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인텔 낸드메모리 사업 10조 원 인수…국내 기업 최대 투자규모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SK가 ‘족집게 인수합병(M&A)’ 달인의 면모를 재확인했다. 2012년 ‘신의 한수’로 꼽힌 SK하이닉스 인수가 ‘인텔 낸드메모리 저장장치 사업 인수’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이 사업을 인수하는 데에 10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투자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최태원 SK회장의 ‘승부수’로 해석한다. 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을 구현하는 데에 낸드메모리를 필수다. 초유의 자본을 투입해 이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은 그만큼 최태원 회장이 강한 자신감을 보인 것 아니겠냐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시장에선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시장 2위 기업으로 올라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후발주자 SK하이닉스, 선두기업 디딤돌

지난 20일 반도체 업계가 화들짝 놀랐다.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전격 인수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이날 양도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도 밝혔다. 인수 대상은 인텔의 낸드 SSD, 낸드 단품과 웨이퍼 비즈니스, 중국 다롄팹 등이다. 인수 총액은 90억 달러(한화 약 10조2600억 원)다. 인수 대상에 인텔 옵테인 사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후발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인수를 계기로 사업 확장에 소도를 더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장 2021년 말까지 주요 국가의 규제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규제 승인을 받으면 SK하이닉스는 우선 70억 달러(약 8조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인텔도 발빠르게 움직일 전망이다. 우선 낸드 SSD 사업(SSD 관련 IP 및 인력 등)과 중국 다롄팹 자산을 SK하이닉스로 이전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이에 인수 계약 완료가 예상되는 2025년 3월쯤이면 SK하이닉스로부터 20억 달러(약 3조 원)를 지급받고, 인텔의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 R&D 인력 및 다롄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완전히 넘길 계획이다.

낸드플래시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 중인 기술로 불린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낸드플래시 분야의 기업용 SSD 등 솔루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측은 “이번 인수는 고객, 파트너, 구성원,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며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게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는 근래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파격적인 일 중 하나다.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선도 기업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낸드 SSD기술력과 QLC낸드플래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인텔 NSG 부문 중 낸드 사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약 28억 달러(약 3조 원), 영업이익은 약 6억 달러(6802억 원)에 달한다.

업계 2위로 ‘껑충’…SK하이닉스 “새로운 미래”

해당 사업을 넘긴 인텔이 ‘잃는 장사’를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인텔은 이번 거래를 통해 얻게 되는 재원을 또 다른 미래기술에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인텔 시각에서 장기적 성장이 우선적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공지능(AI), 5G 네트워킹, 인텔리전트 엣지와 자율주행 기술 등 제품 경쟁력 강화에 나설 채비다.

SK하이닉스는 CTF기반 96단 4D 낸드(2018년)와 128단 4D 낸드(2019년) 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괄목할 만한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다. 향후 SK하이닉스는 인텔의 솔루션 기술 및 생산 능력을 접목해 기업용 SSD 등 고부가가치 중심의 3D 낸드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같은 SK하이닉스에 이번 계약은 글로벌 낸드플래시 2위 도약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체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현재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5.9%) ▲키옥시아(19%) ▲웨스턴디지털(13.8%) ▲마이크론(11.1%) ▲SK하이닉스(9.9%) ▲인텔(9.5%)순이다. SK하이닉스와 인텔 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19.4% 점유율을 갖게 된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 오던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 사업부문이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서로의 강점을 살려 SK하이닉스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 대응, 낸드 분야에서도 D램 못지 않은 경쟁력을 확보하며 사업구조를 최적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최대 투자…최태원 ‘승부수’

최태원 SK회장.
이번 인수 금액 약 10조 원은 국내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지난 2016년 삼성전자가 미국의 하만 인수에 들인 투자 금액(80억 달러)을 약 10억 달러 뛰어 넘는다. 이러한 투자를 단행하는 데에는 단연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 주요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업 비전 및 지속가능한 성장 가능성에 대한 최태원 회장 자신감의 방증”이라는 시각도 크다.

이런 기대감의 근거는 최태원 회장이 앞서 보여준 족집게 인수에 있다. SK는 2011년 말까지만 해도 시가총액이 약 50조 원 수준이었다. 물론 당시도 굴지의 대기업이긴 했으나, 현재 약 120조 원 수준까지 2배 이상 덩치를 불린 것은 최태원 회장이 내다본 반도체 비전이 큰 몫을 했다. 2012년 하이닉스(당시 시총 13조 원, 현재 61조 원) 인수는 단연 신의 한수로 꼽힌다.

그 외에도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머티리얼즈(2015년·4816억 원),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실트론(2017년·6200억 원), 도시바 메모리 부문(2018년·4조 원) 등 최태원 회장의 반도체 투자는 지속돼 왔다. 이 중에서도 특히 실트론은 SK에 속하기 전까지 줄곧 적자를 기록하다가, SK계열사로 편입된 이래 현재는 매출만 1조 원을 넘기는 규모까지 성장했다.

인텔 낸드사업 인수 결정도 최태원 회장의 역작이 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 사업부 인수는 긍정적”이라며 “인텔 기술흡수 및 인텔과의 협력 등을 지속적으로 유지 및 강화할 수 있고, 낸드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해 전체 메모리 시장 2위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