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침해부터 국익훼손 논쟁까지 ‘점입가경’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래 성장 동력 사업인 2차 전지 핵심기술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30일 “2차 전지 핵심기술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도 곧장 “기업의 정당한 영업 활동에 불필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두 회사 모두 배터리 사업 부문을 주력 사업이자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어 소송전 결과에 따라 명운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이 있는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와 연방법원이 소송과정에 강력한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를 두고 있어 증거 은폐가 어렵고, 위반할 경우 소송 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에 따르면 해당 소송은 LG화학 조사 결과,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 이후 2차 전지 관련 핵심 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은 2017년부터 2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총 76명의 인력을 데려간 것으로 확인됐다. 76명 중에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도 포함됐다.

LG화학은 현재도 SK이노베이션이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LG화학의 인력을 대상으로 추가 채용을 진행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입사지원 서류 항목 중 2차 전지 양산 기술 및 공정기술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LG화학이 근거로 제시하는 입사지원 서류에는 LG화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업무내역은 물론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도 기술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의 SK이노베이션 입사지원 서류에는 전극 제조 공정 관련 프로젝트 내용이 당시 상황과 배경, 목적, 프로젝트 결과물인 개선 방안과 성과 등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 입사지원 인원들은 이직 전 LG화학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여건에서 1900여건의 핵심 기술 문서를 다운로드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앞서 LG화학은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 SK이노베이션측에 내용증명을 통해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LG화학은 또 영업비밀 침해가 발견될 경우 법적 조치도 강행할 것을 예고했다. LG화학은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이 이를 이용해 개발 및 수주에 활용하는 등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해, 법적대응을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LG화학 측은 “(해당 소송은) 개인의 전직의 자유 범위를 벗어나 LG화학의 2차전지 핵심 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영업비밀을 유출해간 심각한 위법행위”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이 같은 행위가 선두업체 수준의 자동차용 배터리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하고, 동시에 미국을 포함한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LG화학은 핵심 기술과 인력 유출 후 SK이노베이션이 급성장했다고 의문도 제기한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016년 말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30GWh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 기준으로는 430GWh로 14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은 “해당 소송은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LG화학은 프로젝트에 함께한 팀원 실명을 기술하는 것은 경력 증명 서류 양식 중 대표적”이라는 SK이노베이션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난 2일“이러한 내용을 기술하게 한 것 자체가 핵심기술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이라고 항의했다.

면접 전·후와 무관하게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와 리더의 실명, 상세한 성과 내역을 기술해 개인 업무와 협업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협업을 한 주요 연구 인력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어떤 업계에서도 절대 일상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은 수입금지요청에 대해 ITC가 5월 중 조사를 시작하면 내년 하반기 최종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러설 생각 없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또 LG화학의 공세가 이어지자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정면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 등의 관점에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투명한 공개채용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경력직원을 채용해 오고 있으며, 경력직으로의 이동은 당연히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 등을 고려한 이동 인력 당사자 의사에 따라 진행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선을 그었다.

SK이노베이션은 SK의 배터리 사업이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제품력을 기반으로 투명하고 윈윈(Win-win)에 기반한 공정경쟁을 통해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확실히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 경쟁을 통한 영업활동은 자동차 산업 글로벌 리더들의 SK 배터리 선택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 이동은 ‘경력직 채용’이라는 자연스러운 이직이며, 자사의 기술력과 제품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에서 제기한 이슈들을 명확하게 파악, 필요한 법적인 절차들을 통해 확실하게 소명해 나갈 것”이라면서 “소송과는 별개로 글로벌 `톱3 배터리’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 본연의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일 추가 입장 자료를 통해 “배터리 개발기술 및 생산방식이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며 “따라서 경쟁사가 주장하는 형태인 빼오기 식으로 인력을 채용한 적이 없고 모두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기업과 설계와 생산 기술 개발 방식의 차이가 커 특정 경쟁사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배터리 핵심소재 하나인 양극재의 경우, 해외 업체의 NCM622를 구매해 사용하는 경쟁사와 달리 SK이노베이션은 국내 파트너와 양극재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방식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설명한다.

생산 공정방식에서도 전극을 쌓아 붙여 접는 방식(Stacking&Folding 또는 Lamination&Stacking)인 경쟁사와 달리 SK이노베이션은 전극을 먼저 낱장으로 재단 후 분리막과 번갈아가면서 쌓는 방식(Zigzag Stacking)을 적용하고 있다고 차이점을 말했다. 또한 “경쟁사가 비신사적이고 근거도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 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강력하고 엄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경쟁사간 불거진 문제인데다가 우리 기업에 대한 해외시장에서의 평판 저해와 입찰 시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해 정면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LG화학의 비방이 계속되면서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회사가 먼저 개별 구성원을 직접 접촉해 채용하는 이른바 ‘빼오기 식’ 채용이 아니라 공개채용을 통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후보자들 중에서 채용해 왔다며 인력 빼가기 주장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LG화학이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한 문건에 대해선 “후보자들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정리한 자료로 SK이노베이션 내부 기술력을 기준으로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라며 “모두 파기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형태는 대부분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 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경력직 구성원들이 혹시라도 전 직장의 정보를 활용하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전 직장 정보 활용금지’ 서약서를 ▲지원 시 ▲채용 후 2번에 걸쳐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은 “모든 경력직원들의 이직 사유는 SK의 우수한 기업문화와 회사와 본인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라며 “경쟁사에서 온 직원들의 사유도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임수길 SK이노베이션 홍보실장은 “전기차 시장은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만큼, 업계 모두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밸류체인 전체가 공동으로 발전해야 할 시점에 이런 식의 경쟁사 깎아 내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은 경쟁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고객과 시장 보호를 위해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려되는 치킨게임 양상

한편 핵심기술 침해 소송을 비롯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의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면, 제 2의 반도체로 불리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가 수주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소송전이 시작되기 앞선 지난달 24일 LG화학은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추격으로 수주 경쟁이 심화되고 있냐는 질문에 “경쟁사들이 공격적으로 수주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는 수익성, 경제성이 전제되지 않는 수주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SK이노베이션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시장은 그 대상을 SK이노베이션으로 해석했다. SK이노베이션은 다음날인 25일 열린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저가 수주로 인한 장기적인 수익성 우려와 관련해 “경쟁사에서 언급한 것이 특정 업체를 지칭한 게 아니”라며 “수주 전략은 테크놀로지와 원가 경쟁력에 기반하는 만큼 외부에서 저가 수주 여부를 평가할 처지에 있지 않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양사가 신경전과 소송전을 주고 받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이 경화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점유율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SNE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상위 10개 기업 중 일본업체가 3곳, 중국업체가 5곳, 한국업체가 2곳(LG화학, 삼성SDI)으로 나타났다. LG화학과 삼성SDI는 2017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에서 각각 3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8년 각각 4위와 6위에 머물렀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 산업을 적극 육성하면서 한국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여러 모로 우리 기업 간 수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라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우리 기업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줄 것을 어느 정도 약속하고 기업 환경 개선에도 공감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체감은 없는 것 같다”면서 “수출 중심의 사업의 경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향후 경기 침체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휘호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