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 방한

지난달 2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박 2일의 일정으로 방한했다. 사우디 왕위계승자의 방한은 21년만이다. 우리나라와 사우디는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사우디로부터 약 1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정상회담을 갖고 제조업과 수소에너지 등 신사업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찬 후 두 정상은 에쓰오일 복합 석유화학시설 준공 기념식에도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양국 정상은 총 83억 달러(약 9조 6000억 원) 규모의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두 정상은 수소생산·저장·운송 등 수소차와 연료전지와 관련한 수소 경제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중동시장에서의 수소 경제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우리 정부는 친환경차, 수소에너지, 수소 연료전지를 핵심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기업 MOU 총 8건 체결

사우디의 10조원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 국내 대기업들도 총력을 기울였다. 정부 간 협력 외에도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국내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 등과 약 10조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특히 아람코는 국내 대기업들과 총 12개의 사업을 함께하기로 했다.

정부 간 MOU 외에도 양국 기업들은 총 8건의 MOU를 맺었다. 에쓰오일 복합 석유화학시설은 국내 정유·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원이 투자됐다. 에쓰오일은 복합석유화학 시설 외에도 약 7조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울산에 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은 사우디 킹살만 조선소에 총 4억 2000만 달러의 선박엔진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아람코와의 협력관계를 조선과 석유화학까지 확대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사우디의 원유를 공급받는 조건의 원유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SK가스는 사우디 석유화학기업인 AGIC와 총 18억 달러 규모의 합작 투자에 나선다. 사우디에 프로필렌 생산공장을 건설하며 폴리프로필렌 생산공장도 건설하는 내용이다. 총 18억 4000만 달러 수준이다. 아람코는 한국석유공사와는 비축유 공동협력에 나서며, 현대오일뱅크와는 석유화학 R&D에 나선다. 현대자동차와 아람코는 수소에너지와 관련한 미래차 기술협력에 나선다. 그 외 사우디 왕립기술원은 우리의 로봇산업진흥원과 더불어 로봇 전문지식을 공유하기로 했다.

위는 LG 구광모 회장,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오른쪽) 면담, 가운데는 SK 최태원 회장, 아래는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 사우디 프레스 에이전시 인스타그램

사우디, 8번째 규모의 무역 상대국

사우디는 ‘비전 2030’으로 탈(脫) 석유 비전을 내놨는데 이에 한국이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일본·중국·프랑스·독일·영국·인도 등과 함께 ’비전 2030‘ 실현을 위한 8대 전략적 협력 국가다. 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청와대에서 미래형 자동차, 수소경제 등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신산업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사우디와의 무역 규모는 지난해 기준 302억 9000만 달러로 한국의 8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선박 해양구조물, 전력용 기기 등이다. 특히 자동차는 32억 5200만 달러 규모다.

양국은 내년에 ‘비전 2030위원회’를 위한 ‘비전오피스’도 서울에 개소할 예정이다. 이 기구를 통해 양국 간 활발한 경제 협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양국은 탈석유 산업 다각화를 이끌고 있는 비전위원회를 통해 ▲제조·에너지 ▲디지털·스마트 인프라 ▲보건·생명과학 ▲중소기업·투자 ▲역량 강화 등 다섯 개 분야에서 40여 개에 달하는 협력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방한을 통해 양국 간 조선, 석유화학은 물론 로봇, 친환경차, 수소에너지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원전 협력은 아직

원전 분야에서도 사우디와의 구체적인 협력을 기대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현재 사우디는 원전 2기를 건설하고 있다. 수주 과정에 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엔 후보가 압축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일정 자체가 내년으로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공동 발표문에서 “사우디 최초의 상용 원전 사업 입찰에 대한민국이 계속 참여한 것을 환영했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빈 살만 5대 기업 총수와 회동

지난달 26일 빈 살만 왕세자는 국내 5대 그룹 총수와 승지원에서 회동했다. 승지원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전 회장이 살던 집을 개조한 곳이다. 이곳에서 재계총수들이 모인 것은 2010년 7월 전경련 회장단 만찬 이후 9년 만이다. 이날 회동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대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모였다. 이 만남은 이재용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돌려 성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5대 기업 총수들이 정부의 공식 행사가 아닌 자리에서 모두 모인 것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구광모 대표는 빈 살만 왕세자와 세 차례나 만났다. 장소와 횟수 등을 보면 이례적인 행보다. 이런 까닭에 승지원 회동을 시작으로 거대한 중동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기업들의 연합체가 꾸려지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승지원 회동에서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에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을 요청한 것이 그 배경이다.

천현빈 기자

<박스>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Mr. Everything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누구?

빈 살만 왕세자로 불리는 그의 공식 이름은 빈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다. 그의 공식 직함은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계승 서열 1위로 올라서며 사실상 사우디의 실권자가 됐다.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지난 2015년 이복동생인 무크린 왕세자를 폐위하고 빈 나예프 내무장관을 제1왕위 계승자로 승격시켰지만 2년 만에 자신의 아들인 빈 살만 왕자를 제1왕위 계승자로 임명했다. 사우디는 장자 상속이 아닌 형제 상속제였으나 빈 살만 왕세자부터 부자 간 왕위 계승이 이뤄지는 것이다.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연합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는 전 세계 에너지 사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통한다. 또한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통해 세계적인 혁신 기업인 우버 등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빈 살만 왕세자는 킹사우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리야드경쟁위원회 사무총장, 킹압둘아지즈 연구기록보관서 재단 의장 등을 지냈다. 그는 과감한 국가개혁을 이끌면서 왕위 승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국가 프로젝트로는 ▲홍해 프로젝트 ▲미래 신도시 건설 MEOM 프로젝트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단지 키디야 프로젝트 등이 있다. 또한 38년 만에 처음으로 사우디 상용 영화관을 개장했고 사우디 최초로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의 대표적인 ‘비전2030’ 정책으로 사회 개혁을 역동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