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재정수지 사상 최대 적자…“기업규제 개혁해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빚도 자산이라지만 과도하면 문제가 된다. 정부가 그 선상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과도하냐 아니냐를 두고는 말들이 많지만,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채무를 떠안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적자 규모도 지난해보다 약 2배 커졌다. 물론 코로나19 등 전대미문의 사태가 영향을 키웠다.

그러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당장 재정위기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보다 체계적인 국가재정 관리 및 기업 활동의 폭넓은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배경이다.

나라 빚 ‘사상 최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지난 10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매월 ‘월간 재정동향’을 발표한다. 분량 약 70페이지의 문서인데 국가 재정의 총수입과 총지출 및 국가채무, 그리고 통합재정수지(정부 수입과 지출의 차이)와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수지 제외) 등 나라 재산 전반을 보고한 문건이다. 주기적으로 공표되는 사항들이지만 지난 10일 발간된 11월호(1~9월 동향)가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800조3000억 원. 올해 9월 말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 규모다. 사상 최대 채무액이다. 작년 말(699억 원)과 비교하면 100조 원 넘게 증가한 수치다. 전월 대비 6조2000억 원 늘어난 수준이기도 하다. 국고채권 잔액 증가(3조 원), 국민주택채권 잔액 증가(1조6000억 원), 외평채권 잔액 증가(1조6000억 원) 등의 영향이라고 한다.

108조4000억 원 ‘적자’. 올해 9월까지 관리재정수지가 가리킨 결과 값이다. 이 수지는 나라의 실질적 살림살이 크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이번 적자규모 역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51조4000억 원 늘었다.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도 같은 기간 80조5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54조원 증가한 액수다.

지표가 이렇게 나타난 원인은 단순하다. 정부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아서다. 항목 별로 보면 지난 1~9월 국가 총 수입은 354조4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조1000억 원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동기간 총 지출은 434조8000억 원을 나타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8조8000억 원 증가했다.

물론 정부가 이처럼 지출을 늘린 데에도 이유는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크게 악화하면서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4차례 추가경정예산 비중이 크다. 일각에서 현재 재정상황을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다. 아울러 올해 국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인데, 이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건전한 편이라는 시각도 있다.

감당 가능? “속도가 문제”

하지만 현재 부채비율이 적정한지에 관한 논란을 차치하고도 우려를 못 거두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야 유례없는 바이러스 사태가 이런 상황을 낳았다고 해석 가능하지만, 실은 이번 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늘 논란을 불렀던 것이 재정집행의 경향성 때문이다. 채무의 규모가 아니라 증가 속도가 가팔라서 문제라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IMF) 이후 암묵적 룰(rule)로 지켜져 온 국가채무비율은 36%로 일컬어진다. 이 비율은 지난해 38.1%로 늘면서 깨졌는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재정지출이 증가해 43.9%까지 치솟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45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99.6%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편안해 보인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채무비율이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네 차례 추경으로 올해 국가채무비율이 44%, 내년에는 47%로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른 주요 20개국(G20) 등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p 증가할 때마다 국가신용등급은 0.03단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은 성장률 저하 및 실업률 상승을 해소하기 위해 2008~2018년 대규모 예산을 편성했지만 정책 효과는 못 보고 이 기간 신용등급만 9단계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한국을 향해 관련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확장재정 정책이 지속될 시 2023년쯤 국가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난 2월 경고했다. 당장 내년도 국가채무비율이 47%까지 오르는데, 2023년 이 비율이 46%까지 증가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족쇄 풀어야”

지난 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못 넘은 재정준칙, 즉 ‘채무비율을 일정 수준은 넘지 않겠다’는 등의 법안 마련이 그래서 요구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2020년 하반기 경기전망’ 보고서에서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경기 회복 시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강력히 제어할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기업규제 완화 요구도 힘을 받고 있다. 한경연과 피치 등 여러 기관이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등이 따라야 40%대 국가부채비율도 괜찮다”는 식의 분석을 내놓으면서다. 결국 지금과 같은 확장재정 정책의 영속성을 담보하려면, 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제는 물론 기업 주도의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근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지난 1~9월 국가 총수입(누계)을 가장 크게 감소시킨 항목은 법인세였다. 전년 동기 대비 15조8000억 원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에 의한 기업의 수익성 타격이 국가재정 적자에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이밖에 부가가치세(4조3000억 원), 관세(1조1000억 원)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정리하자면 기업 수익성 악화로 정부 수입이 감소, 그러면서 정부는 지출을 늘리는데 정작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식의 앞뒤 안 맞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국회에는 이른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 등 산업계 입장과 첨예한 법안들이 올라 있는 상태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이 주요국에 비해 낮아 괜찮다는 인식이 있는데, 재정건전성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라며 “규제개혁 등 기업친화적인 정책추진으로 성장력을 높이고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여 민관부문 디레버리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