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주유소 업자들, 정유사 혜택은 다 받고 계약위반까지…

유류 전량판매 계약, 과거 불공정 계약으로 정치권 질타

정유사들, 전량판매 문제점 인식해 개선 노력

전량공급 계약에 사인한 일부 주유소, 정유사 혜택은 다 받고 유류는 타사 싼 제품 공급받아

정유사 계약위반 주장하고 나서면, ‘불공정 전량판매’ 무효로 맞서는 일부 주유소

정유사들이 일부 주유소들의 전량판매 계약에 대한 황당한 행태에 한숨짓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과거 공정거래위원회와 정치권들이 공론화 시키며 불공정 계약 논란을 빚었던 정유사와 주유소 간 석유 전량판매 문제가 여전히 일부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유사들은 일부 주유소들이 전량판매 계약을 해놓고 향후 이에 대해 불공정 계약이라며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등의 행태로 법적분쟁까지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2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대형 정유사를 대상으로 주유소와의 유류 전량판매 계약에 대한 불공정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정유사가 주유소에 유류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제품 전량을 자사로부터 공급받도록 의무화하고, 만약 다른 회사 측 유류를 혼합해 판매했을 경우 계약해지 및 손해배상 등 제재를 가하는 등 업계에서는 갑질계약 또는 노예계약이라고 표현하며 꾸준히 문제시돼 왔다.

이에 공정위는 정유사의 이와 같은 사실상의 갑질행위를 바로 잡으며, 각 주유소마다 유류 혼합판매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개선에 나섰다.

공정위가 이와 관련된 문제에 운을 띄우자 다음해인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사들이 주유소들과 불공정 계약을 맺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대형 정유사들이 주유소들과 계약 기간을 장기로 유지하고 자사 석유의 전량 구매를 강요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에도 업계에서는 국내 석유시장의 투명성과 유류 가격 안정 등을 위해 대형 정유사들의 전량구매 공급 계약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유사 역시 주유소와 공급 계약을 맺으며 전량 구매를 강요하지 않고, 보다 주유소 측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약관 내용을 개선해 나갔다.

그러자 현재 일부 정유사들 사이에서는 주유소 측의 계약 위반과 전량판매 자체를 불공정 행위로 오해하는 일이 잦아지며 골치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 중순 국내 대형 정유사 A사와 주유소 운영사인 B사가 체결한 석유제품 공급 계약의 사례가 이와 같았다.

당시 두 회사가 맺은 계약 내용에는 ‘구매자(B사)는 계약기간 중 주유소의 매 월간 판매량의 ( )% 또는 매월 (전량) 드럼 이상을 공급자(A사)로부터 구매해야 한다. 구매자가 공급자의 제품 이외 다른 사업자의 제품을 판매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제품을 공급자의 제품과 혼합해 판매할 경우, 공급자는 다른 사업자의 제품 또는 혼합해 판매한 제품의 품질 하자, 표시상의 하자로 인한 구매자 또는 제3자의 손해에 대해 어떤 책임도 부담하지 않으며, 구매자는 이로 인해 제3자나 공급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공급자를 면책시켜야 한다’라고 적시돼 있었다.

이를 통해 마치 A사가 B사에 유류 전량구매를 강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A사는 B사가 공급받을 석유제품에 대해 ‘주유소의 매 월간 판매량의 ( )%’나 ‘매월 (전량) 드럼 이상’ 중 선택해 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괄호의 ‘전량’이라는 단어 역시 B사 측이 직접 기입했다.

B사가 전량의 제품을 받겠다고 계약하자 A사는 B사 주유소에 A사 간판을 달고 해당 주유소에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주유소가 제품의 일부 즉 전량을 받지 않겠다고 계약하면 정유사 측은 혜택까지 고려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만약 주유소가 전량을 받는다고 하면 주유소의 정유사 본사에서 직접 도색과 초기 유지비용, 품질검사, 판매활성화 프로그램 등의 마케팅 지원까지 나서게 된다. 물론 주유소에서 판매에 필수적인 보너스카드 포인트 역시 정유사에서 제공하게 된다.

B사 역시 A사로부터 이와 같은 혜택 일부를 받았음에도 계약 기간 중 A사의 제품이 아닌 타사의 제품을 구입해 왔다.

특히 B사는 A사의 보너스카드 포인트는 초과로 적립시킬 정도로 주유소 운영에 A사가 제공한 주요 혜택을 활용했다.

결국 A사는 B사가 해당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부정매출을 올렸다며 B사를 상대로 법원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승소했다.

그런데 B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최근 진행된 두 회사의 추가 소송 과정에서 B사는 A사와 맺었던 석유제품 공급 계약 내용 자체가 ‘불공정 약관’에 해당돼 무효라는 주장을 펼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A사가 전량 구매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계약의 공정성이 상실됐고, 과거 공정위와 정치권에서 제기한 불공정한 전량 구매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이 부분 B사 측 주장에 대해서도 소송 과정에서 A사의 위법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제품 피공급사의 부정매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가, 얼떨결에 불공정 약관을 작성한 악덕 정유사 취급을 받은 A사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A사 측은 과거 정치권과 공정위에서 전량 판매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업계에 심어준 뒤, 일부 주유소들의 ‘을질’에 더욱 심해졌다고 호소했다.

주유소들이 정유사로부터 전량 제품을 공급받겠다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면,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해당 주유소가 대기업 정유사 브랜드 간판을 달며 업체 및 제품 신뢰도에도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A사 측 관계자는 “편의점의 경우 가맹점비를 내는데 정유사들은 주유소가 가맹점비라는 것을 받지 않는다”라며 “전량을 받겠다고 해서 주유소에 저희 회사 간판도 달아주고 도색부터 보너스카드 포인트까지 제공해도, 어느 순간 보면 저희 제품은 받지 않고 타사 제품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주유소가 많아졌다”라고 주장했다.

정유사 측은 과거 공정위로부터 전량 판매에 대한 불공정 계약 문제가 제기되면서 계약조건을 개선해, 주유소 운영자가 혼합판매를 원할 경우 얼마든지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을 계약서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유사 측이 주유소에 계약위반 등을 따지고 들어오면, 전량판매의 불공정성에 따라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주유소 업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사진=연합)
무엇보다 전량판매의 경우 반드시 주유소 측 계약자의 자필로 ‘전량’이라고 기재하며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일부 주유소들이 전량 제품을 공급받고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면서 계약 내용을 위반, 여러 회사로부터 제품을 혼합해 비교적 싼 가격에 공급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정유사 측이 주유소에 계약위반과 부정매출을 따지고 들어오면, 과거 공정위 등이 문제 삼은 전량판매의 불공정성에 따라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주유소 업자들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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