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ESG 투자규모 최근 2년간 34.3% 성장
미국·유럽 , 글로벌 ESG 투자 85% 이상 차지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ESG 경영은 ‘생존’의 문제”

한국보다 앞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닻을 올린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제 ESG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 소유자의 80%가 ESG에 투자하고 있다. 그만큼 ESG 투자는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ESG 투자규모는 2020년 기준 40조5000억 달러(약 4경5000조원)로 2012년에 비해 세 배 가량이 증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 추세에 있다. 2006년 유엔(UN) 주도로 ‘책임투자원칙’이 제정되면서 국제적인 공론화가 시작된 ESG 투자는 특히 최근 2년간 투자 자산규모가 34.3%나 성장해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미국 석유 공룡 엑슨모빌, 온실가스 배출 감소 목표 발표

국가별로 살펴보면 유럽과 미국이 글로벌 ESG 투자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일본, 캐나다, 호주 순이다.

먼저 미국은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을 중심으로 ESG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대규모 헤지펀드사인 블랙록과 뱅가드가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생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등이 미국 내 ESG 투자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이전에는 시장이 ESG의 ‘실효성 여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생존’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만큼 기업의 장기 성장에 있어 ESG는 필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11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하며 금융시장, 금융시스템 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요인으로 기후변화를 처음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때 전세계 시가총액 1위였던 ‘석유 공룡’ 엑슨모빌은 지난해 12월 석유 생산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2025년까지 15~20%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탄소배출량 감소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부를 신설해 2025년까지 3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 동안 ESG 경영을 강화하라는 투자자들의 압박에 가까운 요구를 결국 받아들인 것이다.

환경·인권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 등장으로 ESG 가속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도 미국 기업의 ESG 경영 가속화를 움직인 큰 동력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경제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지속가능한 인프라 및 에너지 개혁은 ESG 경영이 보편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내 ESG 투자를 이끌고 있는 블랙록 출신 인사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팀에 대거 기용됐다는 사실도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ESG 경영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데는 직접적인 투자자들의 압박뿐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통칭하는 이른바 ‘MZ세대’의 등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구축한 30조 달러의 자산이 자녀들인 MZ세대들에게 넘어간 것이 원동력이 됐다. 전쟁을 거치지 않고 미래의 가치를 중시한 MZ세대는 ESG 경영 요구에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는 이들 세대가 앞으로 15~20조 달러를 ESG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구글은 빅테크 업계 최초로 노조를 결성했다. 지난 1월 초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직원 230여 명은 노조를 설립하면서 직장 내 평등과 윤리적인 경영, 공익 개선 등을 강조했다. 이전에도 구글 직원들은 사내 성폭력 방임, 소수자 차별 등의 이슈를 공론화 하며 ESG 경영을 사측에 요구해왔다. 반면 페이스북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폭력적인 발언을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후 주요 기업들이 광고를 철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흑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두고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고 언급한 페이스북 글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MZ세대들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인권 존중 등에 큰 관심을 갖는다. 이들의 소비 및 투자 결정은 해당 기업의 주가에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결국 MZ세대들의 환경과 인권 등에 대한 가치 추구는 앞으로 기업 경영과 투자 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럽, 연기금 중심 책임 투자 보편화

유럽의 경우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이 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책임투자가 보편화돼 있다. 특히 유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적 펀드의 공공성이 부각되며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다. 스웨덴 공적연기금인 제2국가연금펀드(AP2)는 2018년부터 운용자산 400억 달러(49조원) 중 120억 달러(14조원)를 ESG 관련 투자에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와 네덜란드 연기금(ABP) 등도 책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후 유럽 전체 펀드 시장에서 1480억 유로(202조원)가 이탈한 반면 ESG펀드에는 약 300억 유로(40조억원)가 유입되기도 했다.

영국계 다국적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화석 연료업계에 대규모 대출을 진행했지만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0’을 목표로 하겠다고 지난해 3월 발표하기도 했다. 바클레이스는 화석 연료 산업에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약 1200억 달러(146조원)의 대출을 진행했다. 유럽 은행 중 가장 많은 대출 규모를 기록한 것이다. 그럼에도 탄소배출량 감소 계획을 발표한 데는 영국 국민고용저축신탁(NEST)과 투자자들이 화석연료 대출을 단계적으로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이에 따른 것이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