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떡 벌어지는 주식 갑부들…그들에겐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주간한국>은 지난 창간 54주년 기념호에서 ‘부의 이동: 주식 부호 판도 변화로 본 머니 무브’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다룬 바 있다. 지난 5년간 국내 100대 주식 부호(각 연도별 8월말 상장기업 주식 지분 평가액 기준)의 변화상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특히 국내 주식 부호 100명 중에는 나름대로 눈길을 끄는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 자수성가형과 경영승계형 인물을 각각 3명씩 소개한다.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사장(18위)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사장은 국내 100대 주식 부호 순위에서 2016년 54위, 2017년 27위, 2018년 18위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며 시선을 끄는 인물이다. 같은 기간 동안 주식 평가액도 4400억여원에서 1조3600억여원으로 3배나 증가했다.

허재명 사장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일진그룹은 일진전기를 모기업으로 하는 소재/부품 전문 중견기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기업이지만 배전금구류(전력선로나 통신선로에서 전선을 지지물에 매달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금속제 부속품), 동복강선(강철 선의 표면에 구리를 코팅해 만든 전선),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인쇄회로기판(PCB: Printed Circuit Board)용 전해동박(황산구리 용액을 원료로 전기분해를 거쳐 만드는 얇은 구리 포일)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을 만큼 탄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특히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기술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과 소송전을 벌여 결국 GE의 소송 취하를 이끌어내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자제품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일렉포일(Elecfoil: 일진의 전해동박 제품명)’이 주력 제품이다. 일렉포일은 인쇄회로기판의 회로를 새겨 넣는 매우 얇은 동박(Copper Foil)인데, 전자제품에 널리 사용되는 핵심 소재다. 특히 휴대폰, 노트북PC, 전기자동차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2차전지의 핵심 소재여서 세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일진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2차전지용 일렉포일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성장성을 반영해 일진머티리얼즈의 주가는 2016년 초 7000원대에서 최근 5만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허재명 사장은 일진머티리얼즈의 최대주주로서 지분율이 50%를 넘는다.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20위)

육해공(陸海空)에 걸친 종합 운송/물류 기업을 일군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아들 네 명을 뒀다.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은 그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국내 재벌 가문들을 살펴보면 장남이나 차남도 아닌 넷째 아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런데 조정호 회장은 최근 갑질 파문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는 등 곤궁한 처지에 빠진 한진그룹과 달리 메리츠금융그룹을 눈부시게 성장시키는 수완을 발휘해 주목받고 있다.

조정호 회장은 한진그룹 금융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한 뒤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가 2002년 타계하면서 일찌감치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했다. 이때 갖고 나온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한불종금(메리츠종합금융)이 현재 메리츠금융그룹의 토대가 됐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주회사인 메리츠금융지주를 정점으로 메리츠화재,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메리츠자산운용 등 8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특히 쌍두마차 역할을 하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종합금융증권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인재를 중시하는 조정호 회장이 구축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덕분에 조 회장은 금융전문그룹 오너 중에서 주식 재산이 가장 많은 부호라는 타이틀을 덤으로 얻었다. 그는 지주회사인 메리츠금융지주의 지분을 7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21위)

한국은 게임산업 강국이다. 과거 ‘전자오락’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린 후 온라인게임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한국 게임개발업체들이 도약하기 시작했다. 게임산업은 여느 콘텐츠 산업과 달리 언어나 문화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 진출도 용이한 편이다.

2010년 설립된 펄어비스는 국내에서 꽤 잘나가는 게임개발업체 중 하나다. 업력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초대형 히트작으로 게임업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으로 크게 성공한 ‘검은 사막’이 바로 그 작품이다.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은 회사의 창업자다. 그는 오로지 게임 개발에 대한 꿈을 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2000년 스물한 살 나이에 대학 중퇴 후 가마소프트라는 게임개발업체에 입사했다. 여기에서 개발 역량을 갈고 닦은 그는 2003년 NHN게임스로 이직해 R2, C9 등 히트작을 개발하며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펄어비스를 설립하게 된다.

펄어비스는 ‘검은 사막’의 꾸준한 흥행에 힘입어 2017년 9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고, 주가가 한때 28만원대까지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3조원 가까이 되며, 코스닥 10위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일약 주식 부호로 거듭난 김대일 의장의 지분율은 약 47%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24위)

국내 주식 부호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좀 낯선 인물이다. 한양정밀은 자동차 부품, 건설 장비 등을 제조하는 업체다. 지난해 매출액이 900억원대로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비상장기업이다. 그렇다면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도대체 어떻게 굴지의 주식 갑부가 되었을까.

신동국 회장은 국내 100대 주식 부호 중에 아주 독특한 케이스로 꼽힌다. 자신의 회사 주식이 아니라 다른 회사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가 엄청난 주식 부자가 된 것은 한미약품에 투자한 덕분이다. 그는 지난 2014년 한미약품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돌연 2대 주주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정체와 투자 배경에 대해 세간의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신동국 회장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고등학교 동문 후배다. 이 같은 개인적인 인연에 더해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투자에 나선 것이다. 그의 투자 안목은 실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가 투자한 이후 한미약품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이다. 신동국 회장이 한미약품 주식을 처음 매입하기 시작한 2014년 4월 무렵 한미약품 주가는 6만원대였다. 그 후 신약 개발 호재가 잇따르면서 한미약품 주가는 2015년 하반기 80만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주가가 40만~50만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해도 신동국 회장은 10배 가까운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신 회장의 한미약품 지분율은 10%대 초반이다. 지난 8월말 기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1조8800억여원이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1조600억여원이다. 절친한 고교 선후배가 나란히 주식 부호 반열에 오른 셈이다. 이런 기막힌 인연이 또 있을까.


▨구본학 쿠쿠홈시스 사장(35위)

쿠쿠홈시스는 국내 1위 전기밥솥 브랜드 ‘쿠쿠’를 만드는 쿠쿠전자가 기업분할을 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쿠쿠전자는 2017년 12월 렌털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쿠쿠홈시스와 가전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쿠쿠전자로 분할됐다. 동시에 두 회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쿠쿠홀딩스가 설립됐다. 쿠쿠전자가 3개의 회사로 분할되면서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한 셈이다.

구본학 쿠쿠홈시스 사장은 쿠쿠전자 창업주인 구자신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30대 후반이던 2006년부터 쿠쿠전자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 전반을 챙겨왔다. 특히 국내 1위 전기밥솥 업체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인 해외 시장 진출과 신사업 개척으로 쿠쿠전자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 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신사업이 바로 생활가전 렌털 사업이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렌털 사업은 국내 시장에서 2위권에 오른 데 이어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렌털 사업은 쿠쿠의 성장세를 한 단계 올려놓을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학 사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회계학을 공부했다.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지식을 일찌감치 두루 쌓은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아주 풍부하다는 평판도 듣고 있다. 실제 쿠쿠의 제품 중에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트윈프레셔’ 제품도 구 사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단순히 창업자의 가업을 물려받은 데서 머물지 않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으로 회사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셈이다.

구본학 사장은 지난 6월말 기준 지주회사인 쿠쿠홀딩스 지분을 약 42%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또 쿠쿠홈시스 지분도 약 16% 보유 중이다. 쿠쿠홈시스의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쿠쿠홀딩스이기 때문에 구 사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셈이다. 쿠쿠홀딩스와 쿠쿠홈시스의 주가는 9월말 기준으로 각각 16만여원, 21만여원에 달한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36위)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를 이용한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보툴리눔 독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의약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미국 제약회사 앨러간이 판매하는 주름 개선용 주사제 보톡스다. 보톡스는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며 엄청나게 큰 시장을 창출했다.

메디톡스는 2006년 보툴리눔 독소 제제 ‘메디톡신(Meditoxin)’을 출시하면서 성공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도 네 번째 기록이다. 현재 메디톡스는 국내 보툴리눔 독소 제제 시장에서 40%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에는 보톡스의 원조 기업인 앨러간과 3억달러가 넘는 기술수출 계약을 맺어 세간에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보툴리눔 독소 의약품 기업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서울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보툴리눔 독소 제제 연구에 몰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표는 선문대 응용생물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0년 메디톡스를 창업했다. 보툴리눔 독소 제제라는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국내 최고 반열에 올랐다.

메디톡스는 2017년 매출 1812억원, 영업이익 90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50%에 달한다. 정현호 대표는 2022년까지 매출 1조원, 시가총액 10조원을 달성하는 한편 글로벌 바이오/제약업계에서 20위 안에 진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메디톡스 주가는 높은 성장성과 수익성 덕분에 9월말 기준 61만원이 넘을 만큼 고공행진 중이다. 정현호 대표는 지난 6월말 기준 메디톡스의 지분을 18.48% 보유한 최대주주다. 전 세계적으로 보툴리눔 독소 의약품 시장이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터라 향후 그의 주식 재산은 더욱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윤현 기자 unyon2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