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 류진 풍산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트럼프 대통령,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 허영인 SPC 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정의선 현대차수석 부회장. [AP 연합뉴스]
지난달 방한한 모하메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빈살만 왕세자는 저녁 만찬 후 5대 그룹 총수와 승지원 차(茶)담회를 가졌다. 이어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투자에 적극적인 그룹들을 일일이 콕 집어 일어나도록 한 뒤 감사 인사를 하며 미국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삼성·현대차·SK·CJ·두산 등을 일일이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기업 총수들에게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주기를 제안했다. 앞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훌륭한 비즈니스 천재들과 함께 자리를 해서 기쁘다”면서 “지금보다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기에 더 좋은 적절한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기업들을 필두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과 반갑게 손을 맞잡는 모습을 연출하며 “너무 훌륭한 많은 일들을 성취하셨는데 제 옆에서 같이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만 같다. 지난달에 워싱턴을 방문해서 3조 6000억원 투자하기로 해주셨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투자에 감사의 뜻을 밝히면서 추가로 투자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는 평이다.

애초 재계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업인 회동에서 중국 화웨이에 대한 압박 동참을 요청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5대 그룹 총수 중 LG그룹에서는 구광모 회장 대신 권영수 부회장이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권 부회장이 회담에 대리 참석한 이유로 화웨이와 LG 간 비즈니스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LG유플러스가 트럼프 행정부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화웨이로부터 4G LTE, 5G 등 이동통신 장비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무역협상 재개 합의가 이뤄진 때문에 이와 관련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덕분에 미중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기 어려웠던 국내 기업들은 당분간 안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간담회에는 유통 대기업 총수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비롯해 허영인 SPC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박준 농심 부회장과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도 이날 간담회에 함께 했으며, 국내 토종 수입 과일 유통업체인 진원무역도 미국에서 오렌지·자몽·포도·체리·아보카도·아몬드 등을 수입하고 있는 점을 인정받아 이 자리에 초청됐다.

지금까지 미국 사업에 총 30억 달러를 투자한 CJ는 추가 대미 투자계획을 밝혔다. 특히 CJ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특히 식품과 물류 분야에 중점적으로 총 28억 달러를 투자했다. CJ그룹은 지난해 냉동식품 전문업체인 슈완스 컴퍼니와 카히키 인수를 포함해 약 2조7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CJ대한통운은 DSC 로지스틱스 인수를 포함해 약 2500억 원 등을 투자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 플러튼과 동부 뉴저지 등에 만두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CGV 극장, 뚜레쥬르 등 식품 및 콘텐츠 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손 회장은 “향후 미국 식품 및 유통 사업에 추가로 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CJ그룹 측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에 더 투자하겠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으로, 앞으로 최대 10억 달러 정도 더 투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유통 대기업 총수들은 간담회 이후, 기존에 알려졌던 대미 투자 계획만 내놓았다. 미국에서 라면 판매량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농심은 미국 동부에 1억 달러를 투자해 추가로 라면 공장을 세워 현지 수요를 맞출 계획이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2005년 미국에 진출해 현지 생산 시설 2곳을 설립하는 등 총 800억 원 가량을 현지에 투자했는데 ‘파리바게뜨’를 앞세워 주요 도시에 7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향후 2030년까지 미국 전역에 2000개 매장을 열어 총 6만 여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이마트를 통해 올 하반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그로서란트 매장인 ‘PK마켓’을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방한한 빈 살만 왕세자는 세계 정보통신기술(ICT)분야 선도업체인 삼성, LG그룹 등 4대 그룹 총수와 만나 미래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가 참석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ICT 산업 육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 구 회장과는 주로 5G(5세대 이동통신), AI(인공지능) 등과 관련해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구 회장은 일찌감치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으로 5G와 AI를 꼽고 해당 분야 투자와 연구개발(R&D), 인재 확보 등에 속도를 내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아울러 ‘설계·조달·시공(EPC)’ 분야도 대화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EPC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따낸 건설사가 설계·조달·시공을 모두 전담하는 수주 사업을 뜻한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