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철강·조선·석유화학 내리막…‘효자’반도체도 하락세…하반기 기대

자동차는 내수시장이 사실상 멈춘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 주요시장 침체와 함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은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에 균열이 생기면서 올해 전망이 불투명하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 품목들은 대외변수에 취약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호황을 누렸던 반도체와 석유화학 경기가 흔들리고 있고, 자동차 산업은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라는 이중고와 싸우고 있다. 지난해 일감이 반짝 증가한 조선업은 올해 다시 시험대에 서 있다. 철강은 중국발 공급과잉에 가격이 떨어진 상태다. 제조업의 핵심 대기업들이 흔들리며 연쇄적으로 법원에 파산회생을 신청한 중소기업들이 지난 1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의 추락 여파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자동차 ‘우려’…조선,철강,정유 ‘시름’

국내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2년 10개월 만에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심리가 얼어붙자 소비자심리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경제심리지수가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7.0,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5로 각각 조사됐다. BSI는 46개월 연속, CCSI는 11개월 연속 100을 밑돌고 있다. 기업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BSI와 소비자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CC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경기가 전 분기보다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특히 제조업 전망 BSI(69)는 2009년 4월(59) 이후 9년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반도체 수요 감소 영향으로 전자·영상·통신장비(70)는 전월 대비 8포인트 빠졌다. 이는 2016년 6월(66)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타 기계·장비(63)도 5포인트 하락했다. 반도체 관련 설비 투자가 둔화한 영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3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전년 동월 대비 증감에 주목해 지표를 분석했다. 생산과 관련해서는 “광공업(0.6%)과 건설업(-11.8%) 생산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전반적인 산업생산 증가세는 미약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1위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올 들어 20%넘게 감소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실적 전망치가 가파르게 하향 조정되며 실적 부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중국에서 설비 가동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반도체 시장 판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조3293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46.8% 급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SK하이닉스는 2조866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2.2%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일부 증권사에선 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는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을 6조8000억원까지 낮춰 잡았다. 한화투자증권도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이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반도체를 뺀 나머지 ICT 수출액이 2013년 이후 5년 간 계속 내리막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와 함께 한때 한국 수출의 양대 산맥이던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작년보다 소폭 회복할 전망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9개 자동차·부품 업체들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4조753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6%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내림세를 만회하긴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업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는 지난 2년간 최악의 실적부진을 경험했다. 지난해 매출액 97조2516억원, 영업이익 2조422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0.9%늘었으나 영업이익은 47.1%나 감소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2010년 새로운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3조원을 밑돌며 최저치를 나타냈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012년 8조436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6년 연속 하락세다.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2.5%로 뚝 떨어졌다.

글로벌 업황이 안 좋았던 조선과 후방산업인 철강업도 연쇄적으로 실적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철강과 중공업 등 올해 상반기 실적 추정치가 3곳 이상 나온 23개 코스피 상장 업체의 영업이익을 합산한 결과 전년 동기와 비교해 17.2% 줄어든 9조6604억원으로 집계됐다.

조선은 지난해 611억원 가량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조선과 자동차를 주요 거래처로 두고 있는 철강(금속 및 광물)업종 역시 동반 부진을 면치 못했다. 철강 업종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 줄어든 8조2238억원을 기록했다. 감소폭은 4%에 불과하지만 포스코를 제외하고 현대제철o동국제강 등 여타 철강업체들은 30% 안팎의 영업이익 감소세를 보였다. 포스코가 별도 기준 전년대비 31.2% 증가한 3조809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포스코 착시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정유(석유 및 가스)업종의 실적도 크게 낮아졌다. 지난해 10월 배럴당 76달러 대였던 국제유가는 지난해 말에는 배럴당 4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이에 해당 업종의 영업이익은 10조9223억원으로 전년 대비 21.1%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과 에스오일 등 정유 4사는 지난해 4분기, 평균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어닝쇼크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반도체에만 매몰된 구조…대외 변동성에 ‘휘청’

한국 경제의 수출품목 집중도는 해외 주요 수출국 평균치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이 6000억달러(약 680조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수출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대기업 일부 품목에 편중돼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5분의 1을 떠받들고 있는 반도체에만 의존해왔다. 더불어 다른 주력 제조업의 부진과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실패도 제조업 위기를 부추겼다. 중국의 부상에 따라 향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정은미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제조업이 부상하면서 인접한 한국의 철강, 조선, 자동차와 같은 주력 제조업에서 이미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며 “중국이 ‘중국 제조 2025’로 대표되는 첨단 산업 육성에 집중하면서 반도체와 같은 주력 산업과의 중복성이 높아 중,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수출 편중성 분석 및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0대 수출품목 구성에 큰 변화가 없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제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1990년대와 비교하면 의류ㆍ섬유관련 수출품이 빠진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반도체는 지난 25년간 한국 최대 수출품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의 쏠림현상은 2010년대 특히 두드러졌다. 2016년 12.56%였던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17년 17.07%, 지난해 20.94%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수출 1위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14%를 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이 국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앞서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시장 전망치를 작년대비 -3.3%로 낮췄고,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경우 -14.2% 역성장을 예상했다. 한경연 보고서는 WSTS의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점하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태규 한경연 연구위원은 “올해 1,2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격감한 사실을 볼 때 WSTS의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최대 20조원 이상의 생산유발액 감소와 5만명이상의 직간접 고용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올해 반도체는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조정 폭이 당초 예상보다 커진데 따른 결과다.

박원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18년 58조9000억원에서 2019년 29조7000억원으로 49.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영업이익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가격 하락폭이 예상보다 가파르고, 수요부진이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분기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이 각각 25%, 15%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D램에선 주요 서버 고객들이 구매를 서두르지 않아 재고가 늘면서 가격 하락 폭이 더 커졌고, 낸드플래시는 경쟁사들의 공급량 증가로 공급과잉 상황이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하반기에는 반도체 업체 실적이 회복될 가능성 있다는 전망도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 실적은 상반기 실적은 높은 재고와 서버 수요 부진으로 감소폭이 클 전망이지만, 하반기에는 인텔의 CPU 신제품 2가지가 발표될 예정이라 하반기 IT 수요개선으로 이어지고, 메모리 공급 축소 등에 힘입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자동차는 내수시장이 사실상 멈춘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 침체와 함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은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기아차는 가동률 부진에 빠진 중국 장쑤성 옌청 1공장에서 더 이상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중국 합작법인 주주인 웨다그룹에 넘겨 전기차(EV) 전용 공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생산과 수출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자동차 생산은 402만9000대로 전년 대비 2.1% 줄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 순위에서도 멕시코에 밀려 7위로 떨어졌다. 수출도 3.2% 감소한 244만9000대에 머물렀다. 내수판매는 181만3000대로 전년 대비 1.1% 늘었지만 이는 개별소비세 인하와 같은 단기 처방의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더구나 이 같은 증가폭도 수입차 판매 확대가 주 요인이었다. 지난해 국산차 내수판매는 0.7% 감소한 반면, 수입차는 12.0%나 늘었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의 경우, 신차 출시 사이클이 빨라지고 있고 주력 신차 출시가 아직 제한적인 규모지만 미국 시장부터 재고가 줄어들고 있고 차 가격 할인 폭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90%이상의 현대차그룹 매출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부품업체들도 지난해 4분기부터 실적이 호전되고 신차출시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진 국내 및 미국 공장에서 생산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이에 따른 수혜가 부품업체들에게도 이전되고 있다”며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국내 조선소들은 글로벌 조선사들의 추격과 출혈경쟁에 최근 빅3에서 빅2체제로 변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연결 기준 영업손실 4763억원을 기록하며 경영난을 겪고 있다. 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시황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실제 건조시기를 고려하면 낙관적으로만 보기에는 이르다는 업계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2016~2017년 수주난으로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20.2% 감소한 바 있다. 여기에 후판 등 원자재 가격 인상과 최저임금 상승 등에 따른 고정비 부담, 중국o일본 등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출혈경쟁을 막고 영업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키로 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최대 과제로 ‘흑자 전환’을 내세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특히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영업 손실을 봤고, 수주 감소로 매출은 2017년 7조9012억원에서 33.4% 줄어든 5조2651억원으로 축소됐다.

배세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 수주의 대부분은 LNG선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발주면에서 큰 성과는 나오기 힘들다. 반면 지금이 탱커 폐선율 싸이클 시기라 교체 수요가 많아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긍정적인 상황이라 향후 몇 년간 탱크 발주세는 이어질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철강업계는 주요 거래처인 자동차·조선 등의 부진으로 내수 판매가 위축됐고 밖으로는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의 수입 규제 공격을 받았다. 이 여파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은 각각 25.0%, 14.5% 줄었다. 철강 수출도 2017년 19.9% 증가에서 작년 0.7% 감소로 뚝 떨어졌다.

정유사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8조원을 돌파했지만 4분기부터 유가가 급락, 재고평가 손실액이 발생하면서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유사는 원유를 사고파는데 2~3개월이 걸린다. 유가가 떨어지면 비싸게 사서 저렴하게 판매하게 돼 손실을 본다. 정제마진 하락도 실적 악화에 부채질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정유제품 판매가에서 원유 구입가격을 뺀 가격으로 정유사 수익성을 나타낸다. 미국 ECC(애탄크레커) 증설에 따른 석유제품 생산량이 증가한 반면,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 정제마진 약세로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유업계가 몇 년간 누려온 슈퍼사이클이 끝나고 다운사이클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중국과 신흥국 중심의 경기 활성화에 따라 초과수요가 이어졌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호황을 누릴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제조업 위기로 올해 수출도 감소추세다. 사진은 수출첨병 항만의 모습.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 지양해야…노동유연성 제고도

수출 품목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경기 변동 등 대외변수에 상관없이 일정 수요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은미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부문에서 부가가치율 향상과 산업혁신 역량의 강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숙 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소극적 목표가 아니라 구조 고도화라는 적극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특정 산업에 대한 수출 집중도를 낮추고 주요 장비의 해외 의존을 극복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중간재 생산과 기술 우의의 제조업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조언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중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중화학 공업 등 장치산업들이 주로 가격 경쟁력 위주로 성장을 유지해 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제조업의 위기를 진단했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 개척을 포함해 노동시장의 효율적인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압박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류재우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의 영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제조업의 구조에서 낙수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핵심 제조업의 규제 완화를 해주면서 투자 유인을 맞춰야한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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