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강국 계속 유지하려면

갖은 희생과 역경을 딛고 수출 강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삼만리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는 시대인 까닭에 한 순간의 방심이 도태를 낳을 수 있어서다. 앞으로의 경제 중심은 단연 ‘4차 산업혁명’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의 여러 기업이 최근 부쩍 다분야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제조업을 필두로 산업 혁신의 발목을 잡는 정부 규제 해소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서울 마포구 에스플렉스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 및 제1차 회의' 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사진=4차 산업혁명위원회 제공)
삐걱대는 4차 산업혁명 준비

스마트폰, 스마트산업단지, 스마트모빌리티,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스마트물류, 스마트교통, 스마트금융…. 바야흐로 ‘스마트 시대’다. 스마트하지 않으면 수출과 수입이 일제히 차질을 빚을 시대도 코앞이다.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 등을 기치로 내세우고, 정부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이 때문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 얼마나 적응하느냐에 따라 수출 강국의 지위가 달라질 수도 있어서다.

한국은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밝힌 해당 분야 주요지표를 살펴보면 ▲지난해 사물인터넷(IoT) 기기 연결대수는 1865만대로 전년 대비 약 400만개 늘었다. ▲같은 기간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수는 9개 늘은 44개이며 ▲스마트공장 수는 7903개로 2900곳 가량 증가했다. ▲2017년 제조업용 로봇 생산액은 3조181억원 수준으로 약 4000억원가량 증액됐다.

이밖에도 위원회는 20여개 부처가 공동으로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을 마련, 관련 정책을 각 부처별로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도 설명했다. 2022년까지는 스마트공장 확산 및 고도화를 실현해 국내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19곳의 스마트 제조혁신센터를 거점 삼아 과기부와 산업부 및 중기부 등이 협업해 스마트공장의 보급부터 사후관리까지 전방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올해 상반기에 발표하겠다던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만 해도 깜깜 무소식이다. 이는 구체적 방안 마련의 어려움과 함께 선언문 등 무의미한 형식에 신경을 쓴 영향이기도 하다. 위원회 관계자는 “위원들의 이견을 줄이는 과정이 길어져 일정이 늦춰졌다”면서도 “당초 각 권고안만 넣으려던 계획에 선언문과 같은 프롤로그 삽입도 더하기로 해 결과는 오는 10월말~11월초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

차량 한 대 없는 우버가 세계 최대 택시 기업이 되고, 방 한 칸 못 갖춘 에어비앤비가 가장 큰 숙박업체가 된 시대. 그렇지만 한국에겐 마냥 먼 세상 얘기일 뿐이다. 한국은 이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앞서 우버는 2015년 한국 법원의 불법판결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이 사업에 참여했던 MK코리아 및 우버코리아 테크놀로지 등은 연달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카카오T·타다’가 올해 초 일부 택시기사의 분신 등 사회적 내상 끝에 조건부 허용되긴 했으나, 시장 진입 및 운영에 관한 규제가 많아 영 시원찮은 상태로 경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타다의 경우 서비스 개설 7개월 만에 등록대수 1000대를 기록, 회원 수가 60만 명에 이를 만큼 호응을 얻었음에도 정부의 어중간한 중재안으로 인해 앞으로도 택시업계와 갈등을 이어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같은 사례가 말해주듯 한국의 4차 산업 대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는 단연 과도한 규제가 꼽힌다. 업계에선 “정부가 국내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에만 의존할 뿐 기업의 혁신을 도울 방안을 만드는 데에는 거의 외면 수준”이란 넋두리마저 나돈다. 그나마 일부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헛다리짚는 식이 적지 않은 탓에 기업들이 관련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6월 IoT와 AI 등 4차 산업의 12가지 핵심 분야 협회 내 정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신(新)산업 규제에 대한 체감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은 경쟁국 5개 나라 중 그 수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수값·100), 일본(96), 미국·독일(90), 중국(80) 순이었다. 반면 정부의 정책 지원을 체감하는 정도는 한국이 가장 낮았다. 한국(100), 독일·일본(110), 미국(118), 중국(123) 순서였다.

다른 지표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2019년 한국 기업의 규제 자율성 순위는 조사대상 63개국 중 5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밝힌 국제 규제부담 순위에서도 한국은 79위를 차지해 인도(16위), 중국(18위), 인도네시아(26위)보다도 크게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상품시장규제(PMR) 지수도 한국은 1.67을 기록해 34개 회원국 중 5번째로 규제가 강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에 대응은커녕 국가 경쟁력이 아예 뒷걸음질 할 수 있어서 문제다. 아산나눔재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글로벌 톱(Top)100 스타트업(투자액 기준)의 70%는 한국에서 규제 저촉으로 인해 정상적 영업활동이 불가능할 소지가 있다. 지난 5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규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할 시 2020년부터 국내 경제성장률이 1% 후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성과 ‘착시’

물론 우리 정부가 아주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무조정실은 올해 3~6월까지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를 통해 1017건의 규제를 개선했다고 홍보 중이다. 규제 정부 입증책임제는 기업이 규제 완화의 당위성을 입증하던 기존 방식 대신 정부가 규제 유지 필요성을 입증하는 제도다. 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과의 대화’ 당시 기업인들의 건의를 수용하면서 새로 도입됐다. 현재 각 부처에는 규제입증위원회가 구축돼 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를 성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기간 행정규칙상 3527건의 규제 심의에서 개선이 결정된 건수는 642건으로 18.2%에 그쳤다. 또한 이번 정부가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에 따른 규제 부처별 완화 승인 비율은 대부분 10% 안팎을 보였다. 금융위원회가 43%로 가장 높았고, 그 외에는 식약처 12%, 과기부 4%, 방통위 2% 등이었다. 특히 국내 경제 핵심축인 제조업 분야를 주무르는 산업부도 10%에 불과했다.

규제 완화가 요구되는 사항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무엇보다도 제조업 등 한국의 주력 산업 및 신산업에 적용된 자물쇠부터 풀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시행 6개월 만에 신청 과제의 80%를 승인했다”고 최근 밝혔지만 실은 이들 중 절반가량(37건)이 금융 분야에 치우쳤다. 정작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제조업과 전기·전자는 각각 9건, 8건에 불과했다. 통신도 5건, 모빌리티도 3건에 그쳐 숙제를 남겼다.

개인정보 관련 규제도 대표적 사례다. '데이터 시대'로도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보가 쌀과 다름없다고 세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철강의 기능성을 정보가 대체할 것이란 뜻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물론 통신과 금융 및 무인자동차 분야에서도 이는 특히 중요한데,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묶여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EU), 근방의 중국과 일본이 이에 대한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EU와 일본은 개인의 실명이 담긴 개인정보는 보호하지만, 가명 혹은 익명에 대해서는 그 의무를 지지 않는다. 또한 가명이나 익명이 담긴 정보는 산업 활용도 가능하다. 실명 정보도 당사자의 사전 동의를 받으면 활용할 수 있다. 여기서 ‘가명’이란 특정 가공을 거쳐도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효과를 지닌 정보를 뜻한다. 그런데 한국은 실명, 가명, 익명 등에 따른 별도 규정조차 없다. 자연히 어떤 경우든 ‘전면 산업 활용 금지’로 돼 있다.

그로 인해 한국은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적정성 결정 국가 인정에서도 두 차례나 탈락했다. EU 적정성 결정을 얻으면 그 지역의 빅데이터를 국내로 반출할 수 있고, 한국의 관련 제품도 수출할 수 있다. 여기서 탈락했단 의미는 이에 대한 수출입이 가로막혔단 뜻이다. 업계에선 한국의 복잡한 개인정보법을 원인으로 본다. EU 입장에선 자국민 개인정보를 한국에 넘길 시 해당 정보의 처리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해외는 미래 전략 ‘분주’…한국은 ‘우왕좌왕’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국의 강점을 극대화하한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한창이다. 미국은 정책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분야를 선정한 다음 혁신정책을 펼친다. 정부는 국가 제조혁신네트워크, 제조혁신 연구소 등을 두고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GE를 중심으로 AT&T와 IBM 등이 참여하는 인터넷 컨소시엄을 꾸려 민간 주도 혁신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중국의 4차 산업혁명 로드맵 격인 ‘중국제조 2025’는 유명하다. 중국 정부는 차세대정보기술과 산업용 로봇, 고급 공작기계 등 10대 핵심 산업 23개 분야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선정, 이들의 IT기반 첨단화에 투자와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화웨이가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1위 통신장비 기업에 오르고, 친환경차 비야디가 전기차 부문에서 미국 테슬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게 그 덕분이란 사실에 토를 다는 이들은 드물다.

역시 제조업 강국인 독일도 마찬가지다. ‘Industry 4.0’을 통해 제조업 혁신과 스마트 공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0여개의 연구소로 구성된 프라운호퍼를 통해 연구소간 분업과 연계를 강화, 현장과제를 중심으로 상향식 연구개발 체재를 운영하고 있다. 아헨공대 섬유기술 연구원이 2012년 아디다스와 함께 4차 산업혁명 기술연구를 진행해 2016년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를 구축한 건 대표적 성과다.

한국은 각종 규제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반(反)대기업 정서에 기인한 진영논리, 그리고 노사갈등 및 산업과 환경·노동 부처 간 사실상의 협업 부재 등 배경은 복잡하다. 때문에 여러 규제를 글로벌 기준을 중심축 삼아 재정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과도한 규제에 한국은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불린다”며 “각계의 이해관계가 얽혔지만, 우선은 세계적 추세를 따르는 게 미래경제 대응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이동근 원장 인터뷰 보기)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