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파 반년은 이어질 수도/ 장기화 시 현대차 등도 피해… ‘기술 국산화’ 절실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완성차 업계의 패러다임이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반도체 수급을 변수로 맞이했다. 차량에 탑재되는 반도체가 부족한 현상에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완성차의 생산과 판매가 일제히 차질을 빚고 있는데다, 시장 변동성에 대한 예측마저 어긋난 게 원인이 됐다.

자연히 자동차 업계와 반도체 업계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대만의 TSMC는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약 15% 올릴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기업들은 어떻게든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입장이 됐다. 당장 국내 자동차 업계는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직격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산 와중에 중국발 신차 수요 증가

원가 상승에 완성차 가격도 오를 듯

완성차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겪고 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대유행 사태가 자동차 산업계의 지형마저 흔들고 있다. 미국 포드, 독일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은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생산 차질에 허덕이는 중이다. 차량용 반도체를 구할 길이 없어서다. 이들 기업은 당초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중국 등지에서 신차 주문이 돌연 급증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앞서 자동차 기업들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생산·판매에서 전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잇달아 감산에 돌입한 바 있다. 자연히 차량용 반도체 구입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도체 기업들은 비대면 활성화로 수요가 쏠린 모바일 및 IT 등의 분야에 생산력을 집중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지난해 10~12월 중국 등지에서 신차 주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이처럼 차량용 반도체 수급차질의 ‘표면상’ 이유는 중국발 주문 증가다. 하지만 업계 내의 여러 사정을 속속 들여다보면 구체 배경은 복합적 요소로 묶여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 강화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를 제재 대상으로 꼽았다. 문제는 SMIC가 공급하는 차량용 반도체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압력으로 SMIC에 차량용 반도체 발주를 넣지 못하게 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다른 거래처를 급히 찾아나서야 할 상황에 처했다. 문제는 갑자기 새로운 거래처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각 차량마다 적합한 반도체가 따로 있는 데다, 설령 대체 공급처를 찾았더라도 해당 업체가 곧장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공급하는 것에도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SMIC에서 떨어져나간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가장 많이 흡수한 곳은 대만의 TSMC이다. 하지만 TSMC는 이전부터 서버용과 모바일용 반도체 생산에 힘을 쏟고 있는 현실이다. 갑자기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늘릴만한 여건을 충족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IT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TSMC가 차량용 반도체 주문량을 올렸다고 해서, 생산 캐파도 의욕적으로 높일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TSMC는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최대 약 15%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의 자매지인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오는 2월부터 3월까지 단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독일, 일본의 정부가 직접 나서서 TSMC와 대만 정부에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며 “자동차 부품의 가격 결정권이 반도체 공급업체로 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완성차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TSMC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NXP반도체와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일본의 르네사스와 도시바 등 다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가격 인상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외신보도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 피해 아직…장기화되면 악영향

커가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요구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수급전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편으로 꼽힌다. 2019년 겪은 일본과의 수출규제 갈등이 되레 도움이 된 모양새다. 당시 글로벌 공급망을 두루 살핀 현대차는 여러 부품들의 재고량을 늘렸다. 그 덕분에 차량용 반도체 역시 현재 1~2개월가량의 재고치를 확보해둔 상태다. 예기치 않은 수출규제 사태가 되레 위기를 피해가게끔 한 셈이다.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다. 글로벌 시장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현대·기아차 또한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재고분이 다 소진되면 한정된 공급 물량을 둘러싼 발주 경쟁에 가담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현재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대란이 6개월여 지속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업계 전체가 작년 10월쯤부터 차량용 반도체의 타이트한 공급 상황에 직면한 게 사실”이라며 “(기아차의 경우)단기적으로 생산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3~6개월까지 문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우선 당장의 차질은 없도록 조치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최근의 사태를 계기로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당장 급증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 그친다. SK하이닉스는 순위권에서 거론조차 안 될 만큼 미미하다.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시장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현재 판매되는 일반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수는 약 200~300개로 추산된다. 하지만 사람이 운전대를 안 잡아도 되는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에는 그보다 10배 이상 많은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도 지난해 380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시장 규모가 6년 뒤인 2026년에는 676억 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최대 라이벌인 TSMC가 차량용 반도체 개발 및 공급에 힘을 더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 분야가 미래 기술의 주요한 축으로 부상한 이상, 국내의 반도체 기업은 물론 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부품 기업들 역시 차량용 반도체 기술개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는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미약하더라도 향후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