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기술연구원 시속 1019km 시험 성공/ 포스코도 전용 튜브 제작 나서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꿈의 이동수단’으로 불리는 하이퍼루프(Hyperloop).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하이퍼튜브’라는 이름을 달고 관련 연구 및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국가의 미래기술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하이퍼튜브 개발은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최근 들어서는 ‘한국판 뉴딜’(K뉴딜)의 중심축에 하이퍼튜브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대다수 해외 국가가 그렇듯 국내에서도 유인 시험의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초 예상보다는 이른 시기에 꿈의 기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미 국내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이 기술 선점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발을 내딛었다. 정부가 하이퍼튜브 관련 연구개발(R&D)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을 마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래를 좌우할 교통의 혁신 기술

경남도 ‘테스트베드’ 유치 희망

김경수(왼쪽 두 번째) 경남도지사가 지난 13일 경기도 의왕시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하이퍼튜브 연구개발 현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 의왕시에 소재한 철도기술연구원(KRRI)은 오랜만에 여권 내 주요 인사들로 북적거렸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K뉴딜 본부장)과 같은 당 소속의 양향자·맹성규·이소영 의원을 비롯해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국토교통부 철도 담당 관료들이 방문해 연구원 곳곳을 둘러봤다. 하이퍼튜브에 관한 국내 기술개발 등의 현황을 둘러보러 온 인사들이었다.

자연히 하이퍼튜브 모형 및 실험장치 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민주당내 K뉴딜 정책을 총괄하는 이 의원은 하이퍼튜브를 놓고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와 문재인 대통령이 손잡고 함께 도전해야 할 미래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하이퍼튜브를 전국에 X자로 연결하면, 주요 도시 간 이동이 30분대에 이뤄질 것이란 점도 강조했다.

시속 약 1220㎞로 운행되는 하이퍼튜브가 상용화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16분 만이 소요된다. 당연히 영남권 등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방자치단체의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하이퍼튜브가 그 자체로도 혁신적 기술이지만, 현실화될 경우 한국사회 고질병인 지역불균형 문제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까지 이어지는 교통의 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

김 지사가 이날 ‘하이퍼튜브 연구현장 간담회’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래서다. 그는 “향후 하이퍼튜브 테스트베드는 설치 이후 활용 가능성이나 필요성을 고려해 입지 선정 평가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이퍼튜브 시험장의 동남권 유치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메가시티’ 구상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남도의 의지는 남다르다. 지난 20일 경남도는 KRRI 등 5개 기관과 함께 ‘하이퍼튜브 등 친환경 미래 철도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기관은 ▲하이퍼튜브 기술 연구개발 ▲수소열차 기술 연구개발 ▲친환경 미래 철도 과학기술 연구 및 현장적용을 통한 K-뉴딜 성과도출 등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김 지사는 “하이퍼튜브를 포함한 친환경 미래 철도기술뿐만 아니라, 수소열차나 고속철 등과 관련해 지역 산업계가 미래를 대비하는 데 있어 KRRI의 연구개발 역량과 잘 결합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모빌리티 분야가 융합돼가는 추세인데 지역의 자동차, 철도, 항공우주 관련 업체들이 같이 협력해나가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남도는 물론 지역 도민들도 하이퍼튜브를 향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가 하이퍼튜브 기술을 활용한 ‘어반루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까닭도 그 연장선이다. 박 예비후보측은 “하이퍼루프 기술을 도시 내 이동여건에 맞게 적용해 5년 내 상용화함으로써 부산을 살기 좋은 ‘15분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가덕도 신공항에서 동부산까지 47㎞의 거리를 15분 내 돌파해 부산을 15분 생활권으로 구현하겠다는 발상이다.

K뉴딜의 중심축…국내 기술 어디까지 왔나

경남(김경수 도지사)을 비롯해 한국전기연구원(유동욱 연구부원장), 한국재료연구원(이정환 원장), 경남테크노파크(안완기 원장), 현대로템(이용배 사장) 등과 '하이퍼튜브 등 친환경 미래철도 구현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의 관건은 물론 기술력이다. 국내 현실은 긍정요소와 부정요소가 상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버진 하이퍼루프’가 유인주행 테스트를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한국은 당장 유인주행 시험의 장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목표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국 하이퍼튜브 기술 수준이 뒤처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초고속 주행 구현 등 일부 측면의 기술력은 비교적 돋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KRRI가 지난해 11월 하이퍼튜브 시속 1000㎞ 이상의 공력시험에 성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기관은 기존 고속철도 공기.마찰 저항에 의한 속도한계를 극복하는 교통 신기술을 개발했다.

KRRI는 이 기술을 토대로 독자 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에서 하이퍼튜브 속도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진공상태에 가까운 0.001 기압 수준에서 시속 1019㎞의 속도를 달성했다. 앞서 KRRI는 지난해 9월 진행한 같은 시험에서 시속 714㎞를 구현한 바 있다. 최근 시험결과는 불과 두 달 만에 새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KRRI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는 시속 100~1000㎞ 이상, 튜브 내 압력 0.1~0.001 기압 이하의 범위에서 필요한 조건으로 다양한 주행시험이 가능하다. KRRI 관계자는 “비행기보다 빠르게 달리는 하이퍼튜브의 주행특성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험을 통해 규명함으로써 하이퍼튜브의 기본설계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 2017년 한양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산학기관과 하이퍼튜브 연구개발에 관한 협약을 처음 맺은 이후, 이듬해 5월 하이퍼튜브의 핵심장치인 1/1000 기압 튜브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의 성과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상용화 시기는 10여 년 이후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남은 과제가 여전히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KRRI는 오는 2024년 완료를 목표로 하이퍼튜브 핵심기술 개발 연구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이퍼튜브의 엔진에 해당하는 초전도전자석과 추진장치, 또 차량의 초고속 주행 안정화 장치 등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아울러 하이퍼튜브 시제차량 개발 등을 통한 실증연구 사업도 기획 단계에 있다.

민간기업도 하이퍼튜브 관련 사업에 적극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11월 ‘타타스틸 유럽’과 하이퍼루프 전용강재와 구조 솔루션 개발 및 글로벌 프로젝트 공동참여 등 관련 사업 분야 전반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하이퍼루프의 성능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지름 약 3.5m의 거대한 강철 튜브를 제작한다는 것이 목표다.

남은 관심사는 정부의 지원책이다. 이광재 의원실 관계자는 “K뉴딜은 단순 구호에 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미래과제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며 “그 일환인 하이퍼튜브는 일종의 ‘달나라 프로젝트’처럼 멀리 길게 내다보고 적극 추진해야 할 사항으로서,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발전 방안을 적극 도출해보자는 게 현재 기조”라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