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 ‘합리적 결정’ vs 개인투자자 ‘선거용 대책’
반(反) 공매도 내건 ‘한국판 게임스톱 운동’ 지속되나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공매도 폐지 홍보 버스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금융당국이 개미투자자들의 반격에 결국 일보 후퇴했다. 지난 3일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재연장, 오는 5월 3일 공매도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또 전면적인 공매도 재개가 아니라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 등 대형주에만 공매도를 허용키로 했다. 금융위의 이번 결정에 금융업계와 여당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판 게임스톱(게임스탑)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등 개인투자자들은 “선거용 미봉책”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이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월 3일부터 공매도를 부분적으로 재개한다”며 “공매도가 허용되는 종목은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200 및 코스닥 150을 구성하고 있는 대형주”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구성 종목은 5월 3일부터 공매도가 가능해진다. 코스피200에는 삼성전자·LG화학·SK하이닉스 등 전체 종목의 22%가, 코스피150에는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등 10%가 속해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2037개 종목은 별도 기한 없이 금지 조치가 연장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공매도 완전 금지는 어려워”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급락하자 6개월간 공매도 금지를 발표했다. 이후 6개월을 추가 연장해 당초 오는 3월16일부터 공매도를 재개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 공매도 재개 여부를 재검토해왔다.

은 위원장은 공매도 재개 시점과 관련해 “금융위 회의를 통해 공매도를 완전 금지 또는 무기한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다만, 공매도 재개에 대한 시장의 우려와 염려가 큰 상황인 만큼, 부분적 재개를 통해 시장충격을 최소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거래소의 전산개발과 테스트 기간 등을 고려해 5월 3일로 공매도 재개 일정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공매도 참여를 늘리기 위해 증권사별로 시스템도 개발하기로 했다. 금융위 위원들은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한 현 국내 주식시장 상황과 해외 공매도 재개 상황, 해외 투자자 등을 고려했을 때 공매도 재개는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분 재개를 통해 반발을 줄이고 공매도에 대한 개인 참여 시스템도 보완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절충안 찾은 합리적 결정”

금융업계에서는 한국 증시의 여러 여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홍콩도 시가총액이 일정 이상 되는 종목에 한해서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사이의 절충안을 찾은 결과라는 평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우상호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공매도 재연장이 발표된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금융당국의 공매도 금지 연장 결정을 환영한다”며 “개인투자자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주식시장에서 우리 기업에게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 온 박용진 의원도 ”제도보완 후 공매도 재개라는 기존 주장을 당국이 수용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대형주 공매도 허용을 두고 여전히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오는 4월7일 보궐 선거를 앞둔 미봉책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크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이번 공매도 재연장 조치를 “선거용 대책”이라고 지적하며 “대형주의 공매도가 허용돼 전체 지수가 하락하면 중소형 종목도 하락 태풍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매도 세력이 계속 개인투자자 재산을 쉽게 가져가는 구도를 혁파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대책”이라며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한투연 “공매도 반대 대정부 투쟁 나설 것”

앞서 한투연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매도와의 전쟁’을 공식 선언했다. 한투연은 동학개미, 서학개미, 미국 로빈후드까지 연대하는 ‘케이스트릿베츠’(Kstreetbets, KSB) 시스템을 만들어 공매도를 상대로 실력 행사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KSB는 미국 게임스톱 주식 공매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레딧의 주식토론방 ‘월스트릿베츠’(Wallstreetbets)와 ‘코리아’(Korea)를 합성한 단어다. 레딧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게임스톱 매수 운동을 펼친 개인투자자 키스 질은 헤지펀드의 공매도를 상대로 ‘개미들의 반란’을 이끌어내고 있다.

정 대표는 성명서에서 “공매도의 폐해를 바로잡고 우리나라 700만 주식투자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행동에 돌입한다”며 “공매도 피해기업인 코스피 잔고 1위 셀트리온과 코스닥 잔고 1위 에이치엘비를 중심으로 단체 주주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주장하는 우리나라 공매도의 문제점은 ▲의무 상환기간이 없고 증거금도 거의 없는 점 ▲수익에 대한 세금이 없는 점 ▲외국인과 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계 ▲주가 하락을 위한 루머 등에 금융당국의 처벌이 가벼운 점 등이다. 이에 공매도 금지 조치를 향후 1년간 연장한 뒤 폐지 또는 재설계해야 한다는 게 한투연의 주장이다. 한투연은 지난 1일부터 홍보용 버스에 ‘공매도 폐지’와 ‘금융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부착해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를 오가며 운행 중이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소유하지 않은 집이나 자동차는 팔 수 없다. 하지만 소유하지 않은 주식은 팔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공매도는 사기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공매도 세력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한국에서도 주식시장의 유력인사들이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반대 움직임에 힘을 실어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