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 15분경 목포시 옥암동 한 대형마트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2014년식 BMW 520d 승용차 엔진룸에 불이 났다. (사진=연합뉴스)
“부품보다 시스템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

국내에서 운행 중인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차량에서 최근 잇달아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BMW 차량 소유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화재 원인에 대해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신속한 조사를 통해 화재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BMW코리아 측은 520d 모델을 비롯한 BMW 차량의 화재 원인에 대해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 쿨러에서 냉각수 누수가 발생했다"며 자체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EGR은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디젤 차량에 장착되는 환경장치다. 이 장치가 과열돼 불이 났다는 얘기다.

화재 사고가 난 BMW 차량에 장착된 EGR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가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BMW 측이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한 책임을 교묘하게 부품업체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일부 자동차 전문가들은 BMW의 자동차 설계 프로그램이 잘못된 탓에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화재 사고가 난 BMW 차량에 장착된 것과 똑같은 EGR 부품이 유럽에서 판매 중인 BMW 차량에도 들어가 있다”며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잇달아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은 국내 판매 차량에 들어간 프로그램의 설계가 잘못돼 EGR 부품이 과열 현상을 보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BMW 측이 애꿎은 부품업체를 탓하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완성차업체가 요구하는 기준대로 부품을 만들어 공급할 뿐이기 때문이다. 차량의 시스템 설계와 부품의 조립, 나아가 차량의 품질 문제는 궁극적으로 완성차업체가 책임을 져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김필수 교수는 "BMW 측이 화재의 원인을 EGR 부품으로만 돌리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부품 탓을 하면 부품회사만 망한다”며 "이번 화재 사고는 BMW의 자동차 시스템 설계 부문에서 잘못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화재 사고가 난 BMW 차량에 EGR 모듈을 납품하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는 K사로 알려졌다. K사는 최근 국내 대기업과 합작해 엔진용 알루미늄 배기가스 재순환 냉각기를 만들어내는 등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를 보인 덕분에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원은 BMW 화재 원인을 밝히려면 EGR 모듈 부품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부품을 탓할 것이 아니라 BMW 본사가 화재 사건에 대해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BMW 차량의 잇따른 화재 원인을 EGR 모듈 부품의 문제로 보고 있는데, 모듈 부품은 하나의 덩어리와 같아서 여러 개의 작은 부품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화재가 모듈 안에 들어간 개별 부품의 문제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또 "자동차 부품은 공용화돼 있기에 BMW의 EGR 모듈이 대다수 화재가 발생한 520d 모델에만 쓰인 건지를 알아봐야 한다"며 “모듈 안에 구성된 개별 부품의 문제라면 다른 차종에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쇄 화재 사고로 BMW는 치명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독일 명차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상황이다.

한 BMW 소유주는 포털사이트 카페에 글을 올려 "그간 쌓아온 BMW의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BMW코리아의 안이한 대응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며 BMW 본사에도 정말 실망했다"고 말했다.

BMW 화재로 인한 첫 집단소송이 제기된 후 인터넷상에는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카페가 개설되고 있다. 법무법인 인강 소속의 성승환 변호사가 개설한 네이버 'BMW 화재 피해자 집단소송' 카페에는 2500여명 이상이 몰렸다. 해당 카페의 게시판에는 “집단소송에 참여하겠다”는 글로 가득했다.

한경석 기자

<박스> 하종선 변호사 “BMW, 결함 은폐 의혹 있어”

지난 7월 30일 BMW 520d 차량 소유자 네 명이 BMW코리아와 딜러사인 도이치모터스로부터 1인당 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들의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BMW가 520d 차량의 결함을 수년 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고 차를 팔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BMW 차주 4명의 집단소송을 맡은 하종선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BMW 측이 수년간 결함을 알고도 은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입장이다. 하 변호사는 “BMW 측이 EGR 부품의 문제를 인식했으면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며 “2017년 신형 BMW 모델의 설계가 바뀐 것은 BMW 측이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소송인들의 입장도 전했다. 그는 “소송인 4명이 원하는 바는 3가지다. 화재 때문에 사용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배상, 중고차 값이 하락하는 것에 대한 손해 배상, 차량 결함을 알면서도 차주를 속인 것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 등”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는 결함 은폐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하 변호사는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서 화재 원인을 분명히 찾아내면 소송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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