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세탁기 모터부터 스마트폰 기술까지 해외 유출 ‘심각’

국가 핵심기술로 꼽히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에지 패널 관련 기술이 중국 BOE 등에 유출됐다.<삼성전자>

국가 간 기술력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자국 기술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다. 핵심 산업의 기술 유출은 기업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때 국내 업체들이 독점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은 이제 중국의 기간산업이 됐다.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업계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발표로는 2013년 이후 기술의 국외 유출 시도는 전기전자 66건, 기계 31건, 조선·자동차 23건 등 총 156건이 적발됐고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은 25건이 포함됐다. 경찰이 검거한 산업기술 유출사건은 약 700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실제 산업유출 사례는 무엇이 있었으며, 기술이 흘러 들어간 중국 기업과 산업의 성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명한다.

국내 드럼세탁기 모터 설계도면을 중국으로 유출하고 모터 생산이 가능한 설비까지 설치해주는 등 산업기술을 유출해 중국 회사에서 국내와 같은 고효율 제품을 생산·판매토록 한 일당 5명이 지난해 3월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의 한 중견기업 중국 현지법인 연구소장이던 50대 남성 A씨 등은 지난 2015년 1월 드럼세탁기 고효율 DD 모터(모터와 세탁조를 직접 연결)의 설계도면과 핵심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이직하는 대가로 넘겼다.

A씨는 핵심기술을 넘기는 대가로 중국 업체로부터 연봉 1억 6000만 원과 항공권·주택·차량 제공 등 각종 성과보수를 제의받았다. 나머지 공범들도 3억 원을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중국 업체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자 마음이 흔들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같은 기업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B씨는 2015년 2월 퇴사하면서 생산설비 설계도면 및 검사자료 등 관련 파일 5918개를 몰래 가지고 나갔다. B씨는 퇴사 후 광주에 자동화 설비 제작 업체를 설립한 뒤 중국 현지 사업장에 모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생산설비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들이 빼돌린 모터는 피해업체의 독자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64억 원이며 앞으로 추가 매출손실은 연간 2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대기오염물질 저감 설비도면 중국 유출

국내 중소기업이 보유한 대기오염물질 저감 설비도면을 중국으로 빼돌린 사례도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모 중소기업 차장 C(42)씨를 지난해 9월 구속했다.

C씨는 2년간 다닌 회사를 퇴직한 직후인 지난해 7월 4일 대기오염물질 저감 설비인 축열식 연소산화장치(RTO) 관련 비밀자료 일부를 이메일로 중국 모 공사 대표이사에게 전했다. C씨는 그 대가로 중국 돈 47만 6000 위안(8000만 원 상당)을 받은 것으로 경찰은 확인했다. C씨는 재직기간 RTO 판매·영업 업무를 맡았고, 해당 자료를 전적으로 보관·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씨가 퇴직 전부터 RTO 각종 도면과 운전 설명서, 부품단가 등 파일 수천 개를 개인용 저장매체에 옮겨두고 해당 공사와 기술 이전 계약을 하는 등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C씨가 중국 측에 넘긴 자료는 RTO 가동에 필요한 핵심 자료인 기계·전기 설비 중 기계 쪽만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기술을 넘겨줄 때 건당 2억 원을 받기로 계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첩보를 넘겨받아 C씨가 다니던 회사 관계자 진술 등을 확보하고 지난달 C씨를 검거했다.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가 7년간 80억 원을 들여 개발한 반도체 제조 부품 설비도면 등을 빼돌려 일본계 법인에서 동종 제품을 만든 피해회사 직원과 협력회사 직원 등 2명도 지난해 경찰에 입건됐다.

이들이 빼돌린 반도체 부품 제조설비 설계도면은 피해 업체가 2013년 1월 7년간 80억 원을 투자해 만든 부품인 ‘실리콘 카바이드 링’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제품으로 기존 제품보다 수명과 성능을 약 2~3배 향상한 것이다. 실리콘 카바이드 링은 반도체 칩 절삭 시 원형 판 아래에 까는 소모품 링으로 피해 업체가 7년간 노고를 들인 독자적 기술이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대한민국 기술대상'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상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경찰 측은 피해 업체가 기술유출 때문에 추후 연간 약 300억 원 상당의 매출감소, 연구개발비 등의 손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5600억원대 산업 기술 대만 유출

매출 1조 원대의 자동차 LED 제조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의 핵심 기술이 대만에 유출되기도 했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은 경기 안산에 있는 서울반도체의 전 상무 F씨가 연봉협상에 불만을 품고 대만의 경쟁업체로 이직해 5600억 원에 달하는 영업비밀과 기술 등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해 밝혔다.

김씨의 부하직원으로 서울반도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40대 G씨와 H씨 등 2명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F씨와 함께 구속됐다.

서울반도체는 1987년 설립돼 현재 전 세계 LED 기업 중 매출 규모 4위의 기업이다. F씨는 2013년 서울반도체에 입사해 2016년 6월까지 이 업체에서 상무로 근무했다. 당시 연봉협상이 잘 풀리지 않은 F씨는 경쟁업체인 대만 업체 에버라이트로 이직을 결정하고, 고액의 연봉을 약속받았다.

이후 김씨는 2016년 10월 에버라이트로 이직해 국내 LED 업체의 영업기밀 등을 빼돌려 대만산 LED 제품 개발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F씨는 부하 직원들에게 2배의 연봉과 에버라이트로의 이직을 제안했고, G씨와 H씨도 2016년 10월 에버라이트로 이직해 F씨를 도왔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이 빼돌린 핵심 기술 등은 서울반도체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연구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비용으로 환산하면 56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핵심기술로 꼽히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에지 패널 관련 기술이 중국 BOE 등에 유출돼 업계가 떠들썩했다. 지난해 8월 대검 첩보(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접수된 이 사건은 지난해 9~10월 수원지검이 압수수색(회사, 부산항만, 차명 휴대전화 등) 및 관련자 소환 조사에 나섰다. 이후 지난해 10월 톱텍의 설계팀장 I씨를 구속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톱텍이 위장 설립한 회사의 부사장(전 톱텍 전무) J씨를 구속하고, 톱텍의 사장 K씨도 구속 기소했다. 톱텍은 모바일 패널 제조 설비 등 자동화 설비를 제작하는 코스닥 상장회사로 2017년 12월 기준 매출액 1조 1384억 원, 영업이익 2117억 원 규모의 회사다.

I, J, K 씨는 공모해 지난해 4월 삼성으로부터 받은 플렉서블 올레드(Flexible OLED) 패널 3D 라미네이션(Lamination) 관련 설비설명서, 패널 도면 등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을 중국 수출 목적으로 위장용으로 설립한 회사에 유출해 위장 설립 회사가 155억 원 상당의 이익을 얻도록 했다.

이는 산업기술보호 및 유출방지에 관한 법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영업비밀 국외누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을 위반한 것으로,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위장 설립한 회사에서 삼성의 기술자료 및 삼성의 기술이 담긴 도면 등을 부정 사용했다. 또한, 삼성의 기술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3D 라미네이션 설비 16대를 중국에 수출했다. 3D 라미네이션 설비는 톱텍이 삼성전자와 NDA(비밀유지계약)를 체결하고 삼성전자에만 독점 납품하는 설비로서,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설비임을 잘 알면서도 중국 BOE에 동일 설비를 불법 수출한 혐의가 포착됐다.

스마트폰 OLED '에지 패널' 기술 유출

삼성 에지 패널은 갤럭시 노트9 등 고급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로 갤럭시 시리즈의 상징적 디자인이다. 에지 패널이 적용된 갤럭시 엣지, 갤럭시 노트 9 휴대전화가 그 예다. 특히 3D 라미네이션 기술은 삼성의 에지 패널 제조설비의 핵심 기술로, 삼성이 약 6년 동안 38명의 엔지니어, 1500억 원을 투자하여 개발한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이자 첨단기술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BOE를 비롯한 중국 회사들은 삼성이 수년간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아니한 채 삼성의 양산 수준의 품질과 수율을 확보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구축했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에서는 '디스플레이차이나(국제 신형 디스플레이 기술전) 2018'이 열려 중국 BOE가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보였다.

기술 유출 탓인지 중국 기업들은 TV 시장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삼성이나 LG를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중국 BOE는 지난해 첫 55인치 4K의 해상도를 지닌 OLED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BOE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푸저우시와 465억 위안(약 7조 5800억 원) 규모의 '6세대 플렉서블 AMOLED 생산설비 투자 협의'를 맺었다. BOE는 중국 최초로 플렉서블 AMOLED 공장을 가동한 회사로 2003년 현대전자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문이었던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급성장했다. BOE는 생산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할 경우 월 4만 8000장의 유리기판(1500㎜×1850㎜)을 양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투자 계획까지 포함해 BOE가 가동하는 6세대 AMOLED 공장은 총 4개로 늘어났다. 플렉서블 AMOLED는 주로 스마트폰에 탑재되지만, 폴더블폰(접이식 휴대전화) 등 앞으로의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07년 세계 최초 모바일용 중소형 AMOLED를 양산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OLED 점유율은 93.3%에 달한다. TV용 대형 OLED 패널 시장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독차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대형 OLED 패널 양산에 나선 이후 현재까지 OLED TV용 패널 양산은 사실상 LG디스플레이뿐이다.

BOE가 본격 양산을 시작할 경우 한국의 AMOLED 독점 지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중국의 AMOLED 패널 생산 가능 물량은 2018년 158만7000㎡에서 2022년 3492만3000㎡로 2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생산 가능 물량은 1473만6000㎡에서 3143만2000㎡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BOE의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예견된 만큼 실제 양산 시점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다만, 이제 투자 계획을 밝힌 것에 비춰봤을 때 실제 양산까지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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