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뒤집은 판결에 정부도 ‘당황’… JY 대법원 판결 놓고 ‘갑론을박’

박근혜 항소심 재판부, 삼성 뇌물죄 부분 원심 판결 뒤집어

엘리엇 ISD 대응책 마련 중이던 정부, 항소심 판결에 '진땀'

유리해진 엘리엇(?), 결정적 힘 실어줄 무언가 없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불똥이 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내려지며, 엘리엇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을 둘러싼 잡음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가 엘리엇의 ISD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원심 판결 등을 근거로 삼았음에도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관련 부분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판결이 엘리엇의 소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잡음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죄 관련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에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상호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청와대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주는 대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삼성 측으로부터 뇌물을 기대하는 묵시적 청탁이 이뤄졌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재판부는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핵심 현안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있어,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고 인정했다.

지난 2015년 7월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 그리고 제일모직 지분 4.84%를 보유해 양사의 합병에 있어 사실상의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었다. 물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다고 발표한다면, 합병 성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최대 현안인 국민연금-제일모직 합병 성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최원영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에게 국민연금의 합병 관련 의결권 행사 부분을 잘 챙겨보라고 지시하거나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에게 합병에 관해 삼성그룹에 우호적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하는 등의 지시 또는 승인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보건복지부의 ‘부당한 지시’를 받고 2015년 7월 10일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합병이 성사됐다고 봤다.

이는 청와대의 압력에 따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 원칙 훼손 및 국민연금의 투자 손실을 불러일으켰고, 반대로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경영권 승계작업에 따른 막대한 이득을 줬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판결 중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부분은 이 사건 원심 재판부의 판결과 다소 엇나가고 있었다.

앞서 이 사건 원심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검찰 측이 주장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이 부회장 측의 개별현안들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원심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안건이 의결된 날은 2015년 7월 17일로, 묵시적 청탁과 뇌물에 대한 요구가 오고간 것으로 알려진 같은 달 2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청와대 단독면담보다 앞서 이뤄진 점을 들어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 청탁을 해야만 할 시급한 현안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과도 맥락을 같이 했다.

반대로 이번 항소심 판결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5년 7월 25일 청와대 단독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국민연금의 찬성을 통한 합병 성사 그리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고 판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에서 삼성 뇌물죄 관련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됐다. (사진=연합)

특히 이날 단독면담의 의미에 대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합병 성사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향후 자신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계속적인 도움을 요청할 필요성에 마련된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사건 원심 판결 내용처럼 아무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결이 단독면담 이전에 이뤄졌다고 할지라도,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식 그리고 이 부회장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우호적 입장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의 인식과 양해가 형성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인정된 유죄의 범위와 형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또 현재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 역시 본의 아니게 불똥을 맞고 있다.

엘리엇 대응책 마련 중이었던 정부, 朴 항소심 판결로 ‘갸우뚱’

앞서 언급했듯이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부정한 청탁 사항 중 하나로 외국자본인 ‘엘리엇’ 등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추진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2015년 7월 25일 단독면담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적어도 당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가진 청와대 참모진과 함께 엘리엇 등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추진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고 판시했다.

미국 헤지펀드사인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지분을 7.12%를 가지고 있었고, 양사의 합병 비율인 1:0.35(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가 불공정하다며 합병에 강하게 반대했다.

실제로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하면서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합병에 따른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신규 순환출자 고리 발생 등의 민원을 제기했다.

특히 엘리엇은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을 막아달라는 취지로 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등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법원은 1심과 항소심 모두 엘리엇 측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됐지만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고, 당시 합병이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이뤄졌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취지로 수사기관의 발표가 나오자 엘리엇 측도 합병에 대한 ISD를 추진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엘리엇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연금이 합병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부당한 조치를 취해 자사에 최소 7억 7000만달러(한화 약 865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중재의향서를 우리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에 법무부가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부정적 입장으로 나오자, 엘리엇은 결국 지난 7월 13일 우리 정부에 ISD 중재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소송 진행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17일 법무부는 엘리엇의 중재신청에 따른 답변서를 공개하면서 엘리엇의 8650억여원에 대한 피해보상금 청구 및 관련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엘리엇의 손해배상금 요구에 대응책을 마련해왔다. (사진=연합)

우리 정부는 답변서를 통해 법원이 박 전 대통령과 국민연금 직원, 행정부 구성원 등의 위법적 행위의 결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제안되거나 통과됐다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가 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적법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근거로 “한국 민사법원들은 삼성의 합병 및 그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에는 합당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고, 합병 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병의 적법성을 인정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1심 판결 및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 내용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합병과 관련해 대통령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라며 “엘리엇은 서울고등법원이 삼성이 경영권 승계작업과 관련한 청탁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언급하지도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얄궂게도 겨우 일주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가 앞서 언급한 법무부의 답변서 내용과 반대되는 취지의 판결을 내면서, 정부 입장이 곤란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사실상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박근혜 청와대의 압력과 국민연금 내부의 부당한 그리고 특정 기업 오너일가의 편법적 승계작업을 위해 이뤄진 결과라는 결론을 지었고, 이것이 현재 엘리엇 측 각 주장을 변론해주는 유리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朴 항소심 판결, JY 대법원 판결-엘리엇 ISD 영향 줄 수 있나

이 부분 항소심 판결 내용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의 여지는 있다. 사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단독면담 이틀 후 안종범 전 수석에게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엘리엇 사태 관련해 대책을 마련해보라”고 지시한 점을 들어 이 역시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부당한 개입의 일환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앞뒤 정황에 보다 치중했을 뿐 당사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국민 대표기업인 삼성이 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걱정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해서 진행 상황을 궁금해 했을 수도 있다”라고 진술했다.

또 안종범 전 수석은 이재용 부회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박 전 대통령이 엘리엇과 삼성 문제에 관해 자신에게 따로 지시를 하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단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가 삼성그룹 내 중요한 사안으로 경제수석실에서도 신경 쓸 필요가 있었고, 엘리엇 문제가 ISD 문제로 이어져 경제금융 비서관 등에게 챙겨보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현재 엘리엇 측 주장과 ISD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줄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우선 이번 항소심 판결 이전의 다른 두 번의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에 대해 부정했고, 합병 결의 시기가 부정한 청탁이 오고 간 단독면담 시기보다 앞선다는 점을 들어 합병이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현재 엘리엇 측 주장에 대한 반박의 여지도 다분하다. 엘리엇이 합병에 대해 반대할 당시 가장 강하게 지적했던 부당한 합병 비율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법원에서 “합병 목적‧합병 비율 모두 타당했다”는 판결을 내리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사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큰 이슈가 됐을 당시에도 합병 비율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설정됐다며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할수록 이 부회장 측 그리고 삼성물산에 유리할수록 국민연금 측이 이득을 보는 상황이었는데,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라는 비율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의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시기에 합병이 이뤄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반박할 논리는 있고, 법원 역시 이와 관련된 내용을 판결에 반영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비율은 시장주가로 정하며, 이는 시장주가가 상장법인의 객관적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15년 1/4분기 당시 삼성물산의 실적은 어닝쇼크 충격에 휩싸이며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당시 유가하락에 따른 글로벌 건설프로젝트 발주 둔화 및 상품가격 하락으로 인한 물산의 상사부문 마진 둔화 우려가 실적하락의 원인으로 꼽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현재 엘리엇 측 주장과 ISD 소송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상태다. (사진=연합)

때문에 당시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관에서 합병 직전 물산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하고 있었다.

주식시장에서의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라 주가 반등시점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는 만큼, 주가하락 시 저평가된 주가 수준에서 매도를 한다면 향후 또 매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어서 당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 등 삼성물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매도가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었다.

주가가 하락하는 시점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발표가 더 늦어졌다면 합병비율은 더 낮아질 수 있었다. 물론 합병발표가 난 뒤 국민연금 등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부당한 합병비율과 삼성물산 주식의 저평가 지적에 관해서도 반박논리가 이미 여러 가지 존재하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엘리엇 ISD의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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