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상승보다 하락 기업 많아 ‘뒷걸음질’
‘보통 이하’ 취약 기업이 무려 80% 육박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제54기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에서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연합>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 상장기업들의 ESG(환경경영, 사회책임경영, 지배구조) 평가 등급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ESG 등급 공개를 통해 시의성 있는 기업 정보를 시장에 제공해 투자자들의 투자 의사결정을 돕는 한편 상장기업들이 자발적으로 ESG 수준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올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국내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평가 결과를 심층 분석한다.

올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 대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727개사, 코스닥시장 상장회사 154개사를 합쳐 총 881개사였다. 이 가운데 평가 기간 중에 결격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 727개사에 대한 ESG 등급이 발표됐다.

ESG 평가에서 'E(Environmental)'에 해당하는 환경 부문 기본평가는 환경 전략, 환경 조직, 환경 경영, 환경 성과, 이해관계자 대응이라는 5개의 대분류 항목과 그 밑에 83개 평가항목을 두며, 환경과 관련해 법 위반이 있는지, 환경 관련 사고가 있는지를 심화 평가한다.

'S(Social)'에 해당하는 사회 부문 기본평가는 근로자, 협력사 및 경쟁사, 소비자, 지역사회의 4가지 대분류를 두고 69개 평가항목을 통해 등급을 매긴다. 사회 부문을 심화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10개 평가항목은 비윤리적 노동 관행, 산업재해 다발, 불공정 거래, 소비자 권익 침해 등이 있고 이 항목에 해당하는 기업의 경우 사회 부문의 평가 등급이 낮아진다.

'G(Governance)'에 해당하는 지배구조 평가는 주주권리 보호, 이사회, 감사기구, 공시 여부 등이 기본 평가 항목으로 있으며 84개의 세부평가 항목이 존재한다. 만약 지배구조 관련 법을 위반했거나, 성과와 무관한 보수 인상, 지원성 내부거래 등이 적발되는 경우엔 지배구조 등급이 하락한다.

ESG 평가 등급은 S, A+, A, B+, B, C, D 등 총 7등급으로 분류된다. 727개사를 대상으로 ESG 등급을 매겼으며 최상위 등급인 S등급에는 단 1개사도 없었다. A+등급에는 11개사가 포함됐고 11개 기업은 상위 1.5%의 비율을 차지한다. A등급 기업은 41개사로, 평가 대상 기업의 5.6%에 해당하는 숫자다. B+ 기업은 101개로, 전체 평가 대상 기업의 13.9%를 차지한다. B등급 기업은 261개 사로 35.9%에 이르며, C등급을 받은 기업도 278개사로 전체 평가 대상 기업의 38.2%나 된다. D등급 기업은 35개사로 최하위 4.8% 집단으로 분류됐다.

종합적으로 볼 때 국내 상장회사들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행은 2017년 수준과 비슷했으며 전체 평가 대상 가운데 79%에 해당하는 상당수 기업이 보통 이하의 수준인 B등급 이하로 나타나 해당 기업들의 ESG 개선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등급과 A등급 기업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각각 6개, 3개 늘었으며 전반적으로 이사회 운영 관행이 개선됐고 사외이사의 전문성 강화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확대하는 등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C등급과 D등급 기업은 지난해보다 각각 17개, 12개 늘어 개선이 요구된다. 또한 등급이 하락한 기업이 132개인 반면 상승한 기업은 100개에 그쳐 등급 하락 기업이 상승 기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상장기업들의 ESG 수준이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실이다.

세부적인 평가를 살펴볼 때 사회 부문에서는 A+등급 기업이 26개사에서 38개사로, B+등급 기업도 104개에서 137개로 늘어나는 등 사회책임경영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환경 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은 기업이 4개에서 7개로 소폭 상승했지만 A등급 기업은 58개사에서 55개사로 줄어드는 등 지난해 평가와 유사했다. 지배구조 평가에서도 A+등급 기업은 3개에서 9개로 늘었지만, A등급 기업은 53개에서 27개로, B+등급 기업은 153개에서 144개로 줄어 전체적인 지배구조 평가 수준은 지난해와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ESG 통합 등급에서 A+를 받은 회사는 KB금융, SK㈜, SK텔레콤, S-Oil, 두산, 두산인프라코어, 삼성물산, 신한지주, 케이티엔지, 풀무원, 하나금융지주 등 11개사다. 이들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등급 부여 대상 기업 중 상위 1.5%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SK㈜는 지난 1일 개최된 '2018년 ESG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 5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연합>

상위 11개 ESG 등급 기업 가운데 금융회사는 3개로 KB금융, 신한지주는 환경, 지배구조 부문에서 모두 A+등급을 받았고 사회 부문에서 A를 받았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지배구조 등급 A+, 환경, 사회 등급 A를 받아 3개 항목이 전반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얻었다.

A등급을 받은 41개사도 주목할 만하다. LG디스플레이, SK네트웍스,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에 속한 유수의 대기업이 이름을 올린 가운데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전력공사 등이 공기업 중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HSD엔진, 해성디에스 등 다소 생소한 기업들도 A등급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HSD엔진은 엔진 생산 전문업체로 선박엔진 사업 및 디젤발전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환경오염방지시설업을 신규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국제해사기구(IMO) 유해가스 기준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디젤엔진과 효율이 높은 선박 기자재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HSD엔진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모두 A등급을 받았다.

해성디에스는 반도체 기판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용 반도체 기판 등 품질 검증이 매우 중요한 제품들을 생산하며 국제적으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소외계층 아동 및 홀몸 노인 지원, 장애인 일터 시설 개선 및 재활 후원 등 활발하게 지역사회에 기여한 것을 토대로 사회 부문 A+등급을 받았다. 또한 '해성바이오'라는 연구소 기업을 설립해 미생물 오염 검출 기술 개발에 힘쓰는 등 환경 분야에서도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환경 부문 A등급을 얻었다. 지배구조에서도 양호한 수준인 B+를 받았다.

B+등급을 받은 101개사에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汎) 현대가(家)의 계열사들이 다수 포진한 점이 눈길을 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현대그린푸드,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현대리바트, 현대모비스, 현대미포조선, 현대상선, 현대에이치씨엔, 현대위아, 현대중공업, 현대홈쇼핑 등이 모두 ESG 수준이 ‘보통’이라고 할 수 있는 B+등급을 받았다.

재계 3위 LG그룹의 주력회사인 LG전자도 B+등급에 속했다. LG전자는 환경, 사회 등급에서 모두 A등급을 받았으나 지배구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면을 드러내 B등급을 받으면서 통합 등급에서 손해를 봤다.

금융회사 가운데에서는 메리츠금융그룹에 속한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화재가 지배구조 등급에서 모두 A를 받았지만, 환경 등급에서는 B 이하의 평가를 받으며 통합 등급 B+로 평가됐다.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 NH투자증권, 기업은행, 우리은행, 제주은행 등의 금융회사도 통합 등급 B+로 분류됐다.

중견기업 가운데 제약회사를 살펴보면,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나눔과 헌신의 철학으로 현재까지 '착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한양행이 B+등급 기업에 포함됐다. 유한양행은 환경, 사회 등급에서 양호한 B+를 받았으나, 지배구조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평가를 받아 B 등급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국내 제약업계의 강자로 부상한 한미약품도 B+등급 기업이다. 한미약품은 임직원들이 '사랑의 헌혈'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 공헌을 위해 힘써왔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부문 A등급을 받았다. 이어 환경 등급은 B+, 지배구조 등급은 B로 평가됐다.

이 밖에도 JW중외제약이 사회, 지배구조 등급 B+, 환경 등급 B 이하로 통합 등급 B+를, 녹십자는 환경, 사회 등급이 B+를 기록했으나 지배구조 등급에서 B를 기록하며 통합 등급 B+로 분류됐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ESG 통합 등급이 B+등급인 기업까지만 명단을 공개했다. 위에서 언급한 B+등급 이상의 ESG 등급은 상위 21%에 해당하는 기업이며 ‘보통 이상’ 수준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해석된다. 반면 B 이하 등급의 기업은 "ESG 개선이 필요한 취약군에 속하는 기업"이라고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가 밝혔다.

ESG 개선이 필요한 B 이하 등급의 기업 574개사는 세부적으로 B, C, D등급으로 나뉘지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세부 등급을 공개하지 않았다. B, C, D등급 기업 명단은 내년부터 점차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간한국>은 B 이하 등급 기업들의 명단을 입수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ESG 세부 항목 평가 결과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B 이하 등급을 살펴보면 재계 7위의 GS그룹 계열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위권 재벌그룹으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평가라는 지적이다. GS㈜, GS건설, GS글로벌, GS리테일이 모두 ESG 통합 등급 B 이하로 평가됐다. 특히 이 4개사 가운데 GS㈜, GS글로벌, GS리테일은 모두 환경 부문에서 B 이하의 등급을 받아 환경경영 부문에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기아자동차도 환경, 사회 부문에서는 A등급을 받았으나 지배구조 부문에서 낙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C등급을 받아 비재무적 위험으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상장기업 727개사에 대한 2018년 ESG 통합 등급과 환경, 사회, 지배구조 부문의 세부 등급 부여 현황은 <주간한국> 2752호(배포 기간: 2018년 11월12일~11월18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경석 기자 hanks3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