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인수 땐 ‘독보적 입지’ 구축…경쟁 축소돼 ‘출혈 경쟁’ 줄어들 듯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는 지난 1983년 선박수주 및 건조량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선정된 후 현재까지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에 돌입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 등 4개 조선 관련 계열사를 거느린 막대한 규모의 조선사로 거듭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31일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지분의 투자를 유치해 조선통합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이 담긴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산업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인수합병에 대한 조건부 양해각서 등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과 관련해 “기본 합의서는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 회복 필요성에 대한 하나의 답안"이라며 "어느 한 기업이 다른 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구조의 거래를 추진해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하면서 경쟁의 효과도 함께 살려나가는 방식으로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제고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조선산업은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경기침체로 인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산업 전반에 대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나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식을 함께 해 왔다”고 설명했다.인수를 전제로 예상되는 현대중공업의 변화를 지배구조, 실적 측면에서 들여다봤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발표에 의하면 2018년 말까지 현대중공업그룹의 전 세계 수주 잔량은 1145만 CGT다. CGT는 선박의 단순한 무게(GT)에 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계수를 곱해 산출한 무게 단위다. 이 수치는 2위인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잔량 584만 CGT보다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조선 사업에서의 현대중공업의 독보적인 입지를 드러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조선, 특수선(전투함), 해양플랜트, 엔진 기계, 친환경 에너지, 건설장비 부문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사업 가운데 71%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 사업은 조선 부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인수가 진행되면 기존에 현대중공업지주가 현대중공업을 통해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에서 중간지주사인 조선합작법인이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 등 14개의 국내 법인과 9개의 외국 법인을 갖고 있다. 인수가 진행돼 조선합작법인이 생기면 총 23개의 법인이 조선합작법인 아래에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 1일 금융위원회에 보고된 내용에 의하면 현대중공업의 영위 사업 중 투자 부문 등 일정 부문을 제외한 조선 관련 사업 전부를 물적 분할(분할 대가를 분할법인에 내주는 기업 분할)해 완전 자회사를 신규 설립할 예정이다. 또한, 물적 분할 승인을 포함한 물적 분할의 주요 내용은 2019년 3월 8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확정된다.

23개의 계열사를 거느릴 조선합작법인은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공동 경영한다. 이 법인의 최대주주는 조선합작법인의 지분 28%를 보유하게 될 현대중공업지주다. 위와 같은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확정해야 가능하다. 산업은행은 3월 4일 최종 인수대상자를 결정한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실적은

지난해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전 세계 선박 발주의 무려 42%가량을 수주했다. 전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95% 이상을 따냈다. 세계 조선업계가 점점 살아나는 것은 물론 선박 관련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올해 선박 수주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목표 수주실적을 발표했다. 그룹 내 조선 3사의 올해 목표는 159억 달러(17조 8970억 원)로 지난해 목표 132억 달러(14조 8592억 원)보다 30%가량 높게 잡았다. 지난해 최종 수주 실적인 137억 달러(15조 4221억 원)와 비교해도 16% 높은 수치다. 그룹 목표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대중공업의 경영 목표는 117억 달러(조선 89억 달러·해양 19억 달러 등), 매출 8조 5815억 원 달성으로 그룹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클락슨에 의하면 세계 조선업계는 다시 호황기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2007년 5252척에 달했던 세계 선박 발주량은 금융위기로 2009년 1258척까지 하락했고, 2013년 3052척으로 회복세를 보였다가 2016년 629척에 그쳤다. 이후 지난해 1322척 발주가 이뤄졌고,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전체가 아닌 현대중공업만 놓고 봤을 때,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액을 117억 달러(13조 1695억 원)로 설정해 지난해 102억 달러(11조 4811억 원)보다 15%가량 높였다. 매출액은 8조 5815억 원을 목표로 한다.

영업이익 개선이 관건이다. 현대중공업의 지난 2014년 매출은 52조 5824억 원, 영업 손실은 3조 2495억 원에 달했다. 2015년에도 매출액 46조 2317억 원 영업 손실 1조 5401억 원을 기록하다가 2016년 매출액 22조 3004억 원, 영업 이익 3915억 원, 2017년 매출액 15조 4688억 원 영업 이익 146억 원으로 간신히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13조 1198억 원에 영업 손실은 4736억 원으로 다시 적자 전환했다.

업계 전문가들이 본 인수 후 '시너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두고 업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중공업의 역량과 대우조선해양이 가진 LNG 기술력이 합쳐지면 시장 내 영향력이 더욱더 강화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합병이 성사될 때 영업이나 자재조달, 기술력 등에서 시너지가 생길 수 있다"며 인수 합병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치열했던 조선업계 가격 인하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며 "LNG선 수주잔액도 3년 치가 다 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 종사 중인 한 관계자 역시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LNG 선에 대한 경쟁력 우위는 물론 가격 결정권까지 갖게 돼 이익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 조선사다. 대우조선해양도 삼성중공업과 세계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한 대형 조선사다. 세계 선박 시장에서 이들 간의 경쟁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가격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빈번했다. 즉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세 기업의 경쟁이 두 기업의 경쟁으로 줄어들면 가격 경쟁으로 말미암은 기업 간 출혈을 막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론도 심심찮게 나온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그리고 현대삼호중공업의 건조 선종이 겹친다는 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울산과 거제라는 지리적 차이로 설비를 줄이는 문제도 현실성이 없다”며 “대우조선해양은 현대 군산조선소와 같은 하청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길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도 “당분간 대우조선의 안정적 수익 확보가 불투명한데다가, 현대중공업지주는 유상증자 참여 등 재무부담이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선업종노조연대, 이정미, 추혜선 의원은 공동으로 ‘조선산업 생태계 무너뜨리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문제점 진단 토론회’를 21일 오후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다.(사진=김종훈 의원)

노조 측 반대, 넘어야 할 과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과 관련해 두 기업의 노조는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 18일 낸 보도자료에서 "오랜 불황을 거치며 겪었던 구조조정, 대규모 실업, 협력업체 도산, 지역경기 침체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도 전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매우 크다"며 이번 인수 건과 관련해 불편한 입장을 내비쳤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 21일 간부 80여 명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반대에 나섰다. 더불어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전체 조합원 가운데 51.58%가 파업을 찬성한 상황이다. 각 기업의 노조가 총파업까지 예고한 가운데 금속노조와 조선업계 노조 등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재벌 특혜'와 '조선산업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한경석 기자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조선 사업’ 성공 히스토리

1972년 한 어촌마을에서 조선사업을 시작해 세계 1위에 오른 현대중공업 조선사업 부문, 그 시작에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전이 있었다. 지금의 현대중공업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은 어땠을까. 세계 최고 선박 건조 기술을 가진 이 기업의 탄생 이야기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근대 조선업은 1937년 부산에서 조선선거공업(해방 후 대한조선공사)에서 시작됐다. 목선 건조 중심이었던 국내 조선 분야에 근대식 강선을 제조하는 조선소가 등장한 계기가 됐다.

6.25를 거치며 함정·화물선 등의 수리·정비 수요가 늘어나 조선업은 호황을 겪었다. 당시 소형선 건조는 일본에, 대형선은 미국, 노르웨이 등에 의존했다. 그러다 대한조선공사가 자체 기술로 1966년 2600톤급 화물선, 1968년 4000톤급 화물선을 건조하며 국내 조선산업이 시작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울산에 현대중공업을 건설하며 조선 강국의 시작을 알렸다. 정주영 회장은 1971년 조국의 산업화를 위해 조선소를 울산 미포만에 짓기로 했다. 투자금을 얻기 위해 영국으로 갔다. 정 회장은 런던에 현대 지점을 설립하고, 영국 최대 은행인 버클레이와 430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 도입을 협의했다. 차관 도입은 조선소 건설의 성패를 좌우하는 과제였다.

하지만 당시 대형 선박 건조 경험이 없는 '현대'라는 회사가 부족한 조선 기술로 돈을 요구하자 버클레이는 거부했다. 버클레이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정 회장은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로, 영국의 선박 컨설턴트사인 A&P애플도어사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찾아갔다. 롱바톰 회장을 통해 버클레이로부터 차관 도입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다. 정 회장을 만난 롱바톰 회장은 현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며 차관 상환 능력을 의심했고,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이에 정 회장은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그는 500원의 뒷면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켜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빠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 산업화가 늦어져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라 말했다. 롱바톰 회장의 생각은 변했다. 현대건설을 둘러본 롱바톰 회장은 현대가 조선소를 지어 독자적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는 추천서를 써 버클레이은행에 건넸고 차관 제공이 결정됐다.

하지만 국외로 유출되는 차관은 영국의 수출신용보증국 승인이 필요했다. 차관을 받아간 나라나 기업이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영국 정부가 보상해줘야 하므로 승인 기준이 까다로웠다.

선박을 구매할 선주가 있다는 증명서를 가지고 오면 차관을 승인해주겠다는 단서에 현대는 당장 선주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현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조선소는커녕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지도, 국외 조선업체가 만든 26만톤급 유조선 도면 한 장이 전부였다.

선주들 반응은 차가웠다. 조선소도 없고 유조선 건조 경험도 없는 회사에서 만든 선박을 구매하겠다는 선주는 없었다. 선박 수주 문제로 고민하던 정 회장은 롱바톰 회장으로부터 그리스 선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이 값싼 배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 회장은 스위스로 이동해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 26만 톤급 유조선 두 척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주력 선이 낡은 상황에서 경쟁사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저렴한 선박이 필요했던 리바노스 회장과 현대의 이해관계가 맞았다.

리바노스 회장은 정 회장이 타계한 2001년 현대중공업에 보낸 조문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을 때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고인의 모습을 보고 유조선을 발주해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1974년, 현대 울산조선소 준공

1972년 3월 울산 미포만에서는 정 회장을 비롯한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주한 각국 대사, 울산시민 등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울산조선소 기공식이 열렸다. 앞서 현대중공업이 조선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국내외에서는 우려가 컸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한 1만 7000톤급 선박이 가장 큰 배였는데 경험도 없는 현대가 26만 6000톤급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니 의구심이 있었다.

정 회장은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기간, 최소 비용으로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근면과 노력으로 정부와 국민의 협력을 얻어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공식 후 2년이 지난 1974년 6월 TV를 통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초대형 유조선 1·2호선 명명식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외교사절, 선주인 리바노스 회장, 울산시민 등 5만여 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업적을 이룩한 현대조선 전 사원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1·2호선의 명명은 중화학공업 발전의 새로운 기틀이며, 전진하는 국력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육영수 여사가 1호선을 '애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대서양의 남작)'으로 명명했고, 2호선은 영국 석유회사 셸의 맥파젠 회장 딸에 의해 '애틀랜틱 배러니(Atlantic Baroness, 대서양의 남작부인)'로 명명됐다. 이를 두고 리바노스 회장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배"라고 극찬했다.

조선소 준공 10년 만에 세계 1위 등극

현대중공업은 1975년 현대미포조선을 설립하고, 같은 해 육·해상 구조물을 제작하는 철구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1976년에는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는 엔진기계사업본부를 발족하며 석유파동을 이겨냈다.

조선소를 준공한 지 10년 후인 1983년(건조량 기준)에는 처음으로 일본 기업을 제치고 세계 조선업 1위에 올랐다. 1985년 일본의 한 경제주간지가 현대중공업을 조선 부문 세계 1위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한국의 조선산업을 이끌며 1993년 수주량 기준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당당히 올랐다. 이후 1999년부터 세계 조선업계 1위를 독차지했다.

한경석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