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자문의 판단에만 지나치게 의존했나

서울시 여의도에 위치한 ABL생명보험 본사 전경.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ABL생명보험이 피보험자의 우발적 외래 사고에 의한 사망을 질병에 의한 사고 사망이라고 잘못 판단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피보험자 측은 ABL생명보험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뒤늦게나마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특히 ABL생명보험은 피보험자를 직접 진료한 의료진이 우발적 외래 사고가 그의 사망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자사 자문의가 이와는 다른 판단을 했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던 남성 A씨는 지난 1990년대 후반 ABL생명보험(당시 알리안츠생명보험)의 한 교통안전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피보험자이자 보험수익자는 모두 자신으로 설정했다.

해당 보험상품은 피보험자가 각종 교통재해를 당했을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특약을 담고 있었다.

또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교통재해 이외의 우발적 외래의 사고, 즉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등이 아닌 일반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했을 시 50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특약을 담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2016년 겨울 A씨는 복통과 설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고, 위장염 및 결장염에 따른 장염과 장폐색으로 입원치료를 받다가 며칠 뒤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 전 A씨는 취침 중 심한 구토 증상을 보였고,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의식을 잃은 뒤 심장이 정지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결국 소생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사망을 수습한 가족들은 그가 가입을 유지 중이었던 ABL생명의 교통안전보험 상품의 일반재해 사망보험금에 대한 보장 내역에 따라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의 유족 측은 A씨가 토사물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한 것이 교통재해 이외의 재해로 인한 사망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BL생명보험 측은 이들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했다. ABL생명 측은 A씨가 당시 고령으로 장기간 당뇨병, 고혈압, 신장 질환 등을 앓아 왔고, 입원 당시 장염 및 장폐색에 따라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A씨의 사망이 재해가 아닌 그동안의 질병이 더욱 악화되면서 비롯돼 일반재해 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ABL생명보험 측은 A씨가 구토 중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했다고 할지라도 이 구토 증상 역시 장염과 장폐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신체 내부적 요인에 기한 것, 즉 우발적 외래의 사고가 아닌 질병에 의한 호흡장해라는 지적이었다.

결국 A씨 측과 ABL생명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법적분쟁으로 이어졌다.

최근 법원은 이 사건 판결을 내리며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시에 법원의 판결 내용은 앞서 언급한 ABL생명보험 측의 주장이 매우 터무니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A씨가 가입한 ABL생명보험 보험상품의 약관에도 제시돼 있지만, 일반재해 사망보험에서 재해란 우발적 외래의 사고로서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가 경미한 외부 요인에 의해 발병하거나 또는 그 질병 상태가 악화됐을 때에는 우발적 외래의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히 익수 또는 질식, 이물에 의한 불의의 사고 중 질병에 의한 호흡장해와 삼킴장해 역시 우발적 외래의 사고에서 제외되는 사례다.

때문에 ABL생명보험 측의 주장처럼 A씨의 구토 증상이 장염과 장폐색으로 인해 발생해 질식사로 이어진 것이라면 질병에 의한 호흡장해에 해당하므로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우발적 외래의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당시 A씨에 대한 의무기록지에는 그를 질식으로 이르게 한 구토 증상이 장폐색 등과 직접적 인과 관계가 없다는 소견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학병원 소속 의사가 작성한 A씨의 사망진단서에는 ‘질식에 의한 외인사로 사망진단서를 발부함’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또 퇴원요약지에는 주진단명이 ‘질식’ 그리고 ‘상세불명의 구토물에 의한 폐렴’은 부진단명으로 적시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당시 A씨에 대한 의료진의 일반촬영 결과 장폐쇄 결과가 있었고 구토의 원인이 소장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구토 증상을 동반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다는 소견도 있었다.

특히 A씨의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에 따르면 장폐쇄 소견은 없었고, 의료진으로부터 토사물이 입과 코에서 동시에 나왔다면 ‘구토에 의한 질식사인 가능성이 높다’라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ABL생명보험의 주장 중 A씨의 질병이 더욱 악화된 점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는 부분 역시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A씨에 대한 진료기록지에 따르면, 그가 입원 뒤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위중한 정도는 아니었고 치료로 증세가 잠시 호전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염과 장폐색 등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정도로 그의 건강상태가 악화된 상태는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법원은 A씨의 구토 증상이 장염과 장폐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ABL생명보험 측 주장에 대해서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A씨의 구토 증상이 장염과 장폐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ABL생명보험 측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ABL생명이 A씨 측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연합)

심지어 ABL생명보험은 A씨를 직접 진료한 의료진이 그의 구토 증상에 따른 사망이 당시 질병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음에도, 자사의 내과 자문의가 A씨의 진료기록만을 보고 정리한 내용을 보고 위와 같은 판단을 내렸고 이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ABL생명보험이 세운 가정처럼 설령 장염이나 장폐색이 A씨의 구토 증상의 원인이었다고 할지라도, 구토 자체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라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하게 된 것이라면 이는 신체 내부적 요인이나 질병에 의한 호흡장해나 삼킴장해로 인한 사고라는 판단 역시 모순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법원은 ABL생명 측이 A씨의 유족 측에 일반재해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로 A씨 측은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피보험자의 사망 당시 질병상태와 사망 원인 등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 없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던 ABL생명보험 측의 사례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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