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센터 수사 막바지…화재 원인 알고도 은폐했는지에 초점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사진=한경석 기자)

독일 수입차 BMW가 차의 결함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국토교통부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현재 경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법원에서는 관련 소송이 수십 건에 이르며, 3월 한 달간 서울중앙지법에서 새로 시작되는 BMW 화재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만 해도 10건이 넘는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져 온 경찰의 수사 상황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BMW 차량 화재 사고가 잇따른 지난해 8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수사관 30명을 투입해 서울 중구에 있는 BMW코리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압수물품에는 업무 관련 서버와 내부 전산자료 등이 포함됐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8월 국회, 자동차·법률·소방·환경 전문가, 소비자단체(19명), 자동차안전연구원(13명) 등 32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연이은 BMW 차량의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민관합동조사단은 리콜 확대 및 과징금 부과 등을 골자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사건을 수개월 간 수사한 경찰은 민관합동조사단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았다.

국토교통부 “BMW 화재 원인은 본사의 설계 결함”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24일 BMW 화재 원인 조사 결과 및 조치 계획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BMW 화재 차량에 장착된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쿨러 내에서 냉각수가 끓는 ‘보일링(boiling)’ 현상을 확인했다. 냉각수 보일링 현상이 지속하면서 EGR 냉방장치에 반복적으로 열충격이 가해져 균열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민관합동조사단의 결론이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이 같은 현상이 EGR 냉방장치의 열용량 부족 등 당초 BMW 측의 차량 설계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BMW는 리콜계획서와 대국민 기자회견 등을 통해 화재 원인으로 EGR 냉방장치 누수 등을 꼽았지만, 설계 결함에 대해선 부인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BMW가 리콜 시정 대상을 축소한 정황도 파악했다. BMW는 지난해 7월 520d 모델 등 42개 차종 10만 6317대를 1차로 리콜 조치하고, 이후 10월에는 118d 모델 등 52개 차종 6만 5763대를 2차로 리콜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조사과정에서 일부 BMW 디젤차량이 애초에 리콜 대상 차량과 동일 엔진, 동일 EGR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1차 리콜에서 제외된 사실을 파악해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BMW는 뒤늦게 2차 리콜을 시작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은 흡기 다기관(intake manifold)에 대한 리콜도 필요하다고 봤다. 흡기 다기관은 엔진실린더에 공급되는 공기 및 배기가스 일부가 재순환되는 통로를 일컫는다. 흡기 다기관의 경우 오염되거나 약화돼 물리적 파손이 있을 수 있고, 실제 EGR 모듈을 교체한 리콜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민관합동조사단은 BMW가 결함을 은폐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다수 확보했다. 애초 BMW는 “국토교통부의 리콜 권고 이후인 지난해 7월 20일 이후 EGR 결함을 인지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10월 BMW 독일 본사에서 EGR 냉방장치 균열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설계 변경 등 화재 위험을 줄이려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 지난해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설계 결함을 미리 인지했다는 뜻이다.

또 지난해 7월부터 BMW 내부보고서에는 EGR 냉방장치 균열, 흡기 다기관 천공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리콜이 실시 되기 전인 지난해 상반기에 제출의무가 있었던 EGR 결함·흡기 다기관 천공 관련 기술분석자료를 최대 153일 지연해, 리콜 이후인 지난해 9월에서야 정부에 제출하는 등 결함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포착됐다.

조사 결과를 받은 국토교통부는 결함은폐·축소, 늑장 리콜을 한 혐의로 BMW를 검찰에 지난해 12월 고발했다. 또, 늑장 리콜에 대해서는 과징금 112억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경찰 “62개 서비스센터에 대해 수사 진행된 상황”

경찰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전달받은 자료를 통해 화재 원인과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BMW코리아 본사 및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부품 납품업체를 압수수색하고, 본사 기술자 등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이를 통해 조만간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이사 등 주요 관계자를 소환할 방침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BMW 상무 1명과 직원 4명 등 임직원 5명을 자동차관리법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

이후 구체적인 수사 상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김효준 대표이사 소환과 관련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라고 전했다. 또 “현재 62곳에 이르는 BMW 서비스센터에 관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이 수사가 끝나는 대로 다른 조사도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BMW코리아 측이 화재 원인을 알고도 은폐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뿐, 화재 원인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 피해자들의 대리인인 하종선 변호사는 “지능범죄수사대가 신속하게 BMW코리아에 대해 압수수색하고, BMW에 EGR 부품을 공급한 업체 코렌스를 수사했다”고 평가했다.

하 변호사는 “경찰이 60여 개 서비스센터를 조사해서 광범위하게 관련 증거를 확보했기에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치밀하게 수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김효준 회장을 비롯한 BMW코리아 임원들에 대한 소환 여부에 대해 기다려볼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부터 잇단 차량 화재 사고가 발생한 수입차 브랜드 BMW의 결함은폐 의혹 수사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BMW코리아, 배출가스 인증서류 위조해 벌금 145억 원

BMW 화재와 관련한 경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BMW코리아에게 벌금 145억 원을 부과하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현덕 판사는 대기환경보전법 및 관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BMW코리아에 대해 벌금 145억 원을 선고했다. 배출가스 인증 업무를 담당한 전·현직 직원 3명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8~10월의 실형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했다. 나머지 직원 3명에게는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MW코리아는 한국 법령을 준수할 의지 없이 자동차를 수입·판매하며 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했다”며 BMW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BMW코리아에 범행의 이익이 모두 귀속됐고 그 규모도 적지 않다”며 “법령 준수와 관련한 직원들의 관리감독에도 소홀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인증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배출가스는 대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 차량 판매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법에 규정했다”며 “장기간 변조된 시험 성적서로 차량을 인증받아 수입한 행위는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범행으로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행정당국의 업무를 침해했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BMW코리아는 지난 2011년부터 배출가스 시험 성적서를 조작해 국립환경과학원 인증을 받았다. 이런 수법으로 인증받은 차량 2만9000여 대를 수입한 것이 드러났다.

BMW, 손해배상 소송 첫 재판서 “리콜한 차량에 추가 배상 책임 없다”

잇따른 화재 사고로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BMW코리아는 리콜한 차량에 대한 추가 배상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이모씨 등은 BMW 차량이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으니 그에 대한 불법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정신적 손해도 물어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모 씨 등 차주 11명이 BMW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해당 재판에서 BMW 측은 “EGR 냉방장치에 결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리콜을 진행 중”이라며 “리콜을 통해 충분히 하자가 치유된 만큼 별도로 법적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MW 측은 소를 제기한 차주 측에 “청구 원인부터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 무엇에 대한 손해배상을 얼마큼 묻는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는 요청이었던 것.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조미옥 부장판사)도 차주 측에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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