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착시’ 일자리 늘었다는데 체감 안 돼…세대 편향적 정책이 원인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의 정책성과를 두고 비판이 거세다. 중장기 전략은 외면한 채 일자리 상황판 꾸미기에만 집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지표에 따르면 올해도 어김없이 노인 일자리만 증가추세를 보였다. 한국 경제의 중심이 되는 제조업, 40대 연령층의 일자리는 되레 후퇴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곳곳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박진우 통계청 행정통계과장이 지난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2019년 1/4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에 관해 설명했다.
보건·사회복지, 50~60대 ‘일자리 터져’ 제조·건설업, 40대 ‘한파’

통계청이 지난 26일 ‘2019년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임금근로 일자리는 전년 동기 대비 50만3000개 증가한 1824만8000개로 조사됐다. 숫자로만 보자면 반가운 소식처럼 비친다. 하지만 다수의 임금노동자들과 산업현장에서 웃음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이 기간 제조업 2만5000개, 건설업 5만6000개, 사업·임대에 따른 일자리가 4만2000개나 감소했다. 최대 비중인 제조업의 경우 국내 핵심 산업인 전자·통신과 자동차에서 각각 8000개,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심각성을 더했다.

그럼에도 지표상으론 50만여개의 일자리가 증가했다. 50~60대를 중심으로 한 보건·사회복지 등에서 일자리가 터졌기 때문이다. 종합 소매업과 생활용품 도매가 다수인 도소매업에서 8만6000개,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공공행정 분야에서도 7만3000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세금으로 노인 일자리만 늘린다는 비판이 과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계청이 앞서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봐도 결과가 비슷하다. 15세 이상 인구의 전체 고용률이 0.8% 늘었지만, 이는 농어업에서 3.7%,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에서 4%씩 증가한 영향이 컸다. 제조업 분야의 고용률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0.5% 줄었다. 이달뿐만 아니라 전달에도 2.1% 감소하면서, 악화하는 상황이 또렷이 드러났다.

“괜찮다”는 정부

문제는 정부의 안일함이다. 거시적인 지표가 좋다는 점을 들어 이를 성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인일자리 증가는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는 피할 수 없는 정책”이라면서도 “50대와 60대가 각각 10만3000명, 55만6000명 늘었으며 30대와 40대 인구는 10만2000명, 14만명이나 줄어든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윤철 기재부 제2차관도 최근 서울 구로동의 디지털 광고 솔루션 기업 인라이플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인일자리 사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급격한 고령화 국가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인 노인 빈곤율 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2020년 74만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노인일자리 증가의 취지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정부가 상황을 안일하게 바라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경제보복 등 최악의 대외환경에 눈을 뜨면 정책의 무게 추를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현실에서 한정된 일자리 수요를 고령층에 집중하면 잠재적 사회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장 20대 청년과 40대 허리층이 겪고 있는 상황은 무척 암담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기준 500대 기업 중 13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작년보다 채용을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경기 악화(47.7%), 회사 내부 상황 어려움(25.0%), 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부담(15.9%)이 미래인재 확보의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전체 일자리 가운데 최다 비중을 차지하는 40대는 각종 지표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세대다. 8월 고용지표에서는 나홀로 고용률이 떨어졌고, 올해 1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동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40대 인구 감소(14만1000명)를 원인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고용률 감소 속도가 더 빠른 게 사실이다.

노인일자리와 청·중년층 일자리 간 딜레마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긴 하나, 그만큼 장기적 안목을 갖고 고용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의 배경이다. 현재 얼어붙은 고용상황을 국민이 체감할 만큼, 실질적으로 완화하려면 현실적으로 ‘민간의 활력’을 중점에 둔 안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임무송 한국산업기술대 석좌교수는 “정부의 고용지표들을 한 꺼풀 뜯어보면 오히려 고용시장 왜곡과 구조적 취약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면서 “8월 취업자 수가 45만2000명 증가했지만, 작년 8월은 전년 동기 대비 취업자가 3000명밖에 늘지 않은 이례적인 시기였으므로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이어 “물론 고령화 및 경기부진에 따른 재정지원으로 마이너스 고용 위기에 대처하는 데 대한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먼 단기 노인 일자리 사업이 전체 취업자 증가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비중이 과도한 것 역시 사실이므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일자리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