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덩치는 세계 3위인데 돈 굴리는 능력은 하위권

지난 5월 30일 '2018년도 제3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관계자들이 국민연금 기금 중기자산배분(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

강민경 기자

세계 3대 연기금이자 634조원 규모의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이 올해 상반기 0%대로 급락했다.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도 지난해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주식 투자로 인한 손실액이 1조5572억원에 달한 가운데, 기금 고갈 시점도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

지난 2013년 정부는 국민연금 3차 재정 추계를 발표하며 올해 기금 투자 수익률을 7.3%로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5월말 기준 수익률은 0.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대로의 추세라면 올해 총 수익률이 1.2%에 머물 것이라고 관측한다.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연금공단의 기금 운용 성과 자료를 분석해 지난 8월13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국민연금의 올해 총 투자 수익률은 0.5%로 지난해 7.3%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4월말까진 0.9%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5월 들어 코스피가 하락하며 수익률도 감소했다. 국민연금 수익률 0%대 진입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수익률 1%대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국내 주식ㆍ해외 주식ㆍ국내 채권ㆍ해외 채권ㆍ대체투자ㆍ단기자금 등 6개 주요 항목을 기반으로 기금을 투자 및 운용하고 있다. 각 투자 항목별 운용 금액(5월말 기준)은 △국내 주식 130조1490억원 △해외 주식 114조3242억원 △국내 채권 295조1186억원 △해외 채권 23조7820억원 △대체투자 67조3198억원 △단기자금 2조2481억원 등이며, 각 항목별 수익률은 △국내 주식 -1.2% △해외 주식 1.7% △국내 채권 0.4% △해외 채권 0.3% △대체투자 2.2% △단기자금 0.9% 등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총 수익률 급감 원인은 ‘국내 주식’에 있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1.2%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1조5572억원이 증발했다. 지난해 국내 주식 수익률 26.3%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올해 신규 투자금액 1조7350억원을 포함할 경우 손실액은 3조원이 넘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주식시장 자체가 움츠러든 배경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국민연금이 성과 지표로 삼는 벤치마크 수익률 -0.3%(코스피 200 등락률)보다 낮은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간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기금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지난 5월말 기준 국민연금은 총 운용금액 대비 국내 주식과 국내 채권에 각각 20.9%와 46.7%를 투자했다. 전체 투자 비중 가운데 국내 투자 비중이 약 70%에 육박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 비중(2017년 말 기준)은 6.9%로 2015년 6.5%, 2016년 6.7%에 이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코스피에서는 2015년 6.3% 비중을 차지했던 국민연금이 지난해 들어선 7.9%로 크게 늘었다.

국내 주식ㆍ채권 투자에 과도한 쏠림

한편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은 17.4%, 대체투자는 국내외를 합해 7.6%에 그쳤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 편향 축소를 위한 해외 투자 확대 등 투자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러한 취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단기적 전략 변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계획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 (출처:국민연금공단, 김순례 의원실) (사진=주간한국)
지난달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이경상 대한상의 상무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 특히 저성장 국면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국민연금 측은 국내 주식의 수익률이 좋다며 국내 투자 비중 축소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호황으로 해당 부문에서만 26.3%의 수익률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증시는 유동성이 큰 만큼 기복도 심하기 때문에 마냥 호황일 수만은 없다”고 강조한다. 마이너스 수익이 계속될 경우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도 1.7%로 주저앉았다. 전년 수익률 10.7% 대비 크게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총 투자 수익률에 대한 향후 전망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6월 들어 코스피가 더욱 하락했고, 한‧미 양국에서의 채권금리 인상으로 채권 투자 수익률이 오를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무역전쟁과 터키 경제위기 등으로 해외 증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낮은 비중의 해외 투자가 수익률 상승을 이끌기 힘들다는 의견 등도 ‘비관론’에 무게를 싣는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대 규모의 연기금으로 꼽힌다. 그러나 운용능력은 세계 6대 연기금 가운데 꼴찌에 머문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6대 연기금 평균 수익률은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12.2%로 제일 높았고 그다음으로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9.3%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 9.3%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 9.2% △일본 공적연금(GPIF) 6.6% △한국 국민연금 5.2% 순이었다.

국민연금이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7.3%의 수익률을 올렸던 지난해에도 목표치를 웃돌았다고 자평하기엔 무리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는 코스피 지수가 21.8%까지 치솟았을 정도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르웨이(GPFG)는 13.7%, 캐나다(CPPIB)는 11.8%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미국(CalPERS)의 경우에도 11.2%(6월 결산‧2016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에 달했다. 오랜 저유가로 경기 부진을 겪고 있는 네덜란드(ABP)조차 한국보다 높은 7.6%의 수익률을 내며 세계 경기 호황의 영향을 톡톡히 누렸다. 한국과 견줄 만한 국가는 수익률 6.9%의 일본(GPIF)이 유일했다. 당시 일본은 여론 및 언론으로부터 “아베노믹스로 인해 무리한 투자에 따라 수익률이 저조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세계 연기금들은 해외투자ㆍ대체투자로 수익률 제고

글로벌 연기금들과 한국 국민연금의 운용 전략에서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부분은 해외 투자 비중에 있다. 최근 해외 주요 연기금들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위험자산과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르웨이(GPFG)는 2010년 이후 유럽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인 대신 아시아 등 이머징(개발도상국 및 신흥시장) 투자 비중을 확대해 지난해 이머징 투자 비중만 20.5%를 기록했다. 일본(GPIF) 역시 해외 투자 비중을 2013년 25.7%에서 2017년 말 39.2%로 확대한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5월 기준 해외 주식‧해외 채권‧해외 대체투자 등을 포함한 전체 해외 투자 비중이 28.9%로 30%에도 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대체투자 비중도 국민연금이 저조한 성과를 내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네덜란드(ABP)의 경우 지난해 기준 대체투자 비중이 26.3%에 달했지만, 국민연금 운용 기금 가운데 대체투자의 비중은 올해 5월 기준 10.6%에 불과했다. 올해 초 다수의 자산운용사들이 주식시장 하강에 대비해 부동산, 사모펀드(PEF) 등 대체투자에 힘을 쏟은 반면 국민연금은 주식과 채권 비중을 높게 유지한 결과다.

해외 주요국 연기금 운용 수익률 (출처:국민연금공단) (사진=주간한국)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관 투자의 경우 대체투자가 붐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식 및 채권은 유동성이 큰 대신 기복이 심해 보다 안정적인 대체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반면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가 침체되니 당연히 수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고, 대체투자로 만회를 해야 했으나 원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저조한 투자 수익률은 국내 기관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기금의 총 수익률은 △2013년 5.7% △2014년 5.4% △2015년 4.4% △2016년 3.4% △2017년 3.4% △2018년 6월 4.0%를 기록했다. 또 사학연금관리공단의 총 수익률도 △2013년 7.8% △2014년 4.8% △2015년 7.6% △2016년 8.0% △2017년 18.7% △2018년 6월 2.0%인 것으로 확인됐다. 즉, 올해 기준 국민건강보험과 사학연금이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 대비 각각 8배와 4배를 넘는 수익률을 달성한 것이다.

기금운용본부 전문 인력 유출에도 수수방관

이러한 국민연금의 수익률 급감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고 책임자 및 실장급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어 대체투자 강화를 비롯한 전문적 투자 전략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는 지난 1년여간 공석이었고, 해외대체실장의 경우 지난 1일 신규 선임되기 전까지 지난해 3월부터 비어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도 주식운용실장과 대체투자실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또 최근 5년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정원 278명 중 30%가 넘는 97명의 직원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지며 조직 운영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일기도 했다.

김승희 의원은 “기금 운용을 진두지휘 할 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국민의 호주머니부터 털어 곳간을 채우려는 것이 문제”라며 “기금운용본부의 구조적 문제점 해결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등 수익률 제고 방안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도 이러한 전문 인력 유출이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 적극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기 힘든 요인으로 거론된다.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GDP의 36%에 해당하는 거대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데, 이를 총괄하는 본부장 및 실장급 간부의 부재는 수익률 제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사모펀드나 부동산 등이 주요 종목인 대체투자의 경우 안정적이긴 하지만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고, 특히 사모펀드는 폐쇄형 투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확실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국민연금 기금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운용 수익이기 때문에 수익률 1%가 오르면 기금 고갈을 5년 늦출 수 있다”며 “그러나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큰 폭의 수익률 상승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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