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때부터 구조적 결함 잉태??? 땜질식 처방으로는 미래가 없다


국민연금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잠재적인 ‘화약고’가 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보험료율을 높이고 가입 연령 및 수령 연령을 늦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들의 자문안일 뿐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6년께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2057년부터는 국민들에게 연금을 지급할 돈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국민연금 재정 개혁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국민들을 설득할 만한 뾰족한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1988년 이래 두 차례의 개혁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미봉책에 그친 것도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큰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연금 개혁을 늦춰서는 안 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연금 문제가 왜 이렇게 꼬일 대로 꼬였는지 심층 분석해본다.

우리나라에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88년이다. 올해 꼭 30주년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10인 이상 사업장에 재직 중인 근로자를 가입 대상으로 했다. 그 후 1992년에 가입 대상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1995년에는 농어촌 지역의 자영업자를 가입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어 1999년에는 도시 지역의 자영업자와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까지 가입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외형상 전국민 연금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도입 당시부터 언젠가는 재정상태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됐다. 가입자의 기여(보험료)에 비해 과도한 급여(연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미래의 재정구조 부실화를 잉태한 셈이었다.

출범 초기 국민연금은 소득 계층별 수익비(납입 보험료 대비 수급 연금의 비율)가 최저등급인 1등급의 경우 6.54배를 받도록 했다. 즉 국민연금 가입 기간 동안 1억원을 납부했으면 추후 연금으로 6억5400만원을 수령하는 구조였다. 최고등급인 45등급조차도 수익비가 1.31배로 설계됐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가입자가 돈을 낸 것보다 더 많이 연금을 받아가는 구조였던 것이다.

소득대체율 역시 출범 초기부터 70%라는 지나치게 후한 기준이 채택됐다.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70%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게 골자다. 이는 한국보다 훨씬 일찍부터 연금 제도를 운영해온 선진국에 비해서도 과도한 수준이었다. 특히 70%라는 소득대체율은 특별한 근거가 없이 단지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가입자의 순응성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돈을 적게 내고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그런 정부의 약속을 믿고 국민연금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연금 재정구조의 취약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1999년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가 전 국민으로 확대되기 전에도 연금 기금은 2023년 최대치에 도달한 후 불과 10년 만인 2033년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급여를 줄이고, 기여를 늘리며,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특히 급여를 줄이고 기여를 늘리는 것은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보다 먼저 연금제도를 도입·운영해온 다수의 국가에서 재정 건전성 문제가 발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연금제도는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금 재정 부실화는 일반적으로 연금제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뒤집어 말하면 연금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연금제도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구조 개혁 논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다. 제도를 도입한 지 10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당초 설계된 국민연금 구조대로라면 머지않아 재정수지 적자와 기금 고갈이라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온 뒤였다.

1997년 출범한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은 기존의 ‘저부담-고급여’ 체계로는 2020년 국민연금 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나아가 2031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제도 개혁을 위해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는 방안, 보험료의 상향 조정, 소득대체율의 축소,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장 등을 처방으로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입안했다. 소득대체율을 70%에서 55%로 축소하는 한편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내용이었다. 또 2003년부터 매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실시해 보험료율을 조정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은 원안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이 55%에서 60%로 상향 조정되는 등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제1차 국민연금법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물론 제1차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국민연금 재정상태는 이전에 비해 개선됐다. 하지만 재정수지 적자 발생 시점을 2020년에서 2036년으로, 기금 소진 시점을 2031년에서 2047년으로 각각 16년 늦췄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제1차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5년 만인 2003년에 재정계산이 시행되면서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재정 불안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국민연금 가입자 등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자 2003년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와 함께 제도 내실화, 급여제도 합리화,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제2차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재정 안정화 방안의 목표는 2070년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2배의 적립률(당해 연도 지출 대비 적립기금)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보험료율은 9%에서 2010년부터 5년마다 1.38%포인트씩 조정해 2030년 15.90%까지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2008년 50%로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은 2003년 16대 국회의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더욱이 2004년 출범한 17대 국회에서는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여야가 서로 강한 이견을 보인 데다, 노동단체·시민단체·학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는 연금제도가 얼마나 정치경제적으로 복잡한 이슈인지를 다시 한 번 드러낸 사례다.

구조적 문제에 저출산ㆍ고령화 맞물려 ‘암울’

그 후 2007년에 어렵사리 제2차 국민연금법 개정이 이뤄졌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터였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젊은 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을 수령하는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 국민연금 재정 파탄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된 셈이었다.

그 덕분에 제2차 국민연금 개혁은 비교적 두드러진 성과를 낳았다는 평을 받았다. 가장 큰 성과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당시 60%에서 40%로 크게 낮춘 것이었다. 이로써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2013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4년 재정수지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두 차례의 국민연금 개혁에도 불구하고 ‘돈을 내는 것에 비해 연금을 많이 받는’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큰 논란을 빚은 것도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급여를 줄이고 기여를 늘리는 한편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게 사실상 불가피한데도 국민들을 수긍시킬 수 있는 방안도 없이 덜컥 개편안을 띄웠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 눈치를 보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늦추다가는 결국 미래에 국가 전체가 심대한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정치권의 과감한 결정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고언이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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