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미래 위해 국민연금 개혁 서둘러야”


국민연금 개편안 논란이 뜨겁다. 국민 대다수의 노후소득 보장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부도 딱히 묘책이 없어 보인다.

연금 제도 전문가인 김용하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순천향대 교수)을 만나 국민연금 문제의 해결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얼마 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이 큰 논란을 빚었다. 이 개편안은 간단하게 말해서 보험료는 많이 내고 연금은 늦게 수령하라는 건데 어떻게 평가하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민연금 재정 상황이 굉장히 악화되고 있다. 최근 재정추계에 따르면 기금 소진도 3년이 앞당겨졌다.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 수급권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현재 보험료 9%에서 거의 3배 정도 오른 27%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국민연금 개편안이 2개 나와 있다. ‘가’안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5%로 유지한다는 것이다(현행 국민연금법에는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도록 정해져 있다). 보험료율로 따지면 현행 9%에서 2%P 올리는 효과인데, 이건 재정 안정화 조치로 볼 수 없다. 다만 재정 상황을 현재보다 나쁘게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나’안은 기본적으로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4.5%P 올리는 것이다. 그 후 특정 시점에 4%P를 추가로 올린다는 계획도 있다. 이 안은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17.5%로 올린다고 해도 결국은 2088~2089년에 적립금이 소진된다고 한다. 결국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내놓은 개편안은 충분한 재정 안정화 조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 연금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완전한 재정 안정화 방안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엔 부족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에 한 번씩 재정추계를 하는데, 5년이라는 주기가 적정한 것인가.

“재정추계를 그동안 세 차례 해본 입장에서 5년이라는 기간은 적정한 것 같다. 3년으로 하면 너무 자주 하는 것이고, 10년이면 너무 기간이 길어 변화 추이를 알기 쉽지 않다. 아직 우리처럼 역동성이 강한 나라에서는 5년에 한 번은 재정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인구 등 거시경제 변수를 반영한 재정추계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5년은 적정하다.”

-재정추계 결과 205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하는데, 젊은 세대는 보험료를 내고도 연금을 못 받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크다.

“국민연금을 그냥 이대로 두면 2057년에 소진된다. 그렇게 되면 연금 수급권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단숨에 연금보험료를 9%에서 27%로 거의 3배로 올려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그 시점의 미래 세대가 부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다. 그렇게 놔둬도 정부가 국민연금의 재정 지원을 하면 된다고 하는 시각도 있는데, 재정 지원도 국민 부담이기에 그 자체가 미래 근로세대에게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재정 한도 내에서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면 미래 세대에 부담이 커진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 우려와 국민연금 제도 개편에 관한 논란이 자꾸 거듭되는 이유는 뭔가.

“1988년에 국민연금이 처음 나왔고, 1999년에 제1차 연금개혁을 했다. 급여 수준에 대한 검토도 했다. 2007년에 2차 연금개혁을 하면서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올해가 2018년이니까 (연금개혁을) 약 10년에 한 번씩 해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연금개혁을 안 한 것은 아니고 단계적으로 진행해왔다. 국민연금 제도를 둘러싼 경제상황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그 흐름을 제도 개혁이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현재의 국민연금은 충분한 급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여론이 있다. 실제적으로 현재의 급여도 충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인구구조에 문제가 있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어떤 나라보다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65년엔 노인인구 비율이 42.5%가 된다고 전망하는데, 이것도 합계출산율이 1.38명으로 늘어난다는 가정에서다. 합계출산율이 지금처럼 유지되면 노인 비중은 더 늘어날 것이다.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난다는 건데, 2060년엔 근로세대 1명이 노인 1명을 모셔야 한다. 연금보험료도 높아지면서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인구구조가 가진 특수성이 문제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국민연금 재정 문제로 이어진다.”

-국민연금 폐지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인구가 고령화되는 나라와 연금개혁을 하는 나라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현재보다 연금보험료를 높이고 수급 연령을 늦추자는데 좋아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 재정 전망 등에 대해서는 국민들과 정보 공유가 꼭 필요하다. 현재는 그런 정보 공유가 충분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3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국민연금을 받고 있고 무려 634조원이라는 적립기금이 쌓여 있다. 30년이 된 제도를 청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공적연금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부분이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다소 불편하고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도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없으면 자녀 세대가 오롯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 자기 노후 대비도 따로 해야 한다. 노후 준비를 따로 한다면 민간 연금ㆍ저축 제도에 가입해야 하는데 민간기관은 영리기관이기에 사업비를 뗀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연금을 받을 때 물가 상승에 따라서 연금도 올려준다. 민간기관은 그런 기능을 가질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물가가 안정돼 있어 그런 걱정은 없지만 남미와 같은 상황이 되면 물가변동에 대응할 수 없다. 민간기관의 리스크는 실질적인 가치가 보존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디폴트 없이 운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은 ‘장수(長壽)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건 민간금융기관이 대비를 못해준다. 82세라는 평균수명 이상으로 훨씬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민간금융기관은 사회의 위험요소를 보장할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이 1% 오르면 연금 고갈 시점을 5년 정도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작년까지 국민연금 수익률은 거의 경상 GDP 성장률과 비슷했다. 다만 금년도에는 금융시장도 불안하고 기금운용본부장이 공석 중이기도 하고 다소 어려움이 있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긴 어렵고 경상 GDP 성장률 정도로만 유지하면 된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그만큼 리스크도 동반된다. 국민의 자산인 국민연금 기금을 함부로 운영할 수 없다. 작년까지 해왔듯이 적정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스크가 커지게 되면 원금 손실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추계 관련 자료 분석 결과 2013~2017년 평균 투자수익률 가정치는 6.53%였으나 실제 투자수익률 평균치는 5.2%로 1.3% 낮다.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인가.

“벤치마크(투자 실적을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지표)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 30년간의 평균수익률을 보면 경상 GDP와 비슷하게 됐는데 다만 올해는 특수한 상황이다.”

-국민연금 기금 투자수익률이 예상보다 1.5% 하락하면 기금 고갈이 2060년에서 2053년으로 7년 앞당겨진다. 정확한 추계가 필요한데, 고갈 시기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인 합계출산율, 경제성장률도 예측에서 빗나갔다. 기금 고갈 시기가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진다는 4차 재정추계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기금이 소진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앞으로 기금이 몇 년 남았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기금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운용해야 한다. 국민의 자산을 수탁 받아 운용하는 책임기관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40년 후의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오차의 범위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불신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도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독일은 가입한 금액과 기간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완전비례 연금이다. 인구 변화 등에 따른 재정 부담을 정부가 일부 부담하는 것이다. 독일 사례에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지금 우리나라는 연금을 2배 정도로 돌려 받는다. 하지만 연금보험료를 17.5%로 올리면 내는 것과 받는 것이 비슷한 수준이 된다. 독일 제도는 내는 만큼 받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은 변한다. 독일도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고 보험료 인상, 급여수준 조정 등 연금제도를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우리는 내는 것도, 받는 것도 확정돼 있다. 2배로 받는 것이 고정돼 있어서 이걸 조정하지 않으면 소진되는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독일 사례를 적용하더라도 돈을 내고 받는 수준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것이 핵심이다. 독일은 국민연금이 비례 방식이다. 한국의 경우에 저소득자는 4배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이다. 어느 제도가 나쁘다 좋다 할 수는 없다.”

김용하 교수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연장하기로 하는 등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인가.

“연급 수급 개시 연령을 2038년에 65세로 한다는 것은 1999년 1차 개혁 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1988년엔 평균수명이 72세였다. 지금은 82세로 10살 차이가 난다. 10년을 더 받는 것이다. 결국은 수급 기간이 10년 길어지니까 기금 고갈이 빨라지는 것이다. 수급 개시 연령을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늦추는 것이 불가피하다. 정년이 늘어난다면 좀 더 일하면서 연금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받으면 문제가 없는데, 지금은 50대 초중반이 되면 다 퇴직한다. 그래서 수급 개시 연령을 미리 정해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노후를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는 만큼 정년연장도 함께 이뤄져야 하지 않나.

“결국 정년연장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고 근로세대가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일할 시간은 늘어난다. 근로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령자도 더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진다. 자연스레 정년이 조정될 가능성은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불안해할 것은 없다. 인구구조에 따라서 근로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부정해서는 안 되고 너무 공포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대응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말고도 기초연금, 퇴직연금, 공무원연금도 있는데 이런 여러 제도를 함께 고려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초연금 등 다른 제도를 포함한 사회보장체계를 고려해 개혁을 추진하면 좀 더 비용효율적인 답을 찾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만을 두고 찾기엔 답이 협소하다. 퇴직연금을 함께 논의하면서 퇴직연금의 역할을 국민연금으로 가져올 수도 있고 역할 조정도 가능할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축소해서 국민연금의 재정으로 가져올 방안도 있다. 여러 사회적 자원을 종합적으로 재설계하면 조금 더 수용 가능한 답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제도 개선을 빨리 할수록 미래 부담이 줄어든다.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당리당략을 떠나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현재 국민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국민도 생각하면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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