 B씨의 차량이 충돌하며 발생한 2차 사고에 의해 발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1차 사고로 인해 빚어진 A씨 상해의 기여도가 반영돼 자사의 배상 책임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메리츠화재 측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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